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졌던 나를 다시 찾는 여정이 시작되다

— 마음의 문이 처음 열리던 순간에 대하여

by 꾸더칸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사람들은 막내면 예쁨 많이 받고 자랐겠다 말하지만, 나는 기대를 거스른 아이였다.




부모님이 마지막으로 바랐던 건 아들이었다. 또 딸이 태어난 순간 나는 이미 구석진 자리로 밀려났다. 그 덕에 평생 남자 이름을 달고 살았고, 나의 존재를 부드럽게 드러내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자랐다.

우리 집은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열 식구가 함께였다. 아빠는 회계사였지만 생활비는 늘 부족했고, 엄마는 그 부족한 틈을 악착같이 메우며 살아냈다.


내가 네 살 때 할머니는 중풍으로 쓰러져 14년을 누워 지내셨다. 간병과 살림을 혼자 떠안은 엄마의 삶은 언제나 치열했다. 집안일에 관심 없던 아빠와 항상 바쁜 엄마, 그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각자 알아서 크는 아이들이 되었다. 인정이 어려운 환경에서 우리는 서로 경쟁하듯 상장과 일등 성적표를 가져왔고, “잘했다” 한마디를 얻기 위해 애를 썼다.


나는 늘 반장이었고 공부도 쉬웠지만, 친구는 없었다. 잘한다는 이유로 경계의 대상이 되었고, 선생님들의 특별 대우를 받는 이유로 시기의 대상이었다.

사춘기에 접어들며 점점 더 간절해졌다. “나도 친구가 있었으면.” 고등학교 때 나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인기 만화책을 통째로 빌려 읽고, 인기 가수의 테이프를 사서 가사를 받아 적으며 대화의 언어를 외웠다. 그렇게 얻은 우정은 달콤했지만, 대신 성적은 흔들렸고, 결국 대학 입시에서 큰 실패를 맛보았다.


원치 않던 대학에 정을 붙이지 못했고 결국 9학기까지 방황이 이어졌다. IMF의 폭풍 속에서 아빠가 실직하고, 마지막 등록금을 주변의 도움으로 어렵게 마련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밤새 과제를 하면서도 알바로 생활비까지 보태야 했다.


그때의 나는 ‘내가 원하는 것’보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항상 먼저였다. 그게 버티는 삶의 시작이었다.

서른 무렵, 나는 처음으로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 취직과 결혼으로 자리 잡아가는 친구들과는 달리 나는 길을 잃고 휘청거리고 있었다. 모두가 나에게 실망했고, 나 자신도 나를 믿지 못하던 시기였다.

중국어만 잘하면 먹고 산다는 말에 매달리듯 기대어, ‘니하오’도 모르는 상태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결국 모두의 반대를 뒤로하고 캐리어 하나만 챙겨 하얼빈으로 향했다. 다시는 예전의 나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면서.

낯선 도시에서 하루 12시간씩 공부했고, 언어뿐 아니라 ‘혼자 살아남는 법’을 또다시 배웠다. 그리고 우연처럼 맡게 된 공장 일은 나를 한 번 더 벼랑 끝으로 데려갔다.


중국인 150명에 한국인 둘. 나는 회사 도장과 통장을 관리하며 회사의 모든 실무를 책임졌다. 봉제·회계·노무·관공서 대응까지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웠다. 31살의 내가 감당하기에는 참으로 버거운 일이었다. 필사적으로 버텼지만 회사는 결국 무너졌고, 나는 그 전쟁 속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중국에 남았다.


돌아보면, 나는 참 오래 버티며 살았다. 버텨야 살아남을 수 있었고, 버텨야 인정받을 수 있었고, 버텨야 누군가에게 미안하지 않을 것 같았다.

버티는 동안 나는 점점 강해졌지만, 동시에 더욱 조용해졌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도움을 청하지 않고, 마음을 들키지 않으며 살아왔다. 그렇게 버티는 능력만 자라나고, 나라는 사람은 조금씩 뒤로 밀려났다.


삶이 전부 다 무너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나를 전혀 돌보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욕망도, 감정도, 상처도, 기쁨도, 심지어는 ‘내가 누구인지’조차 생각하지 않은 채 살아왔다.

버티는 데에는 능숙했지만, 사는 법은 잃어버린 듯했다.


중국에서 돌아와 일, 육아, 생계, 관계가 한꺼번에 무너지던 그때, 나는 처음으로 멈춰 섰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더 이상 버티고 싶지 않았고, ‘버티는 방식’으로는 이제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때 처음으로 나에게 질문했다. “나는 본래 어떤 사람인가? 버티는 동안 사라져 버린 나를, 이제 어디에서 다시 찾아야 하나?”

그 질문 앞에 서는 일이 처음엔 두려웠지만, 나는 결국 다시 내 삶의 서랍을 열어보기 시작했다. 잊고 싶었던 기억, 묻어두었던 원망, 외면했던 진짜 마음. 그 모든 것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은 고통스러웠지만, 이상하게도 조금씩 숨이 트였다.




나는 깨닫고 있다.

내가 찾고 싶은 건 화려한 성공도, 남에게 인정받는 삶도 아니다. 그저 버티는 데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원래의 나’라는 존재다. 천천히라도, 한 칸씩이라도, 그 아이에게 다시 돌아가고 싶다.


그리고 아마, 이 글이 그 여정의 첫 문장일 것이다.

아직 명확한 답은 없다. 다만 하나는 분명하다.

나는 더 이상 버티는 것만으로는 살고 싶지 않다. 이제 나는 사라졌던 나를, 다시 찾아오려 한다.

한 걸음씩, 한 문장씩.

내가 드디어 나로 살아갈 수 있는 날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