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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아직 그 자리에 있다면

ㅡ 갯벌에서

by 초선생


바다의 허기가 검은 살결 위로 물러가자
그 뒤에 남은 건 수초와 갯고둥의 기척,
아무도 적지 않은 문장들,
갯벌은 마치 어떤 옛 슬픔을 뒤집어 놓은 듯
이미 누군가에게서 돌아온 얼굴 같았다.

발을 디딜 때마다 오래전에 삼킨 울음,
나는 그 소리에 잠시 귀를 대보았다
세상 어느 끝에서 잃어버린 말 한 조각이 누군가를 찾는 듯했다


갯벌 한가운데 서 있는 것뿐인데
자꾸만 ‘돌아갈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고,
그 생각이 또 다른 나를 끌고 와

발목을 감싸며 아래로 당긴다

갯벌은 허둥대지 않았다
그저 — 움직였다
아주 미세하게,

내가 느꼈다고 말하기에도 애매할 만큼
그러나 진흙 속에서는 알 수 없는 떨림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었고,
그 떨림이 내 몸속의 굳은 시간을 아주 느리게 녹여내고 있었다

이름도 없는 위로처럼
그 물결이 내 그림자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갯벌은 아무도 품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모든 걸 받아들이고 있었다

발을 디디자 축축한 울음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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