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2 : 독일 0
2018년 6월 28일 기적이 일어났다. 16년 전 그 여름처럼 기적이 일어났다. 역대 월드컵 최약체로 평가받던 우리 대표팀이 세계랭킹 1위 독일을 이겼다. 우리만큼 세계 모두도 놀랐다. 믿을 수 없었던 패배에 독일은 사상 최초의 악몽, 암흑기의 시작이라고 말할 정도로 싸늘한 반응이다. 우리 덕에 16강에 진출한 멕시코는 우리를 형제의 나라라며 칭송하고 영광스럽게 탈락했다고 하고있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은 마무리되지만 이 흥분과 여운은 2002년 때처럼 정말 오래갈 것 같다.
졌고 잘 못 싸웠다
이른바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는 매회 월드컵에서 경기 후 볼 수 있는 헤드라인이었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은 조금 달랐다. 첫 경기였던 스웨덴전은 유효슈팅 0개로 정말 무력하게 무너져 내렸다. 객관적인 전력 차이는 차치하더라도 한국 축구 특유의 '투혼'도 없었다. 졌고 잘 못 싸웠다. 많은 팬들이 정말 많이 실망했다. 축구 팬들이 원하는 건 2002년 4강 신화라는 화려한 결과가 아니라 '투혼'이었다. 실망스러운 경기 내용에 일부 팬들의 원색적인 비난이 시작됐다.
포기하지 마!
무너질 뻔했던 한국... 다잡아 준 조현우의 '포기하지 마!' - 비디오머그
지난 멕시코전에서 페널티킥으로 실점한 직후 또다시 결정적인 슈팅을 내주며 흔들리던 수비진들을 독려하며 조현우 골키퍼가 했던 말이다. 스웨덴전 패배와 연이은 수비 실책으로 인한 페널티킥 실점으로 흔들릴 수 있었던 우리 대표팀을 조현우 골키퍼가 '포기하지 마!'라고 외치며 다잡아줬다. 조현우 선수는 이번 모든 경기에서 그랬던 것처럼 연이은 선방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대표팀의 골문을 단단히 지켰다. 멕시코전은 분명히 스웨덴전 같지 않았다. 선수들 모두 투혼을 다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이 눈으로 보였다. 경기 내용도 나쁘지 않았다. 그 결과 손흥민 선수가 종료 직전 원더골을 넣을 수 있었고 독일전까지 그 기세가 이어질 수 있었다.
1%의 가능성도 작은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 비디오머그
이겼다. 정말 잘 싸웠다
세계 최강 독일을 이겼지만, 16강은 좌절됐다. 하지만 그래도 정말 한국답게 잘 싸웠다. 끝까지 해내는 투혼을 보여줬다. 축구 해설을 듣다 보면 어느 해설위원을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우리 선수들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겠지만 끝까지 해줘야 돼요 끝까지!'. 손흥민 선수는 투혼을 가지고 전반 내내 그리고 후반 중반까지 끊임없이 뛰었다. 경기 막바지에 그의 체력 고갈은 당연했고 노이어 골키퍼가 골문을 비웠을 때 그렇게까지 뛸 수 있는 건 정말 기적이었다. 중간에 뛰다 쥐가 나서 쓰러진다 하더라도 누구도 그를 욕하지 않을 정도였다. 경기장 전체를 누빈 문선민 선수도, 대한민국에 기적같은 골을 안긴 김영권 선수도, 또 함께 뛴 다른 모든 선수들도 끝까지 모든 체력을 쥐어짜서 잘 싸워줬다. 2018년 대한민국 대표팀은 다만 이번 경기 하나뿐만 아니라 첫 경기에서의 무력한 패배를 딛고 일어나 멕시코전, 독일전까지 포함한 조별리그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끝내 우리 대표팀은 귀중한 승리를 만들어 냈다. 더 이상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은 필요하지 않다. 패배와 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려버린 것이 아니라 프로답게 다시 일어났고 성장했고 더 뛰어서 기적 같은 결과를 만들어 냈다.
물론 한 번의 승리에 도취되어 모든 것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이긴 경기 안에서도 지적할 지점은 많고 고쳐야 할 지점도 많다. 아직 한국 축구가 가야 할 길은 멀고 당면한 숙제가 너무도 많다. 2002년 이후로 한국 축구가 끝난 것이 아니듯이 2018년이 대한민국 축구의 마침표는 절대 아니다. 우리 선수들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잘 싸워준 것처럼, 우리 한국 축구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더 발전해 내 가기를 바란다.
축구가 단순한 공놀이가 아닌 이유는 그라운드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뛰는 선수들의 투혼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이번 국가대표처럼 죽음의 조에 속할 때도 있고, 스웨덴 경기처럼 무력하게 패배해나갈 때도 있다. 흔들리다가 무너져 내리기 쉬운 순간 조현우 선수가 '포기하지 마!'라고 외쳤고 끝내 우리는 기적처럼 세계 최강 독일을 꺾었다. 우리도 조현우 선수의 외침을 기억하고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끝에 어쩌면 우리 삶에도 오늘같은 기적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이번 월드컵에 참가하여 그라운드에서 투혼을 다해 뛰어준 선수들, 그리고 아쉽게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지만 옆에서 함께 응원하며 힘을 보태준 모든 선수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생한 코칭스태프까지 모두 수고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힘과 투혼을 보여줘서 감사합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감독 : 신태용
선수 : 손흥민, 김신욱, 황희찬, 정우영, 문선민, 구자철, 기성용, 이승우, 주세종, 이재성, 김영권, 오반석, 김민우, 윤영선, 홍철, 장현수, 이용, 고요한, 박주호, 정승현, 김승규, 김진현, 조현우
코치진 : 전경준, 이재홍, 미냐노, 그란데, 에르난데스, 김남일, 김해운, 차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