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야기
많이 더웠었다.
당신은 신부 화장이 좀 늙어 보이게 됐다고, 그리고 머리 모양도 좀 마음에 안 든다고 했었다. 나는 생전 처음 얼굴에 뭔가를 발랐었고 뭐가 뭔지도 모르고 그 자리에 섰었다.
장목사님 주례. 무슨 말씀하시는지 잘 모르겠던 그 주례사. 귀에 남아 있는 말씀은 그 특유의 억양으로 "자알~~~ 살기를 바랍니다. 박수우우~~" ㅎㅎㅎ
그래도 초년 성악전공자 미애가 축가를 불렀던 거 같고 예배당을 새로 짓고 나서 처음 했던 결혼식이라 결혼식 장소와 신랑 신부 이름을 적는 세워 두는 푯말을 처음 만들어서 사용하고 교회에 기증한 걸로 알고 있다.
누가 왔었는지?
그날 뭘 먹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없다.
참! 그건 기억이 나네.
지애가 선루프가 열리는 남자 친구 하얀색 무쏘를 사용할 수 있게 해 줘서 신났었지
참 신혼여행이라는 게 목요일 밤 비행기로 갔다가 토요일 오후 비행기로 돌아오는 말도 안 되는 2박 3일 제주 관광이었다.
첫날밤에 뭘 좀 준비라도 할 걸 그랬는데 아무것도 모르는(물론 지금도 그런 방면으로는 시간이 많이 흘렀어도 잘 안 된다) 생짜배기 신랑이다 보니 그냥 자고 말았었지
그래서 가장 재미있고 즐거웠었으면 했었던 둘째 날 당신 기분이 많이 안 좋은 상태로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인다고 내가 또 짜증을 낸 것 같기도 하다. 많이 미안타.
21년이 되었다. 어제 그 생각이 났었다. 내일이 6월 6일 한국 공휴일~ 그렇다면 "내일이 바로 그날이네!!" 그래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21년 전 당신과 그 무더운 초여름의 대구, 우리의 결혼 예식의 장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불로동 불로제일교회당 안에 같이 섰었던 바로 그날, 결혼식 기념일이다.
그 사이 너무 귀한 아이들이 태어났다. 세 명의 연이
많이도 돌아다녔다. 불로동, 대신동, 봉덕동, 본동, 상해 금수강남 1기, 대명동, BF homes, 퍼시픽, 근데 이제는 주민등록상 주소지가 서울 관악구다. ㅎㅎ
주례 목사님 말씀처럼 자알 살아 와았다. 그냥 여기까지 온 건 아니잖아? 당신이나 나나 결혼의 약속을 잘 지키느라 수고 많이 했다. 내 생각에는 당신이 좀 더 많이 수고한 거 같다.
고맙다. 수고 많이 했다. 잘 살아왔다. 여전히 예쁘고 사랑스럽고 아직까지 귀엽기도 하다. 나이는 좀 들었는데 아직 느껴지지가 않는다. 내가 머리가 많이 희어졌지. 체력도 많이 떨어졌다.
계속 자알 살아 보오자. 21년 잘 지나왔다.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