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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난한 황제 Feb 16. 2021

내가 나에게 주는 용돈 : 일주일에 15만 원으로 살기

가난한 황제 탈출기 #5.

대학교 1학년, 스무 살의 나는 엄마에게 매주 일요일마다 5만 원씩 용돈을 받았다. 곧장 씬 27이라는 바에 가서 잭콕을 두 잔, 혹은 세 잔을 마셨고, 친구와 둘이 앉아 <화양연화>에서 양조위의 담배 연기를 따라해 보겠다며 담배 한 갑을 다 피우고 나왔다. 그렇게 하루 만에 2만 5천 원을 썼고, 나머지 요일은 하루 5천 원으로 정도로 버텼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본가로 돌아갔을 때 엄마는 매주 일요일 에 10만 원씩 용돈을 줬다. 그때 엄마가 나에게 용돈을 주기 위해 친구한테 돈을 빌린 적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건 불과 얼마 전이다. 나는 그 10만 원으로 술을 마시고, 담배를 사고, 영화를 보는 호화로운 생활을 하면서도 20대가 참으로 길고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내게 있어 용돈이란 것은 매주 수요일이 되기 전에 다 써버리는 것이며 술, 담배, 영화에 탕진하는 것이었다.  




2021년 서른아홉 살의 나는, 내게 일주일에 15만 원씩 용돈을 주기로 결심한다. 왜 15만 원 인지는 모른다. J가 정해준 금액이고, 그간의 소비습관을 바꾸기 위해서는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1인 가구를 꾸리고부터는 생활비와 용돈의 차이를 구분할 수 없었다. 내가 버는 모든 돈이 생활비고 용돈이고 카드값이었다. 이제는 그러했던 과거의 나와 이별을 해야 하기에 1월 한 달 동안 매주 월요일을 기준으로 용돈을 리셋하고 일요일까지 15만 원 쓰기에 도전했다. 여기서 용돈의 의미는 월 고정비용을 뺀 나의 모든 소비 내역이다. 가계부는 최대한 자세히 정리했다. 점심은 누구와 어떤 메뉴를 먹었는지, 홈파티에 맥주 몇 캔을 사 갔는지, 무슨 과자랑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고(빠새랑 빵또아는 왜 이렇게 맛있을까), 로컬마켓이라고 기록한 집 앞 노점에서 무슨 식재료를 샀는지까지. 거의 매일 기록했고, 하다 보니 은근히 중독성이 생기고, 내가 언제 뭘 하고 다녔는지의 동선과 만난 사람들의 명단까지 엑셀 파일에 담기니깐 재미까지 느껴졌다. 내가 코로나19에 감염된다면 방역당국에 이 가계부를 당당하게 넘길 것이다.  




그래서 1월 한 달 동안 일주일에 15만 원씩 썼느냐고 물으신다면. 결론부터 말씀드리는데 단 한 주도 15만 원 쓰기에 성공한 적이 없었으나, 그 전 달인 12월의 소비에 비하면 100만 원 가량을 절약했다. 불과 한 달 전에 비해 100만 원이나 돈을 덜 썼지만 아무도 나에게 묻지 않았다. 너 왜 이렇게 돈을 안 쓰니? 무슨 일 있어? 네가 이렇게 돈을 안 쓰다니 정말 큰일이구나,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지근거리에 있는 사람들조차도 대체로 모르는 눈치였다. 내가 평소보다 훨씬 돈을 안 쓰고 있으며,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다는 것에 대해서. 나에게 무슨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그 변화는 왜 생겨야만 했는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다. 사람들은 대체로 다른 사람의 인생에 크게 관심이 없다.        


원단위로 돌아보는 나의 1월

158,470원 : 횟수로 따지면 총 9회. 사람들을 만나 저녁/맥주/와인을 마시는데 쓴 돈. 대부분 홈파티.

230,050원 : 집밥 곽 선생. 식재로 구입에 쓴 돈.   

70,300원 : 모모스 원두 구입이나 커피 테이크 아웃에 쓴 돈.  

86,510 : 1 지출  가장  단위. 이마트에서 이성을 잃었다. 라타 치즈  그렇게 비싸기야?

41,000원 : 1월의 주유비. 이건 너무했다. 아무리 코로나라도 너무 집콕했지.    


이 정도가 눈에 띄는 지출 내역이며, 절약의 상징적인 내역이다. 그래서 너의 1월이 어땠느냐고 물어봐주신다면, 한 단어로 말할 수 있는데 초조함 그 자체였다. 서른아홉의 나는 더 이상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이것은 일종의 금단 증세로 봐야 한다. 12월에 비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으며, 사람 만나는 횟수를 줄였다. 그래서 원하는 대로 더 많은 책을 읽었으며, 이렇게 글도 꾸준히 올리고 있다. 하지만 집밥을 먹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커피를 내리다가도 문득문득 느껴지는 이 초조함의 정체는 뭘까? 2월부터 본격적으로 알아가 보기로 한다.



어른의 용돈은 일주일에 얼마가 적당할까. 1월의 가계부를 칭찬해준 J에게 이 초조함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2월 한 달만 더 일주일에 15만 원 쓰기에 도전해보고 적정 수준의 어른의 용돈을 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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