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판편지로 하는 학급 경영

Episode 6 곰손이어도 괜찮아요.

by 꾹쌤

넓은 범위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초등학교 교직생활.

초등 남교사로 10년 정도 담임을 맡아보니

가장 두려운 시간은 다름 아닌 미술 시간.

내공을 쌓고 노력하니 조립하기, 오리기, 붙이기는

시범다운 시범을 보여줄 수 있는데 문제는 그리기.

도저히 내공이 쌓이지 않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릴적 미술시간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시간이었고

미술시간 작품 만들기는 보통 주어진 시간의 반 정도 남겨놓고 대충 완성했던 것 같다.

잔망스러운 말투와 몸짓으로 친구들 즐겁게 해주는 일에 희열을 느끼던 '나'는

당연히 남은 그 시간을 웃고 떠들며 보냈고, 선생님께 매번 호되게 혼이 났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미술 시간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남한테 피해주지 마렴."


교사가 되어 미술 수업 중 마주한 미미한 나의 능력에 아쉬움도 남지만

어찌할 줄 모르게 만드는 학생들을 보면 울화가 치민다.


학생 (미술 활동 시작 5분 경과)"선생님 다했어요"

교사 "완성한 결과물 선생님한테 가져오렴."

학생 "다했으면 놀아도 되는거죠?"

교사 "선생님이 준비물 다시 줄테니 정성 더 담아서 완성해보자"

학생 (준비물 다시 받고 10분 경과)"선생님 진짜 다 했어요. 놀아도 되는거죠?"


사실 학생이 가져온 결과물은 매우 우수한 것은 아니지만 수업이 종료되고 확인한다면

어찌저찌 '괜찮네~'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의 결과물. (아우, 얄미워!)

분명 수업 설계에는 문제가 없었다.

설명 10분 활동 60분 피드백 10분.

하지만 곧잘하는 학생이 이렇게 80분짜리 미술시간을 30분도 채 되지 않아 흐려버리니

나머지 학생들도 웅성웅성.


"빨리하고 우리도 놀자"

"야! 나 도와줘 빨리 끝내고 놀자"


결국 '빨리 끝내기' 경쟁이 되어버린 미술시간.

그 와중에 입을 앙다물고 집중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이미 흩어져버린 집중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다.


오늘 미술시간도 망했구나.

스스로 하는 자책도 자책인데

학생들에게 양질의 수업을 제공하지 못했다는 패배감이 짙게 깔려

어금니를 꽉 깨물고 비빈다.


결국 종례 전 자조섞인 잔소리를 쏟아 본다.

"선생님도 미술은 잘 하지 못해요."

"선생님도 어릴 적 미술시간에 많이 혼났어요."

"선생님도 대충 하고 노는 것이 좋았어요."

"선생님도 조용한 미술시간을 시끌벅적하게 만들었어요."

"근데 그거 알아요? 선생님이 된 선생님은 5분짜리 '중'보다 1시간짜리 '하'에 더 감동해요."


곰손이어도 괜찮다.

느릿느릿 성실하게 움직이는 손이

세상 어느 손보다 아름답게 보일 수 있다.

어떤 친구에게는 성실함의 감동을

선생님에게는 어지러운 설명과 가소로운 시범이 존중받았다는 뿌듯함을 줄 수 있으니까.


하고 싶은 말은 편지를 통해서 한 번 더 전달. 선생님 마음 좀 알아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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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고 얄미운 여우손이기보다는 우직하고 성실한 곰손이 되어주세요.

미술 시간이면 속이 울렁이는 선생님에게 힘이 되어주세요.


오늘도 이렇게 편지쓰기를 통해 하는 학급경영이 힘을 얻어가고 있어요.


다음 이야기 미리 보기

Episode 7 비밀 같은, 비밀 같지 않은.

“우리 반에 좋아하는 친구 있어?"

“우리 반에서 호감있는 이성이 있다? 없다?”

진실게임. 비밀을 공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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