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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육오늘 Aug 22. 2023

아름다운 수상도시 베니스

#9_이탈리아 베네치아 2박 3일

이탈리아 혼자 여행

2022.11.19 - 21



두 시간 전에 도착한 바츨라프 하멜 공항은 내 예상과 다르게 굉장히 한산했다. 기다릴 필요 없이 모든 수속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바람에 10분 만에 끝낼 수 있었다. 남아있는 코루나나 쓸 겸 기념품 가게에서 알폰스무하의 작품으로 만든 코스터랑 간식거리를 샀다. 여전히 탑승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앉을자리가 있는 카페에서 다음 여행지에 관한 베네치아편 전자책을 정독하기 시작했다. 여행 전에 여행지에 미리 알아봤으면 좀 더 좋았을 텐데 매번 벼락치기하듯 이동 전날 저녁이나 이동 중에 새로운 도시에 대해 찾아보느라 바빴다. 그래도 세 번째 도시 이동이라 그런지 처음에 느꼈던 긴장감은 많이 없어진 상태였다.



고요했던 비행기 안, 내 앞자리에 앉은 이탈리안 아저씨 두 분이 기내의 정적을 깨트리기 시작하셨다. 무슨 얘기를 그렇게 진지하고 재밌게 하시는지 앉는 순간부터 시작된 대화가 도착할 때까지 1초를 쉬지 않고 이어졌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대화할 때 손동작을 많이 쓴다더니 신경 쓰고 싶지 않은데도 앞에서 들썩거리는 제스처에 자꾸 눈길이 갔다. 두 분의 대화소리에 비상용으로 챙겨간 귀마개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들의 대화가 무뎌지게 들릴 때쯤 Treviso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베니스에 공항이 두 개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항공권을 예매할 때 시간이랑 가격만 보고 결재했는데 내가 착륙한 트레비소 공항은 베니스 시내와 멀리 떨어져 있어 대부분 마르코폴로 공항으로 가는 항공편을 이용한다 걸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트레비소 공항은 마치 공항이라기보다 고속도로 터미널 같은 분위기였다. 규모가 작기도 했고 사람들도 많고 분주해서 정신없는 분위기였다. 공항직원에게 시내로 가는 방법을 물어보니 이제 막 출발하려는 버스가 있으니 저기 있는 빨간 버스에 가서 기사님에게 내리는 곳을 말하면 된다고 말했다. 상냥한 직원은 내가 행여 못 알아 들었을까 차근차근 반복해서 말해주었고 나는 곧 버스가 떠날 거라는 말을 듣자마자 마음이 급해졌다. 10유로를 결제한 버스티켓을 받자마자 직원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표지판도 제대로 없고 중구난방으로 각기 다른 회사들의 버스가 세워져 있어 직원분이 말한 빨간 버스가 어떤 건지 헷갈려졌고 그 짧은 거리를 또 물어 물어 겨우 탈 수 있었다. 1시간 정도를 달린 뒤 도착한 베니스 시내의 메스테레역은 뭔가 조용하고 한산한데 황량한 느낌이었다. 낯선 관광객에게 무관심한 이전 두 도시와 달리 여기 사람들은 지나갈 때마다 계속 뚫어지게 쳐다보는데 괜히 낯설고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졌다. 괜한 경계심을 품고 역 근처 숙소에 짐만 대충 풀고 본섬을 가기 위해 부리나케 나섰다. 2박 3일이지만 이틀밖에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리알토 다리


메스트레역 거리는 그렇게 한산하더니 본섬으로 들어가는 산타루치아 역에는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산타루치아 역에서 또다시 10분 정도 수상버스를 타고 들어간 뒤 인파들 사이에 반 강제로 떠밀려 간 곳이 리알토 다리였다. 리알토 다리가 카날 그란데를 연결하는 네 개의 다리 중에서 가장 오래되어 상징적인 다리라고 알려진 만큼 기념 촬영을 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자연스럽게 위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내려올 때까지 아래에서 기다려야 했다. 한 칸 올라가서 기다리고 한 칸 올라가서 기다리고 할 때쯤 갑자기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열심히 두리번거리고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보니 한 곳을 향해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건 한 남자가 여자에게 무릎을 꿇고 프러포즈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이곳에서 새로운 인생의 한편이 시작되는 커플을 향해 자기 일처럼 환호하고 축하해 주는 이 모든 모습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골목골목 발길 닿는 데로 걸어 다녔다. 사람이 너무 많아 한산해 보이는 골목길로 무작정 걷다 미로 같은 좁은 길에 갇혀 한참을 헤맸다. 베니스의 복잡하고 좁은 골목길은 구글도 제대로 못 찾아내는지 길 안내가 제대로 되지 않아 나중에는 그냥 구글 지도 없이 사람들 많이 다니는 쪽으로 다녔다.

모든 장면 곳곳이 그림의 한 폭 같다. 어느 곳이든 그냥 찍어도 하나의 화폭처럼 아름다운 베니스였다.



산마르코 광장(성당)

비수기에 여행하면 좋지 않은 점이 하나 있다. 성수기 시즌을 위해 보수 공사가 이뤄지는 곳이 많다는 것이다. 이 날도 산마르코 성당이 일부 보수공사 중이었다. 본래의 아름다운 외관 그대로를 보지 못하고 공사현장의 모습과 함께 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이곳에 자주 올 수 없는 여행객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다.

길게 늘어선 성당 내부로 들어가는 줄을 보고 포기하고 섬 주변을 더 둘러보았다. 이미 역사적인 건물을 많이 봐와서 그런지 점점 유적, 역사적 장소에 대한 감흥이 무뎌지고 있었다. 예쁜 상점에서 아기자기한 소품을 구경하고 섬 한 바퀴를 둘러보고 나니 해가 지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숙소 쪽으로 가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 메스트레역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핸드폰을 한참보다 이상하게 내릴 때가 지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핸드폰에 집중하느라 방송을 못 듣고 역을 지나쳐버린 것이다. 메데스트레역 다음이 Padova라는 역이었는데 딱 한 정거장 놓쳤는데 33km 이상 떨어진 곳이었다. 구글지도를 확인하고 전광판을 확인한 순간 아차 싶었다. 앞에 계시는 아주머니한테 지금 메스트레역을 지난 거냐고 물었더니 메스트레역은 이미 지났고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서 다시 돌아가는 기차를 타야 한다고 말해주셨다. 자기도 가끔씩 나처럼 정류장 놓치고 잘 못 내릴 때 있다며 호탕하게 웃으셨다.

날은 이미 깜깜해졌고 몸은 피곤하고.. 어느새 기차에 탔던 그 많은 사람들은 이미 반이나 내려 텅텅 비어있는 걸 이제야 알게 되니 긴장감이 몰려왔다. 어느 곳으로 가는 건지 밖은 굉장히 깜깜했고 아무것도 없었다. 다행히 내리자마자 바로 반대편 기차가 와서 많이 기다리지 않고 탈 수 있었다. 긴장이 풀릴 때가 가장 위험하듯 혼자 여행하는 동안은 방심하지 말고 정신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한 하루였다.


정신 좀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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