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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랑관장 Jul 12. 2018

인도 여행기: 델리의 개새끼들 편

페미니스트 교사가 필요한 이유

델리에 와보니 어딜 가도 개들이 참 많다. 강아지는 보이지 않고 주로 중 대형견들이다. 낮이고 밤이고 거리에 널브러 자는 개들이 정말 많다.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해치기는커녕 긴장한 이방인에게 느긋하라 말해주는 유일한 생명체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개들은 죄가 없다. 죄가 있는 것은 개새끼라 호명되는 나이 많고 적음을 떠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수의 인간 새끼 아니 정확하게는 남자들이다. 개들은 죄가 없다.


오늘 "후마윤의 무덤"이라는 데를 꾸역꾸역 다녀왔다. 델리에서 마지막 날인데 혼돈이 무섭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었다. 죽은 남편을 기리며 왕후가 지은 우아한 무덤 정원으로 느릿느릿 진입하는데 교복 입은 사내아이들이 꽤 보인다. 고등학생이나 됐을까. 중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체구가 작은 남학생도 섞여 있었다. 무심히 한 무리를 지나치는데 한 명이 내게 "익스큐즈미" 한다. 서너 명 무리 중 제일 순하고 어려 보였다. 사진을 함께 찍어 줄 수 있냐기에 왜라고 묻는 도중에 찍혔다. 연이어 또 다른 친구가 옆에 선다. 시선을 분산시켜 소매치기라도 하려는 건 싶어 가방을 꼬옥 끌어안았다. 웬걸. 그이들은 그저 호기심에 기념샷 하나 남기려는 심산이었다. 어색하게 미소를 지워 보이는 순간 허리춤으로 손이 쑥 들어온다. 마침 얇은 모시옷을 입고 있어 손길이 피부에 가깝게 닿았다. 프렌들리 한 제스처인데 너무 움찔했나 싶어 약간 부끄러웠다. 그이들은 왁자지껄 웃으며 자릴 떴다.   


찜찜했다. 무덤을 돌아다니는 내내 찜찜했다. 그러다 무덤 바깥에 앉아 멍을 때리고 앉았다. 느리게 가는 시간을 음미하는데 의미를 부여하느라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얼마를 앉아 있었을까. 다시 왁자한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한 녀석이 "하이 미스, it's me again" 하면서 내 옆으로 폴짝 뛰어 꽤나 가까이 앉는다. 아까 그 녀석이다. 녀석의 얼굴엔 장난기가 없었다. 친구 서너 명이 우르르 나를 둘러쌌다. 그중에는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짓는 이도 있었다. 녀석은 다시 사진을 찍자고 했다. 나는 애써 호 의롭게 "왜?"라고 물었다. 그는 조용한 목소리로 "비코즈 아 엠 호르니"라고 했다. '호르니.. 호르니가 뭘까.. 호르몬 같기도 하고...' 다시 물었다. "왓츠 호르니?" 하니 불길한 예감은 늘 그렇게 맞다. "I want to f*ck with you"라는 답이 돌아온다. 아... 그제야 호르니는 그 horny 그러니까 나 흥분했다 혹은 밝히는 사람 같은 말을 하고 싶었던 거였다. 1.5초 지났을까. 최대한 낙담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오... that's too bad. You guys are really bad, 오.. 너희는 지금 나를 성희롱하고 있어"라고 "타이르듯" 말했다. 말을 하다 보니 점점 화가 났다. 그래서 고작 한다는 말이 "너네 학생이지? 너네 선생 어딨어???"하고 협박했다. 순간 너무 쉽게 선생과 학생의 권력관계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거 같아서 스스로 또 책망했다. 다시 경찰에게 신고할 거라고 으름장을 놨다. 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웃음기 없는 얼굴로 신고하라고 했다. 당장 꺼지라고 언성을 높이니 슬금슬금 자리를 뜬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다. 심장이 터질 거 같았다. 심장이 뛰는지 천지가 개벽을 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뛰었다. 막을 길이 없었다. 다시 상황을 되새김질을 했다. 내가 놓친 건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반응을 했어야 했나. '너네 인도 남자들이 고작 이 모양인 거냐?'라고 인도 남자 전체를 싸잡아 욕해줬어야 했나, 무덤에 있는 왕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크게 "HELP" 하고 외쳤어야 했나. "확 그냥 무덤에 처넣어버릴까 보다"라고 말했어야 했나. 그리고 그 말 한마디 "Shame on you!!" 같은 말은 왜 튀어나오지 않았나. 어떻게든 부끄러움을 주고 싶었는데 대략 실패한 거 같아 몹시 분했다. 하지만 분노는 공포 이전에 찾아오지 않는다. 나는 분명 그 순간 너무 무서웠고 엄청 빠르게 심장으로 피가 집결되고 있었다. 마치 영화 <죠스>에 나오는 이름 없는 여자가 죠스에게 물리기 직전 느끼는 다급함 같은 걸 느꼈다. 그 이름 없는 여자는 늘 죽기 마련이다. 좀 과장해 내가 그 상황에 죽지 않은 절대적 이유는 그저 때가 대낮이었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관광지인였다는 점이지 내가 성인이고 의사를 분명히 밝힐 수 있는 동양 여자라는 사실은 상황을 통제하는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그저 "건드리기 쉬운" 그이들 보다 나이 든 "이름 없는" 동양 여자에 불과했다. 그 무덤 정원을 빠져나올 때 그 남학생들 무리를 찾아 혼꾸녕 내기는커녕 행여 내가 그이들 눈에 띌까 노심초사 얼굴을 들지 못했다.


이 와중에 애써 한가닥 희망을 찾자면 "이건 성폭력이야!!"라는 말에 반응하는 몇몇 동공들이었다. 무리 들 중 분명히 뒷걸음치는 자가 있었다. 경찰에 신고할 거라고 말할 즈음에는 이미 자리에 없었던 이도 있었다. 난 그 뒷걸음침이 일종의 수치심이자 미안함이었다 믿고 싶다. (만고 내 생각)


불현듯 최근 온라인상에 일었던 #페미니스트 교사가 필요하다는 캠페인이 떠올랐다. 상황이 이럴진대 누가 감히 페미니스트 교사는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나. 누가 과연 "난 페미니스트는 아닌데"라는 말을 떳떳하게 떠들 수 있나. 자랑이다 자랑.


이역만리 집 떠나 이런 종류의 분노에 사로잡혀있다니 ㅠㅠ 해탈한 줄 알았는데 다시 번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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