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너무 더러워.” 그 말이 모든 걸 바꿨다

아들의 마음을 처음 마주한 겨울

by 꾸더칸

올겨울 가장 추운 날씨가 3일째 계속되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현관문을 들어서면서 하는 말이..

“엄마, 날씨가 추워지니까 작년 겨울에 힘들었던 때가 생각났어.”




울긋불긋 핏빛을 머금은 피부는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 얇았다. 그 피부 위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보드라운 담요 한 장만 걸친 아이. 퉁퉁 불어 쭈글 해진 손으로 뜨거운 물에 벌게진 얼굴을 감싸고 울었다.

"더 씻어야 하는데, 씻는 게 너무 힘들어.."


정확히 일 년 전, 작년 12월 초 어느 날.

아이가 사용하는 욕실을 청소하다가 깜짝 놀랐다. 비누트레이가 비어 있었다. 분명 이틀 전 새 비누를 꺼내 놓았는데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더운물 틀어 놓고 놀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샤워할 때 장난치다가 다 녹여버린 줄 알았다. 6학년이면 이제 그런 장난은 치면 안된다고 생각한 나는 아이가 하교하자마자 알아듣게 훈계를 했다.


다음 날, 비누는 또 사라졌다. 나는 이유 모를 공포감을 느꼈다. “이건 뭔가 잘 못 됐어…”

아이가 하교하기를 기다렸다가 다그쳐 묻기 시작했다. 대답은 성의 없었다. 그냥 정상적으로 씻었을 뿐이라고.


그때부터 모든 신경은 아이를 향했다. 어릴 때부터 더운물에 샤워하는 걸 좋아하던 아이는, 학교를 다녀와 여느 때처럼 샤워부터 한다. 그런데 그 시간이 20분에서 50분, 60분, 100분까지 늘어난다. 샤워를 하고 나와 물기를 대충 닦고 담요만 걸친 채 바닥에 물을 흥건히 흘리고 다닌다. 오랜 샤워에 지친 모습이다.

그런데 채 10분이 지나지 않아 다시 욕실로 들어간 아이는 10분 동안 손을 씻는다. 그렇게 손 씻기만 수십 차례. 과도한 비누칠에 다 씻겨나가지 않은 비누는 손에 코팅이 되어 마치 하얀 장갑을 낀 듯했다. 비누가 하루 만에 사라지는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아이를 다그치며 왜 그렇게 씻어대는 거냐고 몰아세웠다. 이미 너무나 깨끗하니 더 씻을 필요 없다고, 많이 씻으면 어디에 어떻게 안 좋은지 차근차근 설명도 했다. 피부와 건강 문제부터 환경오염과 사회문제까지 할 수 있는 얘기는 다했다.

못 알아들을 나이가 아니었다. 아이는 누구보다 괴로워하고 있었다.


이게 결벽증이구나, 오염강박이구나..


왜 이런 일이 또 나에게 일어나는지, 결국은 가족 모두가 다 한 번씩 아파야 끝나는 건지..

남편이 산재사고의 치료를 끝내고 겨우 일터로 돌아간 지 불과 한 달이 지났을 때였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다 꿈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얼마나 착하고 순한 아이인데, 너무 천사 같아서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질까 봐 걱정했던 아이다.


아이는 내가 묻는 질문에 대답을 잘 하지 않았다. 사실을 알게 하는 게 두려웠던 아이는 계속해서 거짓말로 둘러댔다. 이유를 알아야만 했던 나는 며칠을 계속해서 물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학교 화장실이 더럽다고 했다. 그다음엔 자기 반 교실이 더럽다고, 그다음엔 학교 전체가, 다음엔 집까지 전부, 결국엔 자기가 더럽다고 했다. 학교가 더러워서 학교에 다녀온 자기가 더럽혀지고, 집에 와서 자기가 만진 모든 것이 오염된다고 했다.


학교에 다녀온 모든 물건은 집에 와서는 절대 만지지 않았다. 옷도 철저히 매일 빨아야 했다. 한겨울 패딩도 한 번 입고 빨아 달라고 했다. 어떤 날은 갑자기 가방을 빨으라 하고, 한 번 신은 운동화가 더러워 신을 수 없다고도 했다.

내가 외출한 사이에 물티슈 2통을 써서 책상, 책장, 서랍장, 방바닥까지 닦기도 했다. 어떤 날은 행주에 물을 적셔 매트리스와 이불, 베개를 닦겠다며 침대를 물구덩이로 만들었다. 나는 하루에 6~7차례 세탁기를 돌려야 했다.

그러나 아이는, 아무리 닦고 씻어도 깨끗해지지 않는다고 절망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은 날이 갈수록 새롭고, 더 기가 막혔다. 아이와 나는 거의 한 달을 부둥켜안고 울었다. 아이는 계속 씻고 닦느라 힘들어서 울고, 나는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되고 받아들일 수가 없어 울었다. 어르고 달래고 설득하고 야단쳤다가 사정하는 날들이 계속됐다. 정신을 차리고 해결책을 찾으려 해도 방향이 보이지 않았다.


어린이의 오염강박에 대해 자료를 찾을 수가 없었다. 대처 방법이나 치료 방법에 대한 정보도 찾을 수가 없었다. 금쪽이의 영상을 2개 찾아보고는 우리 아이의 불안 요소가 무엇인지 생각하며 관찰하기 시작했다.

정신과 예약도 쉽지 않았다. 청소년을 받아주는 정신과는 드물었고, 가능한 예약은 최소 6주를 기다려야 했다. 지역 청소년 상담 센터에 예약 전화를 할 즈음에 나는 이미 대강의 이유를 파악한 상태였다.


같은 반에 싫어하는 친구가 있었다. 매일 떡진 머리에 어깨엔 비듬이 쌓인 채 지각하는 아이, 수업 시간에는 거의 엎드려 자고 모둠 활동에서는 아무것도 참여하지 않는 친구라고 했다.

그런데 담임 선생님은 그 아이를 야단치기는커녕 엄청 예뻐한다고 했다. 들어보니 그 아이도 마음이 아픈 친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생님이 더 챙겨주는 건 아닌지.


하필 아들은 학기 초부터 담임 선생님과 관계가 좋지 않았다. 별 이유 없이 담임 선생님께 찍혀서 일 년 내내 고생을 했다. 학부모 상담 시간에 나에게도 막말을 하셔서 난 상종을 하지 않기로 했지만, 아이는 이해할 수 없는 구박을 매일 고스란히 겪어내야 하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5학년까지 선생님들의 이쁨만 받던 아이가 갑자기 매일 야단을 맞으니, 위축되고 억울했을 터다. 더군다나 자신이 인정할 수 없는 친구가 선생님의 이쁨을 받는 상황은 아이에게 분노를 일으켰고, 그 아이에게 화살이 간 것이라 판단했다.


처음엔 그 친구와의 직접적인 접촉이 힘들었고, 그다음엔 같이 있는 공간이, 그다음엔 학교 전체로 확대됐다. 그리고 본인도 오염되어 가장 깨끗해야 할 집안을 더럽힌다는 생각에까지 이른 것이다.




남편의 사고가 3월 초였으니, 일 년 내내 나도 아이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 남편 병원 케어와 닥치는 대로 시작한 공부로 하루가 빠듯했고, 뭐든지 스스로 잘하던 아들은 그 틈에서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내가 불안에 떨었던 그 시간에, 아들도 나처럼 불안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까지 꽤 오래 걸렸다. 진정 무엇이 아이를 이렇게 만든 건지, 우리가 어디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는지.


그때의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다만 분명한 건, 이 무너짐이 아이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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