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싫은 사람, 좋아하게 될 수 있을까?

원시 뇌를 의식적으로 깰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깨야 한다는 것

by 꾸더칸

한 선배가 있었다. 처음 본 순간부터 뭔가 거슬렸다. 말투가 빠르고 단호했고, 칭찬이 없었다. 회의실에서 그가 입을 열면 어깨가 굳었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하나같이 그를 좋아했다. '나만 이러는 건가?' 싶어 일부러 그의 장점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빠른 판단력, 정확한 피드백, 두루뭉술함이 없는 명확성. 점점 그게 보이기 시작했고, 어느 날 미팅이 끝난 후 '오늘 배운 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그를 좋아하게 됐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달라진 건 있었다.

이 질문 '싫은 사람을 의도적으로 좋아하려 할 수 있느냐' 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심리학적 질문이다. 먼저 두 가지를 분리해야 한다. '원시 뇌의 반응을 의식적으로 바꿀 수 있는가'와 '그렇게 해야 하는가'. 이 두 질문에 대한 답은 각각 다르다.


뇌는 바뀔 수 있다 - 익숙해지면 좋아진다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자이언스(Robert Zajonc)는 1968년 단순하지만 놀라운 실험을 했다. 사람들에게 낯선 자극을 반복해서 보여줬다. 한자, 무의미한 도형, 사진. 그 결과는 명확했다. 보면 볼수록, 더 좋아했다. 이것을 '단순 노출 효과(Mere Exposure Effect)'라고 한다.


자이언스는 이렇게 정리했다. "한 개인이 어떤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그 자극에 대한 태도가 긍정적으로 변화하기에 충분하다."


이 효과가 사람에게도 작동한다는 것은 이후 수많은 연구로 검증됐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같은 공간에서 자주 마주치는 사람일수록 호감이 생긴다. 처음엔 어색하고 불편했어도, 얼굴이 익숙해지면 뇌가 그 얼굴을 '안전'으로 분류하기 시작한다. 원시 뇌가 '낯선 것 = 위험'으로 처리하던 것이, 반복 노출을 통해 '아는 것 = 안전'으로 재분류되는 것이다.


단, 중요한 조건이 있다. 자이언스의 연구에서도, 이후 분석에서도 발견된 것이 있다. 이 효과는 처음부터 강한 부정적 감정이 없을 때 가장 잘 작동한다. 처음부터 확실히 싫은 감정이 있었다면, 단순히 자주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뇌는 다시 쓸 수 있다 - 그러나 인식이 먼저다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자 캐럴 드웩(Carol Dweck)은 평생 한 가지 질문을 파고들었다. 인간의 능력과 태도는 고정된 것인가, 바뀔 수 있는 것인가.


그녀의 연구는 분명하다. 뇌는 변한다. 이것을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고 한다. 새로운 경험을 하고,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생각을 훈련하면, 뇌의 신경 연결 자체가 달라진다.


드웩은 이것을 '성장 마인드셋'이라 불렀다. 핵심은 이렇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다'라는 판단을 고정된 것으로 여기는 순간, 뇌는 그 판단을 확증하는 정보만 골라서 처리한다. 반대로 '이 사람에게서 배울 것이 있을 수 있다'는 열린 태도를 가지면, 뇌가 실제로 다른 정보를 포착하기 시작한다.


싫은 사람의 장점을 찾으려 했을 때, 실제로 그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건 억지로 좋은 척한 게 아니다. 뇌의 정보처리 방식을 바꾼 것이다.


그렇다면 좋아지는 걸까 - 노출과 학습의 차이

여기서 한 가지를 더 구분해야 한다. '장점을 보게 됐다'는 것과 '좋아하게 됐다'는 것은 다른 결과다.


자이언스의 단순 노출 효과는 중립적인 감정의 상태에서 노출을 반복할 때 가장 잘 작동한다. 그런데 처음부터 강한 역겨움이나 반감이 있었다면, 뇌는 그 반응을 쉽게 지우지 않는다. 이전 글에서 이야기한 행동 면역 시스템은 한번 경보가 울리면 좀처럼 꺼지지 않는다. 특히 신체적 혐오감(체취, 목소리, 외양 등) 이 이미 각인된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다면 인지적 노력으로는 아무것도 안 되는 걸까. 그것도 아니다.


드웩의 연구에서 밝혀진 것처럼, 인식의 변화는 감정까지 서서히 바꾼다. 상대방의 구체적인 장점을 발견하고, 그것이 내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 이해하기 시작하면, 뇌의 보상 시스템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 사람이 불편하다'는 감각과 '이 사람에게서 배운다'는 감각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어느 순간 그 균형이 바뀌어, 불편함보다 배움이 앞서게 될 수도 있다.


단, 그 과정은 의지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주 노출되고, 구체적인 장점을 발견하고, 그것이 나와 연결되는 경험이 쌓여야 한다. 그것이 반복될 때 뇌가 재분류를 시작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론들은 여기까지 말해준다. 뇌는 바뀔 수 있다, 장점을 찾으면 인식이 달라진다, 반복 노출은 친밀감을 만든다고.


나는 여기에 한 가지 질문을 더 얹고 싶다.

왜 좋아하게 되는 것이 목표여야 하는가.


싫은 사람에게서 장점을 배우려는 태도는 훌륭하다. 그 사람의 빠른 판단력, 정직함, 불편한 직접성. 그게 나에게 없는 것이라면, 배움의 태도로 바라보는 것은 성장이다. 드웩이 말한 성장 마인드셋의 정수가 거기 있다.


그런데 그 배움의 끝이 반드시 '좋아하게 됨'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를 배움의 대상으로 볼 수 있다는 것과, 그 사람 곁에 있는 게 편하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불편함이 해소되지 않은 채로 배움만 가져가는 것도 가능하다. 어쩌면 그게 더 건강한 관계일 수 있다. 억지로 '저 사람 좋은 사람이야'라고 뇌를 설득하다가 정작 자신이 느끼는 것을 지워버리는 것보다는.


원시 뇌의 반응을 인식하고, 그것이 편견인지 본능인지 구분하고, 편견이라면 의식적으로 다른 시각을 훈련하는 것. 이건 성숙한 행위다. 그러나 본능이 보내는 신호를 억지로 덮고, 강제로 호감을 만들어내려 하는 것은 다르다. 후자는 자기 서사를 지우는 일과 가깝다.


그래서 나는 목표를 이렇게 바꿔 제안하고 싶다. '이 사람을 좋아하게 되자'가 아니라, '이 사람을 더 입체적으로 보자'. 입체적으로 보게 됐을 때 자연스럽게 호감이 생기면, 그건 진짜다. 그러나 입체적으로 봐도 여전히 불편하다면, 그건 그 사람과의 거리를 어떻게 조율할지를 더 명확하게 알게 됐다는 뜻이다.


어느 쪽이든, 처음보다 더 나은 상태다.

원시 뇌는 깰 수 있다. 그러나 깨는 방향은 '억지로 좋아하기'가 아니라, '더 넓게 보기'여야 한다. 그 차이가, 결국 자기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성장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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