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 끝에 낙이 온다
이번주는 필리핀 보홀에 다녀왔다. 월요일 밤 비행기여서 일하다 말고 공항에 가야했다. 다행히도 회사에서 허락을 받고 집에 들러 캐리어까지 가지고 일찌감치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야무진 동생이 모든 여행계획을 기획해놓아서 마음 놓고 다녀올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도착한 필리핀 보홀은 내 좁은 시야를 태평양 바다만큼 넓게 펼쳐주었다. 깨끗한 공기와 산들거리는 야자수, 무엇보다 반짝 반짝 빛나는 햇살과 따스한 날씨는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내 어깨를 당당하게 펴주고 있었다.
'내가 죽어서 천국에 온 걸까' 구겨진지도 몰랐던 마음이 펴지자 나는 관대해졌다. 사실 내가 원하던 곳은 프랑스가 아니라 동남아였던 것 같다. 날씨는 여행 내내 화창했고, 얼어있던 내 몸에 생기를 불어주었다. 감사한 마음은 저절로 따라왔다. 꼭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웃음과 기쁨이 만연해졌다.
툭툭이 기사는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이 부럽다고 했다. 한국의 매서운 추위와 혹독한 여름을 겪지 못한 필리피노는 필리핀의 여름이 지루했나보다. 한창 햇빛을 받아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나에게 지금처럼 너무 더운 날씨 때문에 일하기가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날씨가 너무 더워져서 엘리뇨 현상이 나타나고 나무들이 말라죽는다고 했다.
한국 날씨에 단련된 나에게는 필리핀의 더위쯤이야 선풍기와 에어컨 없이도 지낼만 했다. 특히 나는 더위에 강하다. 게다가 과일이 지천에 널려있고, 음식이 맛있었다. 간간히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졌다.
같은 공간에 있는데도 상반된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게 재밌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여행을 왔고, 툭툭이 기사는 치열한 삶의 터전이기에 그랬던 것일까. 하긴 나도 한국에 놀러오는 외국인이 이해되지 않았다. 한국의 편리한 인프라를 떠나서 변화무쌍한 날씨에 질려버려서 30년 넘게 한국을 떠날 궁리만 했다.
어쩌면 감사를 유지하기 위해서 머물러 있는 공간을 떠나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비록 한국에 돌아와서 원인 모를 알러지로 고생하고 있지만, 여행에서 가족과 함께한 시간은 나를 더 단단하게 해주었고, 삶의 터전에 돌아와서도 삶을 마주할 용기를 주었다.
무엇보다 짐을 쌌다 풀렀다하는 일 없이 침대가 고정된 곳에서 지낸다는 안정감은 여행을 떠나고 돌아와서야 느낄 수 있는 사소한 감사를 허락해주었다. 앞으로 내가 한국에서 계속 살지 말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일 일터로 가는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음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