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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랑관장 Jul 12. 2018

육아, 돌아올 수 없는 편도행 열차

초등학교 단짝인 친구가 제주에서 아이를 낳았고 8개월이 지났다. 삶이 버겁다고 엄살을 부리지 않았다면 일찍이 친구와 그이의 아들을 보기 위해 제주를 다녀왔을텐데, 나는 기어이 친구가 태어난지 팔개월된 팔키로 나가는 아기를 안고 내 집에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말았다.


세상의 다양한 아기를 만나보지 못했지만 이 아가는 가히 의젓(?)하다 할 만했다. 못마땅한 상황엔 미간을 살짝 찌푸릴 뿐 '크아앙' 하고 울음을 터트리지 않았고 금새 만면에 웃음을 띠어 주었다. 그럼에도 친구는 쉴새 없이 아이와 눈을 맞추고 아이를 향해 혼잣말을 하거나, 잠시라도 찡얼거릴거 같으면 아이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해야 했다. 아기를 보며 식사를 해야 했기에 불어나는 짬뽕 대신 짬뽕밥을 시켰고, 커피를 좋아하지만 모유수유를 위해 1일 커피 섭취량을 엄격하게 제한했다. 홀로 서 있을 힘은 커녕 기어다니기도 벅찬 아기에게서 시선과 손을 떼기는 불가능했다. 친구의 숨쉬는 매순간을 채우는 행위는 그야말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강도가 높은 노동이었는데, 그 당연한 상식을 익히 알면서도 친구에게 "힘 들이지 않고 아이를 키우는거 같다"는 무도한 말을 뱉고 말았다. 그녀는 천진한 얼굴로 '육아의 세계란 돌아올 수 없는 편도행 열차를 탄 거'라고 말하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앞으로의 아득한 시간은 예의 그 낙천적인 성격 덕을 보겠다 싶으면서도 부디 그 고운 심성에만 의존해 육아의 힘듦을 감내해야 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원없이 자고 싶다는 바램 또한 얼른 이뤄지면 좋겠다. 조만간 제주에서 낮술 한잔 나누자는 바램도 얼른 이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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