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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별 Aug 11. 2024

바르샤바 vs 뉴욕

사라진 부부젤라

부부젤라(Vuvuzela). 지금은 누가 저 사진을 본다면 사진 속 남자 옆에 세워져 있는 기다란 물건을 그렇게 불렀을지 모르겠다. 또는 경기장 나팔(Stadium Horn)로도 불려진다. 하지만 1967년 12월 31일에서 1968년 1월 1일로 넘어가는 저 시점에서는 아마 나팔(Horn)이라고 불렸을 것 같다. 장소는 미국 뉴욕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에 있는 에스컬레이터. 군중들과 함께 큰소리로 카운트다운을 하고 불꽃놀이와 함께 키스를 나누며 새해를 맞이했을 두 커플이 술에 취해 잠들어 있다.

폴란드 바르샤바 인터콘티넨탈 호텔 1층에 전시된 그림(Anna Wardega, Escalator 2, 2022, Egg Tempera on Canvas)

유튜브에서 저 사진을 보여주는 쇼츠를 보았을 때, 얼마 전 폴란드에서 봤던 그림 떠올다. 호텔 벽에 걸려 있던 그림이 문득 마음에 들어서 사진을 찍었는데 그 장면을 사진으로 마주하게 된 것이다. 바르샤바에서 그림을 처음 봤을 때는 주변국의 침략으로 점철된 역사, 더해서 옛 소련권 국가라는 역사를 가진 나라의 젊은이들이 가질 법한 무력함과 고뇌를 표현한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가진 것 없이 서로에게만 온전히 의지한 커플들의 처량한 사랑 같은 말들이 떠올랐다. 자고 있다고 하기에많이 우울해 보이는 표정과, 거기에 어울리지 않는 밝은 채색의 화려함강한 부조화를 만드는 가운데 짙게 깔린 슬픔이 풍겨져 나오는 것 같았다. 갈 곳 없는 청춘들이 도시라는 밀림의 어느 그루터기에서 초식동물처럼 웅크리고 있는 모습으로 보였다. 대학교 학과방에서, 운동장 스탠드에서, 어느 건물 계단에서 몸을 부렸던 내 젊은 날도 떠올랐다.


하지만 오늘 그 그림의 모티브가  소련과 대척점에 있었던 미합중국경제중심 도시 뉴욕에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69년,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전쟁터에 나가지 않은 젊은이들은 저렇게 살고 있었다. 또래 젊은이들이 지구 반대편 열대의 밀림, 진짜 '밀림'에서 아무런 관계 없는 사람들과 이념이라는 무형의 명분을 놓고 서로 죽고 죽이던 사이에도, 죽은 젊은이들은 끝내 볼 수 없었던 내일을 카운트 다운까지 해가며 반겨맞이한 이들이 또 살고 있었다. 꽃의 힘(Flower power)을 추구했던 또 어떤 부류의 젊은이들은 정치, 경제, 전쟁도 다 싫고 자연과 인간으로 돌아가자며 히피(Hippie)가 되어 들판에서 저들처럼 널브러지고 있었다.  


두 그림의 큰 차이는 부부젤라의 유무다. 원작이 흥분되고 들뜬 몇 시간 전의 분위기를 부부젤라로 표방하고 있다면, 그림으로 표현한 동유럽의 예술가는 그것을 지워버렸다. 부부젤라의 부재가 내가 느낀 어두움의 원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난생처음 온 뉴욕에서 그 두 이미지를 떠올려봤다. 그랜드 센트럴 터널에 가보지는 못 했지만, 수 십 번의 카운트 다운을 거쳐 쌓아 올린 거대도시는 크고, 웅장하고, 냄새나고, 지저분했다. 밀림이고 들판이고 도시이자 폐허였다. 크게 다르지 않았을 반백년 전의 뉴욕, 그리고 그 속의 젊은이들. 인간의 삶이란 그다지 명암이 뚜렷하지도, 상하가 확실하지도, 좌우가 분명하지도 않다. 4차원과 같이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라고 하는 것이 더 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림 속, 사진 속 젊은이들은 아마 지금의 나보다는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본인들의 세상이 절망과 희망으로 양분되어 있다고 믿으며 잠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진작가의 멋진 구도 설정과 순간 포착에 박수를 보내며, 미술 작가의 의미심장한 재해석에 찬사를 보낸다. 유튜브가 내게 제공해 준 짧은 단상의 실마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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