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변명

An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

by Joon

음미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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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기원전 470 - 399)


소크라테스는 자신보다 현명한 이가 없다는 델피의 신탁을 받는다. 이를 믿기 어려워 확인하고자 그는 지혜롭다고 알려진 사람들, 정치가들과 시인 그리고 당대의 장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지혜롭다고 알려진 이들이 기실 잘 알지도 못 하는 것들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게 된다. 적어도 소크라테스는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지는 않기에 그러한 점이 가장 현명한 자라는 신탁을 받게 된 연유일 것이다.


지혜롭다고 알려진 자들이 실상은 그러하지 않다는 것, 즉 그들이 무지하다는걸 드러내기 위해 소크라테스는 ‘캐묻기(exetasis)' 라는 방법을 사용한다. 소크라테스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이 믿는 가치를 계속 캐묻는다. 오늘날의 키보드 워리어라 할수 있는데 이 일을 하느라 집안 일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고 하니 그의 아내가 그를 좋아하지 않은건 놀랄 일이 아니다. 소크라테스에게 캐물음을 당한 이들은 그 결과 자신의 믿음이 얼마나 뿌리가 얕은 것인지 아고라 광장의 보는 눈들 앞에서 드러나자 당황해하며 그 자리를 서둘러 떠나게 된다. 승승장구하는 키배질도 점점 이력이 붙어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의 영웅이 되며 그를 따라 하니 결국 소크라테스는 청년을 타락시키는 자라는 악명을 얻게 된다. 이것이 그가 기소된 이유 중의 하나이다.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대강 짐작이 간다. 예나 지금이나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도덕 가치에 대해 사람들에게 따져 묻는 것으로 삶을 꾸려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괴짜 취급 정도 밖에는 받지 못할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내 앞에 있다면 묻고 싶다. ‘당신은 캐물음을 매우 중요시하는 사람인데 어째서 그게 그렇게도 중요한 일인가?’ 그는 캐묻지 않는 삶은 살아야 할 가치도 없는 것이라고까지 단정한다. 모든 것을 캐묻기 좋아하는 그는 이 질문 역시 받아 줄 것이다. 캐묻는 삶이 가치가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그는 내 앞에 없다. 대신 그가 했으리라 짐작되는 말들을 그의 제자 플라톤이 받아 쓴 책이 앞에 있을 뿐이다. 이 책을 통해서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을 간접적으로 찾아낼 수밖에 없다.


유감스럽게도 내가 읽은 부분에서 직접적인 답을 발견하지는 못 했다. 계속해서 캐묻고 생각하며 지혜를 사랑하는 것(철학하기)은 하나의 덕(arete)과 같은 것으로 묘사된다. 일종의 순환론적인 설명이라 할수도 있겠다. 캐묻는 삶이 왜 좋은 것인가? 그것은 좋은 것이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질문의 모양새를 바꿔 보는건 어떨까. 캐묻지 않는 삶은 왜 좋지 않은 것인가? 그건 자신의 삶을 그저 외부에서 주어진 것으로 아무런 반성 없이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좋지 않은 것이다. 자율이 아니라 타성에 의해 꾸려지는 삶. 이것은 소크라테스에 의해 잠을 자고 있는 상태로 비유된다. 그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모든 가치를 의심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왜 그러한지를 따져보도록 요구한다. 그는 소크라테스 자신이 한 말이라 해도 상대가 생각없이 받아들인다면 그것을 반대할 사람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베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베라고 했던 선불교의 정신과도 비슷하다.


중요하다 믿어지는 가치에 대해 끝없는 바닥까지 내려가며 그 의미를 물어보는 것. 이것이 그에겐 진정한 삶이라고 여겨졌고 더 이상 그러한 탐구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게 될 때 그가 의미 없는 삶을 포기하고 사형 선고를 받아 들이게 된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는 따져 묻기라는 방법에서 서양 철학을 만들었고, 동시에 그 철학에 있어서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