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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빙북 Oct 31. 2024

신호등: 멈출 때와 가야할 때

멈춤의 축복

그런 경험들을 해보았을 것이다.


운전을 하다 보면 어떤 때는 신호등이

내 앞에서 길을 열어 주듯이

초록색으로 계속해서 신호가 열리는 경험.


그런 날이 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바쁜 일로 급히 가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지나야 하는 구간에서

신호등이 계속해서 빨간색으로 바뀌며

길을 막아서는 듯한 경험.


​그런 날도 있다.​​


익숙한 길에서도 낯선 길에서도 신호등이

열리고 닫히는 것은

내 생각이나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신호등은 기다리면

바뀐다는 것이다.


​이제 아침 일찍 집을 나서면 기분 좋은

가을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이른 아침 출근을 하며 내려야 할 곳보다

서너 정거장 전에 내려 따릉이 자전거를 타고

삼청동으로 자전거 아침 마실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길을 건너려 할 때마다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보통 때 같으면 그냥 무심히 자전거를 탄 상태에서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렸을 텐데

어제는 멈춘 곳의 주변을 둘러보다가 옆에 있는 보신각이 눈에 들어와 그곳으로

잠시 자전거로 이동하였다.


​서울 사람 중에서 남산 타워를 안 올라보고 한강유람선을 안 타본 사람이 많듯이


보신각도 제야의 종소리 타종을 TV 방송을 통해 어려서부터 보았지만 실제 방문하였거나

자세히 살펴본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보신각 입구에 있는 기념문을 읽으며 그 유래와 재건한 과정 등 그동안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알 수 있었고 차분히 보신각을

살펴볼 수 있었다.


​수없이 많이 그 앞을 차로 지나다니고 걸어서 지나갔었지만 보신각 앞에

멈추어 서서 보신각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정지 신호가 내게 준 멈춤의 시간이 보신각을 볼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한 것이다.


​신호등이 열렸을 때 건너가고 신호등이 닫혔을 때 기다리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흐름을 삶에서도 그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살다 보면 가는 길마다 막힐 때가 있고

또 예상 못 한 길이 열리는 경험도 하게 된다.


열렸을 때 가면 되고 닫혔을 때 멈추면 되지만

사실 삶에서 닫힘이 계속될 때 멈추어 차분히

기다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멈춤에도 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마음과 머리와 몸의 훈련


막혔을 때 속 태우며 발을 구르며 안달하기 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서


​할 수 없을 때는 멈춘 시간을 그냥 견디는 것이 아닌 다른 곳에 시선을 돌려 잠시 그 일에서 눈과 마음과 몸을 떠나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그러다 보면 안 보이던 것도 볼 수 있고 다른 생각도 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고


그 멈춤의 시간 속에서 남과 주변 환경에 집중하던 시각을 나에게로 돌려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요즘의 내가 그렇다.

멈추어야 할 때임을 하늘이 얘기해 주는 것 같다.


실타래처럼 꼬이고 예상 못 한 이슈가 생기며 자꾸 나를 주저 앉히는 순간들 속에서 주위 사람을 탓하려는 마음을 다잡으며 나를 돌아보게 되고

내 부족함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동안 열렸던 내 삶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감사를 회복하는 시간도 가진다.


가을바람을 맞으며 눈으로는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자전거를 달려 인왕산과 경복궁이 보이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뒤편 마당에 자전거를 세우고 이른 아침의 서울을 느껴본다.​​


서울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시간.

이른 새벽이 주는, 멈춤이 주는

축복 같은 시간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잠시 멈추어 서서 하늘도 보고

산도 보다 보면 또 길이 열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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