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을 누가 가져갈 것인가
"엄마 때문이야"를 듣고 싶지 않은 몸부림
아무리 바쁜 와중이라도 "엄마"하고 부르면 최대한 온화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대답하는 족족 "엄마"하며 또 다음 이야기를 술술 꺼내어 혼미한 지경이 되어도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아이들이 엄마를 편하게 부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다 보니 습관이 되었다. 지금 엄마를 편하게 부를 수 있어야 앞으로 점점 대화가 줄어드는 시기가 와도 마음의 문을 꽉 닫지는 않을 것 같아서이다.
습관은 점점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변질되어 "어~?"라고 대답은 온화하게 해 놓고 뒷 말은 귀담아듣지 않는다. "뭐라고 했어? 다시 말해봐", "잘 안 들려, 뭐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어"라며 대답을 유보한다. 그렇게 매일같이 자동 반사하듯이 반응하던 와중에 '그렇게 하면 온화하게 대답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질문이 내면에서 떠올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엄마로서 원망을 받고 싶지 않다. 언제라도 딸들이 나를 원망하는 말을 한마디도 듣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 '엄마 탓'이라는 송곳 같은 비난은 너무 아플 것 같아서 일절 받기가 싫다. 결국은 딸의 내면에서 나를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따뜻하게 대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엄마 탓' 좀 하면 어떨까? 가끔은 마음이 힘들어 엄마에게 화풀이하는 날도 있을 것이고, 가끔은 감정쓰레기통이 되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엄마 탓'을 받아주는 게 진정한 받아들임이지, 나처럼 수시로 그때그때 방패로 튕겨내듯이 하는 것을 받아들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책임거리를 완벽하게 수행해 냄으로 인해서 당장의 원망을 막는다면, 아이들 입장에서 엄마는 완벽하니까 '이 모든 건 내 탓'이라는 생각이 저도 모르게 생기지 않을까?
기껏 애지중지 키워 놨더니 엄마를 원망한다?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해봐야 한다. 아이들은 크면서 언제든 그럴 수 있기 때문에 이제라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가끔은 엄마 탓이라며 찌르는 말도, 원래 구멍이 있기 때문에 타격을 입지 않는 쿠션처럼 받아줄 용기도 필요하다. 때때로 맞대응을 하더라도, 그렇게라도 엄마의 불완전한 모습까지도 보여주어 죄책감을 일부 나눠가지기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