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에 대한 협박

by 블랙홀

우리나라 교육정책은 이해찬 교육부 장관 취임 이후 확 바꿔진 것 같다.


그 이전엔 웬만한 체벌은 교육적으로 허용되었고, 촌지를 받는 것도 교사에게 성의를 표시한다는 뜻에서 가능했다.


예전 우리 선조들도 아이가 서당에서 책 한 권을 마스터하면 책거리라 해서 아이의 부모는 스승에게 떡을 해서 대접했고, 명절 등 특별한 날엔 달걀이나 추수한 곡식을 갖다 줬다.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 어느 순간 돈으로 바꾸어졌고 그 액수가 커지면서 학부모에겐 내 아이를 잘 봐달라는 의미의 뇌물성으로 변해버렸다. 교사가 먼저 나서서 요구하는 경우는 내 상식 성에선 없다고 자인하지만 말이다.

혹여 학부모의 입장에서 그런 눈으로 교사를 바라봤다면... 그건 교사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학기 초 '사랑의 매 '라고 해서 60cm 정도의 회초리를 학부모가 교사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그런 '사랑의 매'가 어느 순간부터 감정을 실은 폭력 아닌 폭력으로 문제화되었으니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교권을 위해 설립된 교총을 견주기 위해서 전국교직원 노동조합(전교조)이 생겨 교원단체는 이원화되었고, 촌지는 뇌물로 인정해서 금지되었다. 학생에 대한 사랑이란 이름의 매는 교사 폭력이라는 문제로 대두되었다.


1998년 이후 갈등을 겪던 교육계가 점차 안정이 되고 자리 잡기까지 숱한 시행착오와 갈등이 있었다는 걸 말하고 싶다.

교총 출신 교육감과 교장. 교감이 90% 이상인 상황에서의 전교조 출범과 관련 교사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교육계의 반목이 그만큼 많아졌다.


부임 처음부터 이런 체계에 적응된 후배 교사들에겐 상관없지만, 초창기 이 장관 이후 교육혁신시대 전. 후를 겪은 교사들에게는 많은 혼란이 일어났다.

이것은 해야 되는지 말아야 하는지, 나가야 하는지 멈춰야 하는지를 두고...


한 때 교직사회에선 '해찬들'고추장이나 장류를 안 먹겠다는 유행어까지 생겨났다.


지금에야 학생인권, 자율화, 전인교육, 생존교육, 체험중심의 교육이 강화되는 만큼 교권은 약화되었고, 학습의 질이 현저히 떨어진 건 사실이다.

하긴 초등 1학년의 받침글자를 깨우치기 위한 받아쓰기나 국어 단어장이 없어졌다.

곱셈을 외우기 위한 구구단 책받침도 없어졌다.


주기적으로 실시하던 필기시험도 사라지고 학습 수행을 알아보는 수행평가와 실기시험으로 대체된 것도 한 이유라고 본다.


내 가 표현하고자 한 내용은 '사랑의 매'에 관한 사건이다.

첫 부임지에서 같은 학교에 근무했던 동기이자 내가 존경하는 친구가 있었다.

주로 저학년을 담임한 나와는 달리 친구는 고학년을 담당하고 있었다.


'사랑의 매'라고는 하나 솔직히 교사도 인간인지라 학생에 대한 체벌은 학생 개선을 위한 것도 있지만, 때론 감정으로 흐르기도 했다.


흔한 말로 부부싸움 한 날은 애먼 학생에게 화살이 날아가는 것이 전혀 무관하지는 않은 것 같다.


친구 역시 연년생 딸을 양육하면서 퇴근 후엔 자영업을 하는 남편을 도와 밤늦게까지 쉬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욕심도 많아 학생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체벌도 잦아진 모양이다.

교실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옆반 교사라 해도 잘 알지 못했지만, 설사 안다고 해도 개입은 할 수 없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그만큼 담임의 영향이 컸다.



어느 날 친구가 사색이 되어 나를 찾은 것은 낯선 이의 전화 한 통을 받고서였다.


사연 인즉은 7년 전 친구의 제자라며 당시 체벌이 너무 심해 극심한 트라우마로 남아있고, 성인이 된 지금에도 그때의 일들을 잊을 수 없었단다.

그러니 친구의 두 딸에게 앙갚음을 하겠다고 경고한 후 전화를 끊었으니 어떻게 해야 하냐고 발을 동동 굴렀다. 당시 친구의 두 딸은 초등 2년,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


난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얼마나 체벌을 했으면 그럴까 하는 생각과, 그렇다고 교사에 대한 앙갚음으로 자식을 위해하겠다는 얘기는 듣도 보도 못한 상황이었다.

더구나 7년이 지날 때까지 복수심을 키웠다는 말에 소름이 돋았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말을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고 한다.


친구도 처음 겪는 일이고, 이런 일도 있구나 하는 자괴심에 학생이라 해도 인격체로 대해줘야겠다는 후회도 했단다. 친구는 딸들의 등. 하교를 책임졌고, 남편은 하교 후 딸들을 챙기느라 죽을 맛이란다.


아~~~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사건은 내게도 경각심을 주었다.


저학년은 체벌이라고 해야 엄마들이 보내 준 사랑의 매'로 한 대 때릴라치면 살이 어려 두 손바닥이 벌겋게 부르터올라 때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고학년은 무섭다. ㅡㅡㅡㅡ


하지만, 이후 아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마음을 졸이며 하루하루 지냈으니 앞에서 보는 나도 조마조마했다.


그리고 내 교육관도 바뀌었다.

나도 처음엔 체벌은 당연히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젠 체벌은 뒤 끝있는 일로 이어져 어려운 현재가 되가고 있다.


지금은 어린 철부지 아이들이라 해도 언젠가는 성인이 될 테고, 아이들의 기억 속에는 내 어릴 때가 생각나듯 그 아이들도 나를 기억할 거라고.


스쳐 지나가는 말 한마디가 아이들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사람이 사람을 가르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새삼 깨우쳤다.



1) 지금은 작고 어린 학생이라도 몇 년 후엔 나와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가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2) 존경받는 스승은 못 될지라도 오징어처럼 씹히는 교사로 남지 않았으면 한다.


3) 문제를 일으키는 그 어떤 아이라도 집에 돌아가면 귀한 자식임을 기억하자. 열 달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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