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평생 내가 존경하는 스승을 꼽으라면 딱 한 명. 내 동기이자 스승이었던 친구를 말할 수 있다.
같은 동기였지만 학교에 다닐 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 우리 동기들은 참으로 운이 좋았다.
바로 직전의 선배들은 180명이었지만 우리 기수에 와서는 그 세배 정도인 500여 명으로 불어났으니 같은 동기라도 얼굴을 모르고 졸업한 예가 수두룩 했다.
입학인원 조정은 정년퇴직자, 병휴직 중으로 퇴직예정자, 명예퇴직자, 자연적인 퇴직자 등을 감안해서 다음 해의 입학인원을 정했으니 그 또한 운이 좋아야 했다.
이렇게 갑자기 증원되는 경우는, 후에 승진도 한꺼번에 우르르 이루어진 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음에 우리 기수는 복 받은 기수라고 말할 수 있다.
학교 발령은 성적순으로 이루어졌다.
친구는 3월 1일 자 발령을 받았으니 5월 달 발령인 나 보다 훨씬 공부를 잘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사실, 시골 12 학급이 전부인 학교에서 나보다 잘난 동기를 만났다는 것은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사사건건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부임 첫날, 교장 선생님이 동기라고 소개해주는 친구는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이라 서로 어색하기만 했다. 그 친구는 이미 3달의 근무경력이 있어서인지 제법 교사 티가 흐르고 있었다.
교사라는 직군은 피라미드 식으로 그 정점에 있지 않은 무리들은 다 같은 동료라는 얼빠진 생각을 하고 있는 나와는 달리, 친구는 참하고 조신해서 이미 선배 및 어른들의 이쁨을 받고 있었다.
망아지 같던 나는 그럴수록 무심한 척, 반 아이들과 정 쌓기 놀이에 팔려 있었다.
업무파악이 안 돼 실수를 해서 교감에게 불려 가면 은근히 친구와 비교를 하는 것이 한 번 두 번 늘어나니 내게도 반감이 생겼다.
그리곤 혼내는 사람 앞에서 실실 웃었다. 그 웃음은 멋 적을 때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의 상황 대처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웃는다고 또 혼을 냈다.
그 이후로 또 시작이군 하는 생각으로 웃지도 않고 멍 때리곤 했으니 상대방 입장에선 부아통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 교장선생님까지 나만 보면 외면을 하고 다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학급 아이들에게 의지했다.
그 해 가을쯤 상사들과는 여전히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당시 그 학교에는 친구 외에도 한 살 위인 병설유치원 교사가 있었고, 그 지역 토박이인 유치원 보조교사가 모두 나이가 엇 비슷해서 함께 잘 어울렸다.
떼거리로 뭉쳐 다니면서 추수기가 되면 토박이 선배들 밭에 가서 배추 서리를 해서 삼겹살에 고추장을 눌러 먹기도 하고, 선배들 집에 행사가 있을 때도 모두 몰려가서 맛있는 걸 얻어먹고는 했다.
22살 내지는 23살 정도의 어린 처자들이 낯선 시골에 와서 누릴 수 있는 아무런 문화적 혜택이 없는 깡촌에서 근무하는 게 안쓰러웠는지도 선배들은 후배들을 잘 챙겨주었다.
친 오라버니들처럼 아프거나 무슨 일이 생겼다 하면 먼저 나서서 해결해 주곤 했다. 마치 여동생 대하듯.
우리는 이렇게 잘 어울렸는데 어른들이 오히려 갈라 치기를 하고 있었다.
추석이 가까워 올 무렵, 곁 자리에 있는 대 선배가 은근히 나를 불렀다.
혹시 아버지가 윗분들께 인사라도 했는지 물어보았다.
친구의 엄마는 한. 두 달에 한 번씩 딸을 보러 와서는 어른들께 인사를 하고 가니 지내기도 편하지 않느냐며, 아버지께 여쭤보라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왜 힘들었고, 툭하면 친구와 비교해서 내 자존감을 건드렸는지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난 그 자리에서 말했다.
아버지는 공직에 계시던 분으로 생각이 다른 분과 달라, 아마도 날 위해 내려오시는 일이 없을 거라고.
사실이었다. 아버지는 '네가 할 자리에서 네 일을 하면 된다.'라는 말로 잘라버릴 분이라는 걸 잘 알고 있어 말도 꺼내지 못했다.
동기였던 친구는 같은 동향으로 그 지역에서 오픈한 약국의 약사와 결혼을 했고, 6개월 후 나 역시 그 지역에서 자영업을 하는 남자와 결혼을 했다.
그렇게 우리는 그곳에서 뿌리를 내렸고 각자 두 명의 아이들 낳고 길렀다. 친구는 딸 둘, 나는 남매를 낳아서.
근무 일 년이면 관내 내신, 근무 2년 후부터는 관외 내신을 낼 수 있었지만 목적 없이 일 년, 이 년 만에 내신을 내는 것은 새로운 학교에 가서의 업무파악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는 게 쉽지 않아 보통 5년을 꽉 채운 후 이동을 했다. 생활이 편한 도시로 가거나 아님 승진을 위한 벽지 점수를 따기 위해 더 시골로 가든 한다.
20여 년이 지나면 첫 이 동지에 따라 승패가 갈라졌지만 20대 중. 후반에 미리 계획을 세우지 않은 보통인들은 그걸 모른다. 상사나 선배들에게 정보를 받는 사람은 친구처럼 움직였고 그걸 모르면 대개는 생활이 편한 읍내나 도시로 움직였으니 이때부터 평행선은 갈라졌다.
난 시장이나 목욕탕이라도 쉽게 갈 수 있는 24 학급의 읍내학교로 이동했고, 친구는 거주지에서 5분 거리였지만 6 학급만 있는 벽지에 해당하는 학교로 이동했다.
1학년 담임이니 오전 수업을 마치면 오후엔 병설유치원 교사도 겸임했다고 한다.
초창기 병설유치원은 갑작스럽게 전국적으로 설립되어 교사 수급이 안되었다. 그러다 보니 벽지 몇 명 안 되는 병설유치원은 저학년 초등교사가 겸임하는 예가 많았고, 몇 년의 경력이 있으면 정식 유치원 교사 자격증도 나왔었다. 그 들 중에는 나중에 초등을 포기하고 유치원으로 아예 갈아탄 교사들도 많았다.
겸임교사가 있는 벽지는 다른 업무도 없이 봉급도 양쪽에서 받았으니 좋은 기회였지만 20 대중. 후반의 처자들은 생활이 편한 도시로 나가 생활하다 좋은 신랑감 만나 결혼하면 그만이라고 대부분 그렇게 생각했다.
즉, 학교에서의 멘토인 선배나 상사들은 그때부터 승진에 위해 필요한 것들을 꼼꼼히 전수해 준다.
물론 호구지책으로 월급을 받다가 나중 연금이나 받을 요량으로 하는 사람도 있으니 줄을 잘 서는 것도 중요하다. 즉, 욕심이 있다면 잘 나가는 선배뒤에 서야 한다.
반대로 그런 정보가 전혀 없던 나는 승진을 위한 것은 승진시기가 오면 하는 것이라고 믿고 좀 더 생활이 편한 곳으로 이동하였던 것이다.
이 갈래길이 나중엔 엄청남 파급효과를 가지고 왔지만 난 그걸 몰랐다.
잘 나가는 선배란:
1) 학교의 중직업무 교무. 연구부장 (학교에 따라 연구가 능력 있음 교무는 능력이 없어도 경력 상 예우해 주는 곳도 있음)
2) 각 종 도 대회나 전국대회에서 입상하는 사람
3) 지역이나 도교육청에 인맥이 많아 도단위 교과연구회에서 활동하는 사람(도단위 교육청의 임원이거나 전문직, 교장등이 많으면 ok)
4) 초임 말고 중진이상 전문직
5) 교육장이었다가 중임으로 나오는 학교의 교장 등
물론 승진과는 무관하게 후배들을 정으로 대해주는 묵묵히 현장을 지키는 분들도 많다는 것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