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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랑관장 Jul 16. 2018

남아공 여행기: 짧은 다리는 죄가 없다

기적이다. 내가 살아서 이 글을 쓰는 것은. 케이프타운의 Lion's head. 일명 사자 머리라는 산을 올랐다. 잘 타면 오십 분, 보통 사람 실력으로는 한 시간 반이면 오르는 산이라고만 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해 질 녘이 끝내준다고 네 시경에 등반을 시작했다. 함께 오른 동생은 롱스커트를 입고도 휘적휘적 나아갔다. 그 속도를 쫒다 속이 두어 번 울렁거려 먼저 가라 수신호를 보냈다. 쉬엄쉬엄 가다 보면 결국 정상이 나오리라. 아니나 다를까 정상은 어느새 코 앞에 와 있었다.  


직선거리로 20미터 될까. 그 짧은 구간은 살아있는 공포였다. 까딱 잘못 균형을 잃으면 한 목숨 져버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사방이 깎아 내 지르는데, 안전장치하나 없는 미끄러운 돌산. 바위 하나를 오르는데 평소 안 쓰는 근육을 쓰니 어떤 때는 허벅지가 어떤 때는 어깨가 놀라 담이 온다. 누구 하나 절벽 아래로 스카프 날리듯 휙 떨어져도 누구 하나 나서서 구할 수도 없는 그런 곳. 정신이 아득한 채로 기어올랐다. 바위에 드문드문 박힌 사슬 손잡이 근처에는 ‘등산 시 위험은 네가 다 감수해야 한다’는 식의 경고가 쓰여있었다. 응급 상황 시 전화번호도 있었는데, 어쩌면 오늘 전화를 걸 수도 있겠다 싶었다. 불길한 생각은 하지를 말자며 이내 사납게 머리를 흔들었다.   


들리는 소리에 의하면 난 사색이 되어 정상에 나타났다 한다. 이마에 땀이 흥건했다. 식은땀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정상까지 간 이유는 오로지 혼자 내려가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노을이고 나발이고 해 떨어지기 전에 내려와야 한다는 생각에 정상에 오르자마자 내려가자 종용했다. 해는 기가 막히게 낙하 중이었다. 동생은 셔터를 누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뭐 그리 호들 갑스 레 경탄할 경관인가 싶었다. 하산 중반부터는 해가 다 져 캄캄해졌고 아래로 보이는 도심의 야경에 의지해야 했다. 두어 번 발목을 접질렸지만 온 신경을 모아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딘 덕분에 사고는 없었다.  


해가 다 져서 컴컴한 중에도 사람들은 정상을 향해 가고 있었다. 가는 길이 얼마나 험한지 이미 경험한 나는 그이들을 어떻게든 뜯어말리고 싶었지만, 표지에 쓰인 대로 모든 위험은 그이들이 감수할 일이었다. 관광 명소의 안전 관리가 왜 이토록 허술한지. 위험을 예방할 수 있어 보이는데, 개인이 안전에 대한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하다니, 남아공이라는 나라가 새롭게 보였다.   


숙소로 돌아와 축배를 들며 들여다본 사진들은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다. 억울했다. 공포에 짓눌려 누릴 것을 누리지 못했다는 생각에. 보았어도 본 것 같지 않은 기분이었달까. 동생을 앉혀 놓고 안전 불감증에 걸린 사람을 질책하듯이 앞으로 어떤 여행을 하더라도 이렇게 위험을 감수해서는 안된다고 지겹게 잔소리를 해댔다. 내가 느낀 공포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었으므로. 이야기를 한 참 듣던 동생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되려 ‘뭐가 그리 무서웠냐’며 반문한다. 그러다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 날 지긋이 응시하며, '아.... 언니 다리가 짧아서 힘들었겠다' 하더라. 하 참. 녀석이 세 치혀로 또 내 허를 찌른다. 그건 다소 사실이므로 웃음이 나왔다....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내 짧은 다리는 잘못이 없다. 죽을 각오로 보는 기가막히게 아름다운 일몰은 봐도 본게 아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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