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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육오늘 Aug 19. 2023

유럽은 겨울도 좋다.

#8_체코 프라하 4박 5일

11월 가을의 프라하

2022.11.15 - 19


프라하에서의 마지막 날도 여전히 비가 내렸다. 원래 계획은 독일 드레스덴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가려했지만 드레스덴의 기상악화로 가는 걸 포기했다. 딱히 할 것도 없고 피곤해 호텔에서 늦게까지 뒹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또 막상 하루를 그렇게 보내면 안 될 것 같아 무작정 나왔다.

기념품도 몇 개 사고 시계탑이 보이는 카페에서 여유도 즐기고 안 가보았던 골목길도 걷고.. 할 것도 없는데 막상 떠나려니 아쉬운 건지 더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산 쓰고 다니는 게 처음에는 굉장히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는데 제법 익숙해져서 아무렇지 않았다.


이곳에서 마지막 저녁 만찬을 즐기기 위해 길 가다 괜찮아 보이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체코인들은 보통 저녁을 늦게 먹는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7시가 다 돼가는 시간인데 식사하는 사람보다는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레스토랑에 자부심 많아 보이는 친절한 서버의 추천으로 꼴레뇨와 체코 맥주인 코젤 흑맥주를 시켰다. 술자체를 즐겨 마시는 편이 아닌데 유명하다니 마셔본 코젤 맥주가 분위기 탓인가 맛있어 숙소에 쟁여놓고 4일 내내 마셨다.. 체코가 맥주 소비량 1 위국이라는 사실을 이번 여행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래서 그런가 맥주 가격이 대체로 저렴하고 마트 가면 종류도 정말 다양했다.

주문한 꼴레뇨의 사이즈가 내 예상 보다고 너무 커 당황스러웠다. 한국인 입맛에 잘 맞는다는 튀긴 족발의 꼴레뇨는 바삭하고 촉촉한 예상 가능한 맛이었고 역시 맛있었다. 느끼할 수 있는 고기 맛을 맥주가 잡아주니 밸런스가 맞았다. 그래도 계속 먹으니 물리기도 하고 양도 많아 결국 꽤 많이 남겼다. 계산하려니 서버가 난감한 표정으로 너무 많이 남겼는데 입맛에 안 맞았냐며 묻길래 아니라며 열심히 해명했다.


밥을 먹고 나오니 눈비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이 날 무슨 날인건지 락밴드 공연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눈비를 맞은 채광장에 모여 있었다. 유명한 밴드인지 사람들이 열광하고 따라 부르는데 혹시나 아는 가수일까 사람들 무리에 끼어 열심히 기웃되며 보았지만 모르는 밴드라고 생각되니 흥미가 떨어져 바로 숙소로 들어왔다. 숙소까지 뚫고 들어오는 헤드뱅잉이 그려지는 롤러코스터 같은 그들의 음악은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으며 체코 사람들은 뭔가 대체로 차분하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의외의(?) 음악 스타일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잘못 느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자고 싶었지만 음악소리 때문에 잘 수가 없어 결국 원치 않게 그들의 공연의 끝을 함께했다.


눈에 가까운 비가 내렸기에 어쩌면 다음 날은 눈을 볼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일어나자마자 본 창문 밖의 세상은 하얗게 눈으로 한 겹 쌓여있었다. 언제 그렇게 눈이 왔는지 자는 동안 꽤 많이 쌓인 눈을 치우느라 이른 아침부터 빗자루질에 열중인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딜 가나 사람 사는 모습 다 똑같은 것 같다.

  


예쁘게 쌓여있는 눈을 보니 겨울 여행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위를 많이 타서 겨울은 스키장 외에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깜짝 선물처럼 내린 2022년 첫눈을 보니 눈 오는 날의 유럽 거리를 걸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눈도 예뻤지만 해를 본 게 더 반가웠다 나흘동안 해를 못 봐서 여기 해가 뜨긴 하는 걸까?라는 의심도 잠깐 해보았다. 눈으로 덮이니 이제 막 익숙해진 거리도 다른 곳으로 보인다. 하.. 이렇게 눈이 예쁘게 온 걸 알았다면 더 일찍 일어나서 동네 한 바퀴 걷고 갔을 텐데.. 후회만 될 뿐이었다.



 오전에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넘어가야 하는 날이었기에 호텔에서의 마지막 조식을 먹고 터미널로 부지런히 걸어갔다. 해님은 프라하에 있는 동안 잠시도 나타나 주지 않더니 그래도 마지막 날 다시 오라는 듯 강렬한 햇빛을 뿜으며 잘 가라인사 하는 것 같았다. 사람이 참 단순한 게 4일 동안 비 때문에 축축 처진 기분으로 있었는데 터미널까지 걸어가는 8분. 공항까지 가는 버스 안에서의 한 시간 동안 차창밖의 그림 같은 모습을 보며 아쉬웠던 마음 모두 치유된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나.. 겨울 좋아했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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