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 교육, 육아 교육, 유아교육, 학교교육, 밥상머리 교육, 평생교육 등 등... 교사라는 직군도 세부적으로 들어가 보면 그 분류역시 다양함을 알 수 있다.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교육이라는 문장은 어느 곳에서나 사용된다. 교사는 그 교육의 일부분을 담당할 뿐. 그래서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것 같다.
니는 이른 명예퇴직 후 기간제 교사를 약 3개월에서 6개월 단위로 5년여 정도를 한 것 같다.
아니, 만 62세 정년퇴직인데 도대체 몇 살에 명퇴를 했길래 기간제를 했냐며 이해가 안 간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맞다.
난 50세 되던 해 2월 말일자로 명예퇴직을 했다.
동기들보다 일 년 빨리 입학을 했기 때문에 정년까지는 13년이나 남아있을 때였고, 아침마다 우는 아이를 떼어놓느라 힘들었던 육아의 시기도 아니었건만 갑자기 명예퇴직을 했으니... 주변 지인이나 동기들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 25년 차라 연금도 45도 각도로 가파르게 오르던 시기였지만, 알량한 연금마저 일시불로 몽땅 받았으니 친구들은 늙어서 어쩌려고 그러냐며 걱정까지 했다.
하지만 그 사연을 말하려면 4~5쳅타정도 필설을 해야 하니 각설하고 다음으로 넘겨야겠다.
우선은 명퇴를 하고 나니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억지로 잠을 청할 필요도 없었고, 다음 날 정오까지 늦잠을 자도 뭐라 할 사람도 없었다. 그 자유로움과 게으름이 너무 좋았다.
밤을 낮 삼아, 낮을 밤 삼아, 뒤바뀐 생활에 젖어있을 때 30분 거리 학교의 교장으로 있는 동기 오빠에게 숨넘어가는 소리로 전화가 왔다. 2월 28일 자로 퇴직을 했으니 아마도 4월 중순쯤 되었을 때였다.
밥 한 끼 먹자고 했지만 움직일 내가 아니었으니 이실직고를 했다.
정외 외 자리가 나왔으니 전담을 맡아달란다.
난 자유로운 생활이 좋아 싫다고 하니 20명도 안 되는 학급 아이들에게 주당 20시간 이내로 미술과 실과, 과학을 가르쳐 달란다.
동기 오빠는 발령 때부터 알고 지냈고, 모임에도 같이 있어 서로의 취향도 잘 알고 있었다.
보나마다 밤낮으로 미친 듯 잠만 잘 것 같으니 그렇게 살면 안 된다며 일장 훈시를 한다. 안 봐도 비디오란다.
전담시간을 조정해 줄 테니 꼭 9시까지 출근을 안 해도 되고, 꼭 필요하면 일찍 퇴근을 해도 된다고 했다. 시골이라 보건교사가 없으니 아픈 아이 생기면 소화제나 소독약 등 기본처치만 해주고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게 보건실에서 근무하란다.
하지만 그 말은 더 열심히 하라는 말로 들렸고, 교장과 동기라는 이유로 어떠한 혜택을 받는다면 그건 추천해 준 사람에 대한 도리도 아니었기에 잘하라는 채찍보다 더 무서웠다.
감언이설에 넘어가 동기 오빠의 학교 기간제로 전담(실과, 미술, 과학)을 주당 20시간 맡게 되었다. 학급수가 적으니 주당 시간을 맞추기 위해 전담을 3과목으로 배정한 것이다.
동기 오빠라 부르는 이유는 입학 시, 교대생들은 졸업만 하면 정식발령을 내주었고, 군 면제 혜택까지 주어졌으니 대개 다른 대학(주로 육사나 공사, 의대 등)에 응시했다가 떨어져 뒤늦게 들어온 재수나 삼수, 심지어는 사수생까지 섞여있어 나와는 서너 살 위부터 다섯 살까지 차이가 났기 때문에 동기 오빠라고 불렀다.
남자 동기들의 승진은 유난히 빨랐다. 가장이라는 책임감에 정년까지는 죽어도 일을 해야 하니 그만큼 일찌감치 승진 준비를 하는 반면에, 여자들은 임신, 출산, 육아, 가사까지 함께 해야 했으니 그만큼 더딘 것이다.
학교에 간 날 계약서를 쓰고, 다음 날부터 근무를 했다.
저학년만 20여 년을 하다가 만난 5, 6학년 아이들은 용어 사용도 편했다.
저학년은 저학년 수준에 맞는 말을 해야 했지만 고학년이라서 그럴 필요도 없으니 말이다.
항상 그렇듯 새로운 교사를 만나면 담임이든 전담이든, 일주일 간은 탐색전에 들어갔다.
아이들은 본색을 드러내지 않고 교사를 관찰했고, 교사는 아이들을 휘어잡느냐 아니냐에 따라 근무기간 내 그나마 편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니만큼 허점을 보여선 안된다.
하지만 기간제라는 네임은 떼어낼 수 없는 종기와 같았다.
일단 채용공고가 학교 공지란에 올라와야 하니 학부모나 고학년들은 몇 학년 몇 반 교사, 어느 전담이 기간제인 줄 이미 꿰뚫고 있다.
그런 기간제 교사의 가장 아픈 부분을 건드리는 학생들도 종 종 있어서 불편한 동거가 이루어지는 예도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게도 그런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키가 작아 앞자리에 앉아있는, 유난히 흰 피부에 시골 사투리를 전혀 쓰지 않는 송이라는 6학년 여자아이였다.
그 아이는 그 학급에서 리더역을 하고 있었고, 전교회장이라고도 했다. 부모님도 학부모회 회장을 맡고 있었고...
송이가 가는 곳엔 아이들이 따랐고, 아이들 무리 속엔 항상 송이가 있었다.
예체능의 대부분 과목이 그렇듯 학생들 간 수준차가 많은 게 예체능이다.
미술학원 다닌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
구기종목이나 태권도 등 학원에 다닌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
음악학원에 다닌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
과학은 주로 실험을 하다 보니 계절 온도, 두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의외로 실험기구 불량품이 많이 나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도, 마무리 시 중점 요점을 안내를 하기에 큰 어려움은 없다.
실과는 일상생활과 관련된 것이 많아 그런대로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가장 힘든 건 미술이었다,
미술은 과목의 특성상 2시간(80분) 연속으로 하기에 회화의 경우 대부분 25분을 특징과 캐치 표현 후 10분간 사용할 물감을 준비하고, 40분을 표현해서 5분간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미술이라곤 대학교 때 동아리 활동으로 조소를 한 것이 다인데... 조소와 회화는 분야가 정말 달라, 내게도 회화는 어려운 부분이었다.
어느 정도 학생 들과의 탐색기도 지날 무렵 때 미술수업 시간에, 송이는 10분도 안되어 다 했다고 가져왔다.
2절 도화지에 과일배치를 그리는데 과일을 야구공처럼 그려놓고 나머진 텅 빈 공간 그대로, 명암도, 배치도도 안 맞았다. 그래서 조금 더 보충하라고 하니 싫단다. 수행평가임을 알고서도 과목 샘에게 싫다고??? 이건 반항이다.
송이가 제출하면 다른 아이들도 기다렸다는 듯 줄줄이 제출하니 참으로 난감했다. 회화는 표현에 한계가 있어 한글처럼 바르게 다시 쓰라고 해서 흉내라도 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서.
그리고는 남은 수업시간은 대학생활 얘기나 첫사랑 얘기를 해달라고 떼창을 해대니 ㅜ
그것뿐이 아니라 송이는 오픈된 교장실에 가서 주변 얘기를 하다가, 정수리가 대머리인 교장선생님의 앞머리가 가발 아니냐며 한번 뽑아보라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시골학교에서 누구네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꿰뚫어 볼 만큼 친근하다 보니 일어나는 일이었다.
학교에선 선생님이지만 동네에선 오래된 이웃 아주머니 아저씨 같은 사이???
그러니 화를 낼 수도 웃을 수도 없는 난감한 일이 벌어지곤 했다. 내게는 낯선 광경이었다.
교장선생님은 그런 송이를 장난 같은 훈계로 능구렁이처럼 교육을 시키고 있었다. 하긴 시간이 나면 밀짚모자에 고무장화를 신고 학교 실습지에 고구마 등 밭작물을 짓는 영락없는 동네 아저씨이니 ㅜ
송이는 나를 은따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과학이나 실과처럼 딱 떨어지는 수업과는 달리 70% 이상이 표현을 요하는 미술시간이 제일 만만했던 것 같다.
결국 수업이 없을 때 송이를 불러 솔직히 말했다.
그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나는 저학년을 오래 하다 보니 모르는 것도 많을 거야. 그럴 때는 네가 도와주겠니??
그리고 특히 미술시간 시간에 의미 없이 그린 그림보다는 네 마음과 감정을 담아 그려보면 어떨까 하며 부탁을 했다.
아이는 별스럽지 않게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같다.
다음 날 수업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
교사의 위상, 지시, 주의, 억압, 훈계보다는 인간적인 소통. 대화, 상황 이해, 자유 속에 질서 등에 더 민감하게 적응하는 아이들이었다.
~~~ 해.라는 말보다는 ~~~ 하는 게 어떨까?. ~~~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
라는 질문에 아이들이 대답하고, 아이들 스스로 해결해 나가니 교사는 제안만 하면 되었다. 수업하기도 훨씬 수월해졌다. 그리고 교사가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학습목표에 다가갈 수 있는지 아이들 수준에 맞게 물어보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저학년의 지시형수업과 고학년의 수업방법은 달랐음에도 그걸 파악하지 못한 꼰대 샘을 은따시키기로 적정을 짠 것이었다.
송이가 마음을 열자 다른 아이들은 더 쉽게 다가와 주었다.
약 10개월 근무하는 동안 정말 재미있었고, 웃을 일이 많았던 만남이었다.
자꾸만 엇나가는 수업방법을 계속 고수했다면 근무기간 내내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교장선생님의 몇 가닥 안 남은 머리를 갖고 장난치다가도 실습지에서 땀을 뻘뻘 흘리는 교장선생님에게 시원한 생수를 떠다 주던 모습에서 해결방안을 얻은 것이다.
1) 10년이 되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교육현장도 따라서 바뀌는 것 같다.
그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교사는 꼰대가 되어 왕따 내지는 은따로 학생들과 불편한 관계가 공존될 수밖에 없었다.
2) 세 살 아이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고 했다.
교사도 인간이기에 실수할 때가 있으니 뭔가 막혔다는 생각이 들면 되돌아보고 다시 판단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