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싫어하는 사람을 내 친구가 좋아할 때

왜 하필 그 사람이야?

by 꾸더칸

카페에서 친구를 만났다.

반가운 마음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구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왔다.

"있잖아, 나 요즘 그 사람 글 진짜 좋아해. 너무 따뜻하지 않아?"


순간 커피 한 모금이 목에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딱히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꽤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 직접 만나봤을 때 느낀 그 서늘한 눈빛, 다른 의견에 단 한 치의 틈도 없이 방어하던 태도. 그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데, 내 친구는 그 사람을 "따뜻하다"라고 한다.


불쾌한 건데, 말할 수가 없다.

"나 그 사람 싫어"라고 하면 이상하게 들릴 것 같아서. 그냥 어색하게 웃으며 화제를 돌린다. 그 불쾌함은 어디서 온 걸까.


삼각형이 무너질 때 - 하이더의 균형 이론

심리학자 프리츠 하이더(Fritz Heider)는 1958년에 흥미로운 이론을 내놓았다. 사람은 자기 주변의 관계가 '균형 잡힌 상태'를 원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균형 이론(Balance Theory)이라고 부른다.


이론의 핵심은 간단하다. 세 꼭짓점을 가진 삼각형을 상상해 보자. 나, 내 친구, 그리고 어떤 제3의 대상(사람, 가치관, 콘텐츠 등). 이 삼각형 안에서 각각의 관계가 '+' 또는 '-'로 연결될 때, 세 개의 부호를 곱한 결과가 양수(+)면 균형 상태, 음수(-)면 불균형 상태다.


예를 들어, 내가 친구를 좋아하고(+), 친구가 그 사람을 좋아하고(+), 나도 그 사람을 좋아하면(+) → + × + × + = + → 균형.

하지만 지금 상황은 다르다. 나는 친구를 좋아하고(+), 친구는 그 사람을 좋아하는데(+), 나는 그 사람이 불편하다(-). + × + × - = - → 불균형.


하이더에 따르면 이 불균형 상태는 사람에게 심리적 긴장감을 일으킨다. 불편하고, 어색하고, 뭔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 그 카페에서 내가 느낀 게 정확히 이것이다. 내 친구 관계망 안에서 삼각형 하나가 어긋나 버린 것이다.


이 긴장을 해소하는 방법은 세 가지다.

첫째, 그 사람에 대한 내 생각을 바꾼다. "아, 사실 나쁜 사람은 아닐 수도 있어."

둘째, 친구의 판단을 깎아내린다. "친구가 사람 보는 눈이 좀 없네."

셋째, 그 주제 자체를 회피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세 번째를 선택한다. 그냥 화제를 돌린다. 삼각형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나는 왜 더 불편할까 - Tesser의 자기 평가 유지 모델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들여다봐야 한다. 모든 불균형이 똑같이 불편한 건 아니다. 내 친구가 아무 연고 없는 연예인을 좋아한다고 해서 이렇게 불편하지는 않으니까.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테서(Abraham Tesser)는 1988년에 자기 평가 유지 모델(Self-Evaluation Maintenance Model)을 제안했다. 핵심은 이렇다. 가까운 사람이 나에게 중요한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낼 때, 우리는 그것을 위협으로 느낀다.


중요한 건 두 가지 조건이다. 가까움(closeness)관련성(relevance). 내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야에서 친한 친구가 잘 나가면, 나는 오히려 뿌듯하다. 이것을 테서는 '반사 효과(reflection)'라고 불렀다. 친구의 빛이 나에게도 튄다.


그런데 그것이 나의 자기 정의(self-definition)와 겹치는 영역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도 글을 쓰고, 콘텐츠를 만들고,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그 영역에서 누군가가 팔로워 1만 명을 모은다. 그리고 내 친구들이 그것을 좋아한다. 이때 불균형의 불쾌함은 단순한 삼각형의 어긋남이 아니라, '나의 영역'에 대한 위협감으로 증폭된다.


테서는 이럴 때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의 성공을 '운'이나 '외부 요인' 덕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능력이 아닌 운으로 된 것이라고 해석하면, 비교의 위협이 줄어드니까. 이것은 나쁜 심리가 아니라 자기 보호 기제다.


친구의 눈이 틀린 게 아니다

그렇다면 내 친구가 나쁜 눈을 가진 걸까. 아니면 내가 틀린 눈을 가진 걸까.

둘 다 아닐 가능성이 높다.


사람은 상대방의 서로 다른 면을 본다. 나는 그 사람과 직접 만났고, 의견을 부딪혔고, 닫힌 태도를 경험했다. 그 관찰은 유효하다. 반면 내 친구는 그 사람의 글을 통해, 특정 측면만을 봤다. 어쩌면 그 사람은 그 친구에게는 실제로 따뜻하게 대했을 수도 있다. 사람은 다면체다. 나에게 서늘했던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를 수 있다.


하이더의 균형 이론은 이 지점을 흥미롭게 설명한다. 우리는 관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정보를 왜곡하거나 선택적으로 해석한다. 내 친구는 내 관계망 안의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나에게 더 강하게 느껴진다. 낯선 사람이 그 사람을 좋아한다고 하면 이렇게까지 불쾌하지 않을 것이다.

불균형이 불쾌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그 친구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심리학은 여기까지 설명해 준다. 삼각형이 어긋났고, 자기 영역이 겹쳤고, 그래서 불쾌하다고. 충분히 타당한 설명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얹고 싶다.

이 불쾌함을 해소하려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자꾸 뭔가를 해결하려 한다. 친구를 설득하거나, 내 감정을 없애려 하거나, 아니면 그 사람에 대한 내 판단을 스스로 철회한다. 세 가지 모두 삼각형의 균형을 억지로 맞추려는 시도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관계가 꼭 균형 잡힌 삼각형일 필요는 없다.

나와 그 사람이 어긋나도 된다. 내 친구와 그 사람이 잘 맞아도 된다. 나와 내 친구가 서로를 좋아해도 된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사실일 수 있다. 삼각형이 어긋나 있어도, 그 안의 개별 선들은 각각 유효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불균형을 방치할 때 무너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내 친구가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내 판단을 틀리게 만들지 않는다. 내가 직접 겪은 것은 여전히 진실이다. 그리고 친구가 그 사람에게서 다른 무언가를 보고 있다는 것도 그 친구만의 진실이다.


사람을 흑백으로 나누지 않는 것, 그건 그 사람에 대한 관대함이 아니다. 관계의 복잡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나는 이 사람이 불편하고, 내 친구는 이 사람이 좋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좋은 친구일 수 있다.


감정은 원인을 안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질투인 걸 알아도, 비교하고 있다는 걸 인정해도, 감정은 남는다. 그게 정상이다. 감정을 없애려는 것보다, 그 감정이 있는 채로 잘 살아가는 것이 더 솔직한 삶이다.


삼각형이 어긋난 채로 놓아두는 것. 그게 어쩌면 가장 편안한 해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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