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여자와 남자, 후추와 참깨 넷이 함께 살 때부터 후추에게는 집요한 구석이 있었다.
그때 동물은 주인과 닮는다며 주변인들이 자주 나와 참깨를 하나로, 끈기와 뱃심이 야무진 남자와 후추를 하나로 엮곤 했다.
고양이들이 아주 작아서 심장이 뛰는 게 신기하게 느껴질 때부터 후추는 쭙쭙이를 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내 팔에 매달렸다.
일찍 어미를 여읜 짐승들이 내게 바라는 위로였다. 후추는 자주 내 팔 위에서 정신없이 손가락을 빨다가 그대로 혀를 내밀고 잠에 빠져들었다.
그가 원할 때면 내 무릎과 품과 손과 가슴은 자주 나의 것이 아니게 된다.
좀처럼 고집을 꺾지 않아 안식이나 편한 잠도 자주 그에게 반납한다.
익숙한 의자에 무릎을 굽혀 앉아있으면 후추는 잊지 않고 왼쪽 무릎 끝에 자리를 잡고 늘어진다. 기분 좋아 들뜬 꼬리를 살살 치며 책상 위의 노트북이나 점심거리들을 방해한다. 엉덩이는 어찌나 무거운지 다리가 저릿해 못 견딜 정도가 되어서야 실랑이 끝에 그를 바닥에 내려놓을 수 있다.
그러면 그가 능글거리며 다시 올라오기 전에 다리를 질질 끌고 다른 곳으로 피신한다.
편한 자세로 뒤따라 온 후추의 부드러운 등과 뒤통수를 쓸어주곤 한다.
내가 단잠에 빠져있든 빠지기 직전의 달콤한 때이든 후추는 개의치 않고 내게 치닫는다.
손과 품을 내놓으라고 이불을 긁고 손을 들추고 얼굴을 들이민다.
우리 집에서 가장 작은 동물과 싸우면 나는 높은 확률로 백기를 든다.
그에게 손을 내어주고 찝찝하고 맑은 정신으로 잠과 서서히 멀어지기가 일쑤다.
머리서기 할 때마다 방해하는 휘둥그레한 얼굴
오늘도 침대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잠을 편하게 청하기 위해 산 큰 매트리스다. 고양이들이 나를 매트리스로 쓰는 바람에 별 효용이 없게 됐지만.
작은 괴물이 또 무릎과 책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능구렁이처럼 느린 몸짓과 나른한 그릉소리를 뿜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