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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아직 그 자리에 있다면

ㅡ 스타벅스, 익명의 아침을

빛은 창문 턱에 걸려

올 생각 없는 사람처럼

지쳐 서성인다


밤사이 눌러붙은 그림자들이

아직도 놓아주지 않는 탓인지

잔을 들어서야

오늘이라는

이름을 확인한다



검은 액체의 첫 무게는

잠깐 뜨거웠다가 사라질 열이 아니라

어제의 잔해를 송두리째 불러오는

무표정한 진실 같다


손끝을 잡아끄는

이 감각은

꿈에서 빠져나온 낯선 사물처럼

내 의지를 자꾸만 시험한다



향은 과묵하고,

조용하다는 말로도

다 설명되지 않을 만큼

기묘하게 천천히 퍼져

목구멍 깊은 곳에서

말하지 못한 말들을 깨우고 있다


오늘도 지나칠 것들이

이미 포기한 표정으로

멀리서 바라본다

이 감정은 언제나 불편하다


한 모금 삼키자

입안에서는 폭발도 없고 기적도 없다

그저 오래된 쓸쓸함이

혀끝에서 얇게 번질 뿐



그 뒤편의 어둡고

숨 막히는 층에서

미약한 의지의 불씨가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사실만 조금 늦게 드러날 뿐이다


커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위로도, 비난도 없다 그 침묵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

나를 가만히 밀어붙인다


나는 잠시 잔을 내려놓았다가

다시 들고

이 조그만 무게가

오늘을 견디게 하는 마지막 근거일지도 모른다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작은 탁자 위에

시간은 점점 가벼워지고,

숨은 점점 더 얇아지고,

나는 여전히 커피를 마시고 있다


잔 표면에 스치는 흔들림,

내 마음의 떨림,

향은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며

살아 있다는 사실을

억지로 인정하게 만든다


그래서 한 모금 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이 미약한 결심을

내 몸 깊숙한 곳에

끝내 가라앉히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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