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남겨두는 그 마음』을 읽고 씁니다.
"빠르게, 빠르게"를 외치는 세상입니다. 회사에서 주로 쓰는 말은 아마 "가능한 한 빨리"일 거예요. 업무든, 성공이든 빨라야 인정받는 세상에 '느려도 괜찮은 순간'이 있습니다. 그 시간은 바로 시를 읽는 시간입니다.
시는 속독할 수 없는 장르입니다. 눈으로 빠르게 훑으며 읽는 것이 불가능하지요. 시를 읽을 때에는 세상의 속도와는 정반대로 한 템포 느리게 갑니다.
사실 제가 즐겨 읽는 책은 에세이 장르로 시집은 일 년에 두어 권 읽을까 말까 해요. 그래서 어떤 시집을 소개해드릴지 참 고민이 많았습니다. 학창 시절, 시를 해부하듯이 분석하며 거창하게 문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시집을 소개하고 싶었거든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은 시를 읽지 않는 사람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을 거예요. 몇 글자 안되는 이 문장이 사람들의 마음에 오래 남은 이유가 시가 가진 힘이라고 생각해요.
나태주 시인의 『끝까지 남겨두는 그 마음』 필사 시집을 골랐습니다. 등단 50주년을 맞이하는 나태주 시인의 작품 중 필사하기 좋은 시를 뽑아 만든 첫 필사 시집이라고 해요. 그중 가장 곱고 예쁜 시를 한편 소개할게요. 사랑하는 이를 떠올리며 찬찬히 읽어보시길 바라요.
<너를 두고>
세상에 와서
내가 하는 말 가운데서
가장 고운 말을
너에게 들려주고 싶다
세상에 와서
내가 가진 생각 가운데서
가장 고운 말을
너에게 들려주고 싶다
세상에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표정 가운데서
가장 예쁜 생각을
너에게 주고 싶다
이것이 내가 너를
사랑하는 진정한 이유
나 스스로 네 앞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이다
유독 시를 읽다 보면 보석 같은 문장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그 문장을 만나면 시인이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는 그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래서 시는 빠르게 읽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시인이 고르고 다듬는 그 시간의 속도에 우리도 발걸음을 맞춰야 시를 흠뻑 이해할 수 있거든요.
요즘 제가 읽고 또 읽는 시집이 있습니다. 박준 작가님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입니다. 읽을 때마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문장을 발견합니다. 어딘가에 기록해두고 계속 읽고 싶은 문장들을 골라 소개할게요.
옥상에 널어놓은 흰 빨래들이 밤새 별빛을 먹어 노랗게 말랐다
그때 우리는 자정이 지나서야 좁은 마당을 별들에게 비켜주었다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여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봄날에는 '사람의 눈빛이 제철'이라고 조그맣게 적어놓았습니다
날아오른 새들이 들깨씨를 토해놓은 듯 별들도 한창이었습니다
저는 시 초보라 문학적인 관점에서 시를 해석하며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어떤 시는 여러 번 읽어야 어렴풋하게 그림이 그려지는 시도 있고요. 그래도 고운 단어, 멋진 문장을 만날 수 있다면 시를 자주 접하고 싶습니다. 시에 감응하는 순간, 그 순간이 요즘 제 일상에서는 '느려도 괜찮은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해당 글은 제가 운영하고 있는 <1101레터> 뉴스레터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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