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너머로 달리는 말(김훈), 지우개로 지울 수 없는 세상
김훈의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은 제목에서 역동성과 판타지의 느낌이 훅 들어온다.
김훈 특유의 단문과 단문이 막힘없이 거세게 휘몰아치며 글자들이 눈앞에서 시각화되어
책이 아닌 홀로그램의 영상을 그 영상 속에 들어가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의 살아 펄떡이는 문장들이 앞으로 치고 나간다.
땅에 경계를 긋고 성벽을 쌓아 그 안에서 문명을 이루어 가는 족속 '단'과
초원에서 경계를 정하지 않고 바람에 흐르듯 야생의 늑대와 같이 살아가며
영토를 넓혀가며 살아가는 '초'의 두 문명과 족속의 전쟁사가 그려진다.
금을 긋고 돌을 쌓아 경계를 정하려는 자와 돌을 무너뜨리고 초원의 삶을 지향하는 자들의 싸움이 펼쳐진다.
산업혁명에서 출발하여 대량생산 대량 소비를 구축하며 자기 영역을 구축하였던
전통 제조업, 굴뚝 산업과 연결과 확산을 통해 끊임없이 자생하고 확장해 나가는
IT 거대기업이 주도하는 산업 구조 개편이 오버랩되었다.
작가 김훈은 에필로그에서 세상에 대한 답답함이 이 책의 소산이라고 하였다.
"세상을 지워버리고 싶은 충동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서식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이 책은 그 답답함의 소산이다.
세상을 지우면 빈자리가 드러날 테지만,
지우개로 뭉갤 수 없어서 나는 갈팡질팡하였다"
무엇이 작가로 하여금 세상을 지워버리고 싶게 만들었을까?
보수도 진보도 모두 못마땅한 작금의 정치 현실에 환멸을 느꼈을까?
서로 마음의 벽을 쌓아가고 소통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분노가 쌓였던 걸까?
페이스 북, 인스타, 카톡 등 수많은 SNS는 실시간으로 우리네 삶을 공유하게 해 주고
서로를 연결해 주고 있는데 페이스북에 인스타그램에 사진이 쌓일수록 우리네 마음이 생각이 풍성해지고 있다는 느낌은 없다.
공허한 이야기들만이 많아지는 느낌이다.
아무런 경계도 욕심도 없이 살아가는 '월'은 '초'와 '단'에 치이고 역사의 뒤안길로 소리 없이 사라진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정글 같은 세상에서 평범하게 조용히 살아가는 삶이 버거운
우리네 삶을 얘기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인간의 어지러운 삶을 이해할 수 없는 '야백'과 '토하' 두 마리 명마들은 야생의 기백을
인간에게 볼모 잡히고 그 뜨거운 야생의 아름다움의 꽃을 피우지 못하고
인간에게 벼려지고 스러진다.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고 있는 자연 생태계가 인간의 오만함과 방만한 욕심으로
황폐해 가고 스러져 가는 모습과 같다.
김훈의 세상을 지우고 싶은 답답함을 막연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세상은 살만하고 따뜻함이 있고 사람을, 자연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람들이 있어 존재하고 있고 앞으로도 존재할 수 있다고 믿고 싶다.
이 세상은 지우개로 지울 수도 없고 지워서도 안된다. 그저 뚜벅뚜벅 오늘을 살다 보면
또 다른 세상이 열리고 그 길을 우리가 아니어도 우리 아이들이 후배들이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