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를 탓할 뻔한 순간

어른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 책임질 줄 알아간다는 것이다

by 춤추는나뭇가지
석류를 탓할 뻔한 순간


열등감이 있거나 결핍이 많은 사람은 사소한 일에도 화를 잘 내고 분노의 감정을 잘 쏟아낸다. 내 잘못을 타인에게 전가하고 자신도 모르게 남 탓하는 습관이 배어있다. 어느 날 그런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석류를 좋아하던 나는 냉장고에서 석류를 꺼냈다. 반으로 잘린 석류지만 먹기가 불편했다. 씨방이 여럿으로 나뉘어 있어서 보석처럼 빛나는 석류씨들을 떼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다시 반으로 잘라 4등분으로 만들어야 좀 쉽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반으로 나뉜 석류를 다시 반으로 자르기 위해 칼을 대고 다른 쪽 손으로 눌렀다. 석류의 껍질이 얼마나 단단한지 칼이 쉽게 들어가지 않았다. 칼을 쥔 손에 온 몸의 힘을 실어서 내리눌렀다. 그 순간 두꺼운 석류 껍질을 뚫고 지나가는 듯하던 칼이 석류의 정중앙을 지나지 못하고 비뚤어지면서 내 손을 스쳤다. 언젠가 경험했던 익숙한 순간이 스쳤다.


참치 캔에 손가락을 크게 베어 철철 흘리는 피를 손으로 잡고 있던 모습이 순간적으로 오버랩되었다. 그때 병원에서 손가락을 몇 바늘 꿰매기도 했고 이차 오염이 되어 다시 치료받기도 하며 고생했다. 손가락 하나 못쓰게 된 것뿐인데 생활이 불편한 점들은 한 둘이 아니었다. 가장 불편한 것은 머리 감는 일이었다. 한 손으로는 머리를 감을 수가 없었다. 비닐장갑을 끼고 감아보기도 하고 딸에게 감겨달라고 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미용실 가서 약간의 수고비를 내고 머리 감기 서비스를 받기도 했다.




손가락을 보니 살갗이 잘린 부분이 꽤 넓었다. 무작정 옆에 있는 화장지를 뜯어 잘린 부분에 대고 다른 손으로 꽉 눌렀다. 피가 나오지 않게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꽉 잡고 있으니 피가 나오지는 않았다. 얼마나 꽉 눌렀던지 피는 나오지 않았다. 괜찮으려나 싶어 누르고 있던 손을 살짝 떼자 바로 솟아 나오는 피가 보였다. 다시 꽉 눌렀다. 피가 멈추어 나오지 않게 되기까지는 오래도록 잡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다른 한 손으로 다친 손가락을 꽉 잡고 있으니 피는 나오지 않았지만 점점 다친 부위에 통증이 느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이 심해졌다. "이 눔의 석류들이 나를 힘들게 하네" 하는 생각이 스치면서 동시에 "석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석류는 가만히 있었어. 내가 석류를 샀고, 내가 석류를 꺼냈고 내가 석류를 잘라야겠다고 결정했어" 하는 소리도 같이 들렸다. 죄 없는 석류를 탓할 뻔했다.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


자신이 잘못을 해놓고 세상 탓을 하던 내가 보였다. 가난한 부모님 때문에 힘들게 살고 있다고 탓하고, 예쁘게 태어나지 않아서 뭘 못한다고 탓하고,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세상을 탓하고, 부모님의 제대로 된 보살핌이 없어 내가 행복하지 못했다고 탓하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어려서의 삶은 누군가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성인이 된 후에도 자신의 삶이 누구의 탓이라고, 누구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어리석게 삶을 낭비하는 것이다. 재능이 없어 그림을 못 그린다고 생각하고 평생 그림을 그리지 않았던 것도 내 선택이었고, 타고난 재능은 없지만 그리고 싶으니까 그림을 그리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내 선택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삶의 질은 아주 다르게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이었다. 진로에 대한 중요한 결정을 하면서 나에게 의논을 하지 않고 먼저 결정을 하고 통보를 했다. 처음에는 약간 섭섭했다. 엄마인데 의논을 해주었으면 했다. 아빠와는 얘기를 했다고 했지만 내 존재감이 그렇게 없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에는 서운했던 마음이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에 대한 믿음으로 바뀌었다. 자기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모습을 보니 세상으로 나갈 준비가 되었다는 믿음이 생겼다.


부모도 아이의 삶을 대신 선택하고 결정할 권한이 없고, 아이의 삶을 부모가 대신 살아줄 수도 없다. 누구도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수도 없었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또한내 삶을 대신 결정하게 내버려 두어서도 안된다.


손가락을 다치리라는 것이 미리 예견된 것도 아니었듯이 삶이라는 길에는 뜻밖의 어려움에 직면할 수도 있고, 절망의 순간에 처할 수도 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왜 이런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는지 세상을 탓할 수도 있고, 이 어려움에서 일어설 방법을 찾으려는 선택과 결정을 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것은 자유다. 동시에 결과에 대한 책임도 모두 자신의 것이다. 스스로 책임질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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