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섦의 미학 2: 지혜의 숲 산책 4(책)

다크투어리즘, 나를 흔들어 깨운 위험하고 낯선 독서

by 리빙북

지난 6월 한 달 살이의 마지막 주를 지내는 아내를 만나러 제주에 갔다.


밤늦게 도착하여 그다음 날 아침 버릇처럼 숙소 근처의 도서관을 검색하였고 ‘안덕산방산 도서관'이란 곳에서 5일 체류 일정에도 불구하고 욕심을 내어 5권의 책을 대여하였다.


그중의 한 책이 “다크투어, 내 여행의 이름”(양재화 지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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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한쪽 벽에 2025년 서귀포 시민이 선정한 15여 권 남짓의 책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한라산이 원경으로 잡힌 파란색 표지의 책이 눈을 끌었다.


푸른 봄의 절정을 이루고 있는 제주와 다크투어리즘의 단어가 주는 어두움의 대비가 나의 시선을 붙잡았다.


어두운 여행이란 무엇일까? 낯선 이름이다.


여행하면 누구나 자유함, 즐거움, 해방과 같은 긍정적 느낌의 단어가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다크투어리즘이라니... 도대체 어떤 얘기를 담고 있을까?


다크 투어리즘 DarkTourism.


넓게는 인간사의 '어두운' 측면,

곧 죽음과 비극에 관련된 역사적 장소를

여행하는 모든 형태를 의미하고,


좁게는 단순한 재미나 호기심보다는

좀 더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전쟁이나 학살 현장 또는 대규모

재난이 일어났던 장소를 찾아 그 사건을

기리며 교훈을 되새기는 여행을 말한다.


대표적인 다크 투어리즘 목적지로는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뉴욕의 9.11 테러 현장인 그라운드제로가 있다.

- 다크투어리즘(양재화)-


아르메니아에서 시작하여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보스니아의 사라예보, 칠레와 아르헨티나를 거쳐 제주 4.3에서 여정을 정리하는


저자의 다크투어의 현장을 머리로 가슴으로 따라가며 뉴스로만 들었거나 스쳐 지나갔던 종교와 이념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제노사이드(대량학살)를 통해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죄성과 잔악함을 보게 되었다.


평소에는 선한 평범 사람들조차도 휩쓸리게 되는 제노사이드의 광풍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고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몇 해 전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란 글을 보며 진실에 대한 수동적 삶의 모습, 악에 대한 평범한 동의가 악의 다른 얼굴임을 깨닫게 되었고 한동안 “악의 평범성”화두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돌았던 시간이 떠올랐다.


마지막 여정이 제주도 4.3에서 끝나는 책이라 책에서 언급되었던 다랑쉬 오름을 비롯한 제주 곳곳의 장소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 책은 아르메니아에서 시작한다. 왜일까?


저자의 여행 여정으로 보면 아르메니아는 맨 처음이 아닌 맨 마지막 여정이었다.(2017년)

저자는 2016년 제주 4.3 평화기념관을 방문하게 되고 거기서 한 문장, 한 사람의 말과 부딪히게 된다.


히틀러가 폴란드 침공을 앞두고 장교들을 모아 놓고 한 연설에서의 한 문장


“누가 지금 아르메니아인 제노사이드를 기억하는가?”


이슬람의 오스만제국(현재의 튀르키예)은 그리스정교를 믿는 소수민족 아르메니아인을 차별했다.

1차 세계대전에서 러시아를 공격한 오스만제국은 패색이 짙어지자 아르메니안이 러시아를 도왔다며 대대적인 학살을 자행하여 210만 아르메니아인 중 150만 명을 학살하였다.


200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튀르키예 작가 오르한 파묵은 이 학살을 인터뷰에 언급했다가 살해 위협을 받으며 미국으로 피신하기도 하였다.


최근에 이르러 유럽의 주요국들이 오스만제국의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공식적인 제노사이드로 명명하고 튀르키예의 공식 인정을 유럽연합의 가입 조건으로 내세우고 미국도 2021년 바이든 정부 때에 공식적으로 아르메니아 제노 사이라 표현하며 공식 인정하면서 아르메니아인에게 가해진 학살을 제노사이드로(대량학살)로 세계가 인정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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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대규모 지진으로 터키가 어려움에 처하자 아르메니아인은 도움을 손길을 내밀었고 35년 만에 국경이 개방되었다고 한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도움의 손길을 먼저 내민 것이다.


타인에 대한 고통에 공감하고 그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노력은 고통받은 당사자들을 위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우리를 악으로 빠지지 않도록 방어벽을 구축하는 우리 구원의 방책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 모두의 삶은 연결되어 있다. 나 혼자서만의 안위와 행복만을 위해서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이 땅에 사는 인간의 숙명이다.


캄보디아 폴포트에 의해 자행된 킬링필드에서의 자국민 대학살, 폴란드 아우슈비츠에서 자행된 독일군의 유대인 대학살,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 같은 이웃으로 살던 그리스 정교회 세르비아인들에 의한 이슬람 보스니아인들의 대학살 모두 종교와 이념에 따른 대학살이었다


해방된 대한민국, 제주에서도 이념이란 허울을 뒤집어쓴 광풍에 의해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갔다. 제주에 가면 많이 찾게 되는 오름에서도 비극은 일어났고 북촌리를 비롯한 제주 곳곳에서 많은 시민들이 죽어갔다.


6월 다시 찾은 제주에서 한라산과 오름과 에메랄드 바다를 바라보며 마냥 자연의 아름다움에만 빠질 수 없는 시간을 준 저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이 책을 읽으며 김영하 작가가 "읽다"라는 에세이에서 전한


"나를 흔들어 깨우는 위험한 독서"의 의미를 깨달은 시간이었다.


“독서는 왜 하는가?

무엇보다도 독서는 우리 내면에 자라나는 오만(휴브리스) 과의 투쟁일 겁니다.


독서는 우리가 굳건하게 믿고 있는 것들을 흔들게 됩니다.

독자라는 존재는 독서라는 위험한 행위를 통해 스스로 제 믿음을 흔들고자 하는 이들입니다.


비평가 헤럴드 블룸은 [교양인의 책 읽기]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독서는 자아를 분열시킨다. 즉 자아의 상당 부분이 독서와 함께 산산이 흩어진다. 이는 결코 슬퍼할 일이 아니다”

-읽다(김영하)-


인간의 죄성과 악에 대한 수동적 반응이 악의 다른 얼굴임을,

그래서 살아가면서 악에 대응하는 선한 연대와 영향력의 힘을 믿으며 나아가야 한다는

겸손을 배운 귀한 시간이었음에 감사한다.


여름 더위의 끝자락에서 위험하고 낯선 독서의 세계로 한번 발을 들어 놓지 않겠는가?







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