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여지는 경험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내가 받아들여진다는 것
아이가 8살이 되도록 손 빠는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었다. 나무랄 일이 아닌 것이, 나 또한 어릴 때 늦게까지 손을 빨았었다. 그렇다고 해서 손 빠는 아이를 방치해 둘 순 없었다. 심정적으로는 이해가 된다 해도 손 빠는 것의 결과가 아이에게 이롭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니, 사실은 늦게까지 손 빠는 사람이라는, 나와 똑 닮은 점을 그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고 부끄럽기 때문이었다.
버릇을 고치는 방법에 대해 남편과 의논하고 싶었다. 강경한 태도로 손을 빨 때마다 지적을 할 것인지, 어떤 장치(손에 뭘 바른다든가 하는)를 이용하여 간접적으로 습관과 멀어지게 할 것인지 이야기하고자 했다. 아이 아빠는 평소에 그것에 대해 별 언급을 하지 않던 터라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 밖이었다.
"가만 놔둬."
그는 초연한 태도를 일관하며 그게 무슨 큰 문제라도 되냐는 듯이, 아무 문제없고 아이가 언제까지고 손을 빨든 말든 그저 예쁘기만 하다는 듯이 말했다. 가슴속에서 뭔가가 뜨끈뜨끈해지며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가 고마웠다. 그때는 당황했는지 나도 모르게 고맙다는 말 대신 나 어릴 때도 그랬었다며 "그렇지? 놔두는 게 낫겠지?"라고 하면서 아무 말이나 해댔다.
나와 닮은 점이 있는 아이가 존재 자체로 온전히 받아들여짐을 통해, 나 또한 동시에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한 것이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 더 이상 아이의 손빠는 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엄마가 편안해짐을 저도 모르게 눈치채서 아이도 편안한 마음을 먹게 된 것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손빠는 습관을 스스로 고쳤다.
아이 덕분에 결핍이 조금씩 메워지는 중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미워하는 나 자신이 바뀌고 있다. 아이가 그런 경험을 제공해 준다. 아이가 없었다면 받아들여질 때의 따뜻한 정서를 느끼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를 키우며 엄마도 성장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