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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수상한 대화
세 번째 여자의 이야기(1)
버버리 신입생
by
블랙홀
Jun 12. 2025
여자들은 라테. 맥주. 소주. 과자 등을 손에 쥐고는 소파와 식탁에 편한 대로 앉았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표정이 편해 보였다.
낯선 이곳이 불안하고 떠날 때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정황이 없었는데
,
나도 커피를 홀짝이며 천천히 집 안을 쓰윽 둘러봤다.
밖에선 지붕이 원형인 하얀색 3층 정도의 집이라 느꼈는데, 내부는 온통 붉은 적벽돌로 출입구 외엔 창문이 없었다.
한쪽 벽면에 있는 큼지막한 벽난로는 처음 들어올 때처럼 탁탁 소리를 내며 장작이 타고 있었다. 내부 계단 때문인지 천정은 성당처럼 뻥 뚫려 있어 후련하기까지 했다.
벽난로의 열기만큼이나 여자들의 얼굴도 붉게 물들어 갔다.
세 번째 여자는 화장을 진하게 했지만 앳된
모
습은 감출 수 없었다. 긴 생머리에 베이지색 버버리 코트가 단정해 보였다.
아~잰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왜 여기와 있을까???
" 안녕하세요. 전 대학 1학년인 ㅇ이라고 해요"
난 이 여자애를 그녀라고 부르겠다.
그녀의 사연은 짧지만 강렬하게 치고 들어왔다. 마치 내게 경고라도 하듯...
"전 아주 평범한 집안의 셋째 딸로 부모님은
둘
다 교직에 계셨어요. 오빠와 언니가 한 명씩 있고 형제 사이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
지
만 터울이 많아 다른 집처럼 티격태격 거리적은
없고요"
그럼 왜 여기 있는
거야?? 그녀가
더 궁금해졌다.
"숫기도 없고 내성적이어서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엄친아에 모범생이었
어
요.
그래도 부모님 기대에 못 미쳤는지 툭하면 언니, 오빠와 비교를 당하면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죠.
언니는 대학을 수석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을 받고 다녔고. 오빠는 레지던트 3년 차고요 "
그녀는 남의 말하듯 덤덤하게 얘기를 했다.
크면서 형제간의 비교는 그녀를 우울하게 만들었고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며 고2학년 때는 두ㆍ세 번의 자해까지 했고, 결국 정신과에서 약물치료를 받기도 했단다.
"슬프거나 우울할 때는 글을 썼어요. 장르도 없이 일기든 산문이든 운문이든 닥치는 대로 썼어요. 덕분에 교내는 물론 지역 백일장에서 입상을 빼놓지 않고 해서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녀
는
작은 방에 누워 창문 가득 들어오는 별을 보며 '어린 왕자'를 생각했고, 해리포터시리즈를 읽으며
j
.k 롤링처럼 대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고 했다.
체계적인 공부를 하고 싶어 국문학과를 원했지만 부모님은 소설가가 아무나 되는 줄 아냐며
반대를
하셨단다.
"언니는 고시에 합격해서 모 공기업 과장이고, 오빠는 의사니 막내인 넌 교사가 되라고 하셨어요.
또박또박 월급 나오고 일 년에 두 번 방학도 있으니 이 만큼 안정적이고 여유 있는 직업이 어디에 있겠느냐며 귀딱지가 생길 정도로 잔소리를 들었죠"
하지만 그녀가 바라본 모습은 부모님의 모습은 달랐
단
다.
입학이나 졸업, 하다못 해 운동회나 축제 때도 비슷한 시기에 열리다 보니 부모님이 한 번도 참석한 기억이 없었고, 그
빈자리를 외할머니가 대신했지만 항상 소외감
을
느꼈다고 했다.
그 말은 워킹 맘으로 살아온 내게 비수를 찌르는 듯했다. 나도 아이들 학교행사에 한 번도 참여한 적 없지만 불평한 적 없
어
몰랐는데
한번 터지니 부메랑이 되어 죄책감에 시달리게 했었다.
"전, 엄마가 차려준 집밥에 대한 기억이 없어요. 평소엔 출근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5시 퇴근이라지만 회식이다 야근이다 해서 밤 8시가 되어야 퇴근하니 얘기할 기회가 없었죠. 문제가 생기면 혼자 해결해야 했
어
요"
"방학이면 쉴 줄 알았는데 교육을 받는다며 아예 보따리를 싸서 연수원으로
들어가 버려
열흘 씩 있다 오는 게
연
례행사였지만 직업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어서인지 아빠 하고는 꿍짝이 잘 맞
았
어요.
교육도 같이 신청하고 같이 움직이고
요
"
그녀는 대학진학을 앞두고 처음으로 부모님과 맞섰
고
, 아버지는 배고픈 걸 몰라 그렇다며
막무가내로 사대 원서를 사 왔단다. 엄마까지 곁에서 거들어대는 통에 등 떠밀리듯 사대에 입학했단다.
막 성인이 되고. 대학생이 되니
주변은 mt나 미팅을 하느라 들떠있었지만 그녀는 울타리 없는 성 안에 갇히는 기분이라 답답했다고 했다.
부모님은 밀린 숙제를 마친 듯 흐뭇해하셨단다.
큰 맘먹고 새 옷도 사주고 새 구두, 새 가방을 명품으로 준비해 주셨고 한 달 용돈도 두둑이 챙겨 주셨다고 했다.
긴 생머리에 버버리코트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였다니
교내에서 동기들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눈에 뜨였다고 했다.
동기들은 이름은 몰라도 '버버리'하면 그녀를
떠올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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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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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하는 여자(개정 2판)
저자
공무원 25년. 계약직 5년. 현재는 자영업을 합니다. 힘들고 화가나면 글을 씁니다. 좋아도 쓴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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