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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밤 Sep 01. 2023

죽는 것 대신 피아노를

가끔 죽음을 생각한다. 순간적으로 죽고 싶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정확히는 살고 싶지 않다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지금 내 모습이 너무 맘에 안 들 때,

과거 내 모습이 너무 후회가 들 때,

현재 내 모습이 과거 내 행동에 대한 대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돌이키기 힘들다는 느낌이 들 때,

앞이 깜깜해서 희망이 안 보인다고 느껴질 때.


난 몰랐는데, 상담 공부를 하다 보니 내가 젊은 시절 우울증을 겪었었구나 싶다. Dsm 진단기준에 많이 해당이 된다.

그땐 몰랐었으니 치료를 받지도 않았지만 용케 난 극복해 낸 것 같다.


그러나 또다시 순간적으로 살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시험관 시술을 한 지 1년이 되었고 유산을 겪은 후부턴 배아 유전자 검사(pgt)라는 걸 하고 있는데,

한 번은 통과된 양질의 배아로 착상이 되지 않았고,

최근엔 검사에 통과가 된 배아가 없었다.


이 모든 것이 내탓이다. 이성 간의 관계에서 젊은 시절 오만했던 내 자신이 떠 오른다. 내게 차이면서 "그러다 아기 갖기 힘들어져"라고 한 오래전 연인의 말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얼마 전까지 활기찼던 나는 또 어느새 활기를 잃었다.

재미가 없었다. 갈 곳을 잃은 거 같았다. 죽으면 어떨까 하는 맘이 순간 들었다.


그때 든 생각 중 하나가 음악이었다. 바이올린을 전공하려다 그만뒀으니 준전공자 수준에서 멈추고 그 뒤로 수 십 년을 건들지 않았었다. 

음악을 하자. 피아노부터 하자.

죽고 싶단 생각을 한 다음 날, 설레고 두려운 마음으로 피아노 학원 문을 열고 들어가서 끊었다.


이제 한 달이 되었다. 두려워했던 것에 비해서 잘하고 있어서 진도가 빨리빨리, 착착 나가고 있다.

다 잊은 줄 알았던 내 손가락 감각들이 살아나고 있다.

35년 만에 잡았지만 본능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손가락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이 설레고 긴장된 느낌에 행복해진다. 다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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