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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물 Apr 20. 2020

잿빛 사전

내 사전에 갈수록 오역이 불어난다. 당신이 주신 답변에 이런 건 없었다.

나는 왕년에 뭐야쟁이였다.
인생의 8할이 엄마이던 시절, 엄마가 어딜 가든 딸려나가는 막내딸은 하루에도 열댓 번 물었다.


- 저거 뭐야?

- 이게 뭐예요?

- 왜요?

- 언제 집에 가?


말 끝에 언제나 ?나 !가 붙었다. 세상에는 궁금한 것도 놀라운 것도 많았다. 궁금한 것 중 반절은 나를 놀라게 했다. 찌르는 족족 모르는 것이었으니 세상에 깨우칠 것이 아득하게 많았다.

모든 게 처음 들어 차 정의되는 나이, 그 시절 보이지 않는 나만의 사전을 늘상 옆구리에 끼고 다니다 세상의 답변을 삐뚤빼뚤 적어냈다. 몰라서 좋고 어려워서 다행인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엄마는 사실 성실한 답변가는 아니었다. 필요하다 싶으면 이야기까지 덧붙여 열심히 설명해줬지만 귀찮은 물음표가 수시로 귓등에 붙을 때면 대답을 생략해버렸다. 그러면 나는 목소리에 박차를 가해, 어? 어?? 어???????

엄마의 미간에 주름을 만들었다.


그 시절 생각보다 질겼던 는 눈썹에 나름의 각을 잡고선 소리쳤다.


- 엄마. 왜 대답을 안 해? 물어보잖아요!


마지못한 엄마는 '대답 없으면 그냥 긍정인가 보다 하지 고집은..' 하고 귀찮음을 떼어내었다.

엄마는 간과했던 것이다. 생각보다 질긴 아이라는 걸. 그렇게 그의 괴로운 2년이 시작됐다.

나는 이후 서술형 질문을 단답형으로 자주 바꿔 던졌고, 그가 침묵하면 두어 번 묻지 않고 곧바로 실행했다. 나중에 엄마가 왜 이걸 하고 있냐 화를 내면,


- 엄마가 대답 안 하면 긍정인 줄 알라며! 허락한 거잖아!


해맑게 웃으며 사고를 쳤다. 저 작은 물음표 살인마가 뱉은 말을 무르려 하면 꼬치꼬치 캐물어 피곤하게 할 텐데 어쩌나. 엄마는 골머리를 앓았다. 그게 아니라고 해도, 성을 내봐도 딸애 머리에 박힌 유리한 답변은 물러지지 않았다. 그러고 무려 2년을, 나는 그의 침묵을 수긍으로 오인하며 미성년의 독단자가 되었다.

그렇게 뻔뻔한 억지가 계속되던 중, 엄마는 마음을 굳혀 내 어깨죽지를 붙들었다.


- 딸. 말에는 힘도 있고 색깔도 있다.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냥 궁금한 것과 놀랄 것이 하나 더 추가됐다.


- 엄마가 그때 한 말은 하얀 말도 검은 말도 아니었는데, 그런 말은 힘이 없는 줄 알았지.


    놀라는 중이었다. '하얀 거짓말'에 대해 얼핏 들은 적 있었다.


- 근데 우리 딸이 그런 말에도 힘이 있다는 걸 알려줬네 엄마한테. 이제 말조심할게. 그때 그 긍정 어쩌고 말은     우리 이제 취소하자.


    느낌표가 만들어졌다.


내게 박혀있던 침묵과 긍정의 호환체계는 공기 속으로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다른 말이 들어찼다.

"말에는 힘도 있고 색도 있다"

어딘가 단단하고 멋있어 보이는 이 말이 마음에 들어 오래도록 만지작거렸다.

십 수년 후, 처음 깨우치는 것은 드문하다. 머리도 키도 엄마만치 자란 나는 말의 힘을 조절하고 여기저기 색을 입혀 치장할 수 있게 됐다. 뭐야쟁이의 답변 사전이 차곡차곡 쌓여 제법 그럴싸한 문장을 지어 보이게 된 것이다.

날이 갈수록 완성에 가까워질 줄 알았던 나의 사전은 해를 거듭할수록 미궁에 빠졌다. 힘과 색에 주도권을 가질수록 혼란해졌다. 어릴 때는 단어 맞추기만으로 대화가 됐는데 세상이 자꾸 응용과 심화를 요구했다.


말은 쉽고 표현은 어려워지면서 많은 말들이 검거나 희기보다는 잿빛을 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얀 거짓말은 생각보다 희지 않았다. 누군가 내 보인 '하얀 거짓말'은 거무죽죽 때 타 있었다. 검다고 느껴지는 사람은 되려 뽀얗고 괴상한 말들을 늘어놓았다. 그것 중 아주 암흑의 언어는 없었다.

정체를 모를 말들이 너무도 쉽게 튀어나오기도 했다. 진실인지 거짓인지, 눈곱만큼이라도 너를 위한 건지 지극한 이기에서 싹튼 건지, 말의 힘이 상처를 남길지, 숨기기 위한 말들은 거짓말인지 안위인지 그럼 이건 흑과 친한지 백과 가까운지. 아무것도 모른 채 모든 걸 아는 사람처럼 속 빈 껍데기를 토해내는 날에는 내내 말의 변기 속에 갇혀 유영해야 했다.


갈수록 분명한 것이 희귀해진다. 확고하게 안다 여겼던 것은 이제 틔미하고 느낌표 대신 말꼬리를 늘이는 점들이 줄을 잇는다.

수많은 물음표 끝의 명쾌한 직선이 드물다. 모든 극과 확고함은 어린 손아귀에만 쥐어질 수 있었나.

어린 내가 하는 질문에 어떻게 엄마가 몇 문장으로 답할 수 있었는지, 내 물음이 그에게 어렵진 않았을지.


열두 색 크레파스로 작은 도화지를 칠할 때에는 색 조합 같은 건 어렵지 않았고, 비슷한 키의 모두가 비슷하게 큰 목소리로 말할 때에는 힘 조절 같은 건 몰라도 마냥 즐거웠다.

사전에 백지가 많던 때로 돌아갈 도리가 없어 잦게 절망하고 막막한 심정으로 색이 바랜 말 앞에 고쳐 앉는다.


내 사전에 자꾸 오역이 불어난다. 당신이 주신 답변에 이런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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