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의 통근

Roman Holiday in Hanoi

by 멧별

안나 스콧의 셔츠에 황색 색소 몇 호가 든지도 모를 오렌지주스를 퍼부어 버린 윌리엄은 노팅힐에 산다. 그의 대사처럼 "I live in Notting Hill. You live in Beverly Hills."인 것이다. 그 대사를 하면서 그는 자기와 다른 세상에서 온 그녀를 밀어낸다. 그녀의 유명한 대사 "And don't forget I am also just a girl standing in front of a boy asking to love her."가 이어진다. 그렇게 그들은 헤어지는 듯하였으나 '사랑은 어느새 두 마음을 빨갛게 물들여놓아' 그녀의 "Indefinitely."라는 또 유명한 대사로 결혼까지 성공하며 영화는 끝난다.


이렇게 너무나 비범한 여자가 너무도 평범한 남자를 만나 서로의 격차를 무시하고, 또는 극복하고 사랑에 빠지는 영화는 그 기원을 대부분 '로마의 휴일'에서 찾는다. 다음 해에 개봉한 '노트르담의 꼽추'도 있는데 집시 여인과 성당 종지기 사이에 비범과 평범을 따질 근거가 있는지 판단이 잘 안 선다. 다만 에스메랄다는 뭇남성의 사랑을 받았고 콰지모도는 뭇사람의 멸시를 받았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 할 수도 있겠다. 만화 버전에서는 콰지모도가 뭇사람은 멸시하지만 뭇동물은 사랑하는 캐릭터로 나온다. 디즈니 외톨이 주인공들의 특징이다.


'로마의 휴일'에서 앤 공주를 연기한 '오드리 헵번'은 평범한 신문기자 조를 맡은 '그레고리 펙'과 신나는 로마 데이트를 즐긴다. 교통수단은 이탈리아 회사 피아죠(Piaggio)에서 만든 베스파(Vespa) 스쿠터다. 그녀가 직접 스쿠터를 모는 장면은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박힌다. 남자들에게는 오드리 헵번 뒤에 타고 싶은, 여자들에게는 그레고리 팩을 태우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 것이다. 그들이 조금만 후대에 만났어도 왕자가 영화배우와 결혼하는 환경 속에서 결실을 맺을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베스파를 타고 있는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팩

베트남 하노이에서는 매일 베스파를 비롯한 수많은 스쿠터(쎄마이, Xe máy)들이 거리를 매운다. 여성들도 대부분 쎄마이를 몰고 다닌다. 의상과 헤어스타일에 구애받지 않고 헬멧을 쓰고 운전을 한다. 그녀들은 매연을 피하기 위해 COVID19 유행 훨씬 전부터 마스크를 착용해왔다. 햇살이 따가운 날은 피부 보호를 위해 장갑을 끼고, 긴팔 겉옷을 걸치고, 덧치마를 입고 운전을 한다. 소나기가 오면 고가도로 밑에 쎄마이를 대고 안장을 들어 올려 판초우의를 꺼내 입는다.

하노이 출퇴근 길

강물 같은 도로의 흐름을 타고 하노이 여성들은 일터로, 집으로 쎄마이를 몬다. 왕실의 생활에서 잠시 해방된 공주의 베스파보다 하노이의 베스파는 훨씬 실질적이고 역동적이다. 앤 공주는 아름다웠고 '로마의 휴일'은 흥미진진했지만, 현실 속 '오드리의 통근'도 그에 못 미칠 바 없다. 하노이의 그녀들은 아름답고 그녀들의 삶도 흥미진진하며, 그녀들도 베스파를 타고 서호(호떠이, Hồ Tây)를 돌며 팍팍한 일상의 생활에서 벗어난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 그 뒤에 잘생긴 남자친구(반짜이, bạn trai)라도 태우면 금상첨화인 것이다. "오드리. 달려~"


인터넷에 Vespa Tour라고 치면 관광객을 위한 스쿠터 시내 관광 서비스가 나온다. 하노이에 여행 와서 오드리 헵번이나 그레고리 팩이 돼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적극 추천한다. 여러 업체들이 있으므로 선택은 본인 책임 하에 알아서 하면 되겠다. 어서 바이러스에 대적할 방법이 나와서 관광도 활기를 띠면 좋겠다. 그래서 베스파를 운전하는 가이드들도 수입원이 복구되면 좋겠다. 나만 잘하면 되는데 항상 이렇게 걱정이 많다. 나는 단군의 자손이 확실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