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쓰러지니 어서 회사로 들어오라

소설 누운 배를 읽고

by Joon


누운 배는 중국에 진출한 중소 규모 조선소에서 진수까지 끝내고 부두에 서 있던 배가 쓰러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자동차 6700대를 싣고 대양을 넘나들도록 만든 '거대하고 흰 절벽같은' 배가 완성을 얼마 남기지 않은채 바닷물 속에 누워버린 것이다. 계약한 선주사에 배를 넘겨주고 돈을 받아야 하는 회사에서 배가 쓰러졌으니 회사가 무사할리 없다.


모든 부서가 책임 회피를 하는 장관이 벌어지는데, '생산 부서 사람들은 생산에서 발생하지 않는 원인들을 말하고 설계 부서 사람들은 설계에서 발생할 수 없는 원인들을' 말하며 발뺌하려 한다. 회사의 총체적인 무능이 배를 눕게 만든 셈이다. 다행히 일을 할줄 아는 팀장과 유능한 외부 컨설턴트 홍 소장이 TF를 구성해 보험사로부터 보상금을 받아내기 위해 논리를 만들고 움직이지 않으려는 각 부서를 들쑤셔서 없는 자료를 만들어 가며 중국측 손해 사정사와 대결하는 이야기가 속도감 있게 펼쳐진다. 전반부는 꽤 흥미로운 기업 소설이다. 보험사를 천재 지변으로 생긴 사고라는 방향으로 몰고 가기 위해 중국 기상청에 꽌시를 동원해 필요한 문서를 받아내며 이렇게 만들어낸 가짜 진실로 보험사의 항복 선언을 받아낸다. 중국 보험사가 고용한 손해 사정사는 좀 더 조사를 밀어 붙이면 진짜 문제, 회사의 잘못들을 찾아낼수도 있었을텐데 (배가 정박한 의장 부두의 깊이가 규정보다 얕다거나 평형수 탱크 자리의 작업 불량으로 물이 새어 들어갔다거나) 기상청이 꾸며낸 보고서 한방으로 자신을 고용한 보험사가 보상 방침을 정하자 그냥 거기에 따르고 만다. 이런 큰 사건에서 손해사정을 했다는 경력을 추가하였으니 얻어야 할건 얻었다 판단하고 만족한 것이다. 보상을 해야 하는 보험사를 포함해 모두들 책임은 회피하며 자기 보전을 좇아 각자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물러난다. 이후에 회장이 누운 배를 세우겠다는 거창한 연설과 함께 직원들의 연봉을 일괄 동결하며 마련한 재원으로 엉뚱한 해외 사업에 투자하다 말아먹고, 보상 처리에 기여했던 팀장은 진급에서 누락되는 일을 당하며 회사를 떠난다.


소설의 진짜 이야기는 2부에서 슈퍼 히어로라 할 인물의 등장과 함께 시작한다. 회사의 재정적 문제로 채권단이 꾸려지고 그들의 압력으로 있던 사장이 나가며 황 사장이라는 새 인물이 부임한다. 조직에 변화를 일으키려는 그가 상대할 빌런은 회사의 임원들이다. 임원들은 한국 대기업에서 일하다가 그 경력으로 중국의 조선소에 들어와 자리를 꿰찬 사람들인데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것들을 익히기엔 나이 들어 쉽지 않으니 실무적인 일은 모두 밑으로 내려보내고 티가 나는 일만 자신의 업적인 것처럼 포장해서 보고하고 회장을 정점으로 한 구조에서 자리 보전을 하는데 치중한다. 회사 전체의 생산성에는 기여하는 바 없이 꿀을 빠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데 정치적 역량을 집중한다. 전형적인 지대 추구 (Rent seeking) 의 문제. 그렇기에 자신들의 위치를 흔들수 있는 변화와 개선이라는 불확실함은 애써 막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들 뒤에는 최종 보스라 할 회장이 버티고 있다. 개발 독재의 화신이라 불러도 될 황 사장은 능력이 있고 부지런하다. 일하지 않고 말로만 혁신을 떠드는 무능한 임원들과 팀장들을 회의 시간 내내 물러설 곳 없을때까지 몰아세우며 깨나간다. 회의실 바깥에서 불평과 험담이 돌지만 개의치 않으며, 편을 도모하지 않고 개인으로 서 있으며 자신의 한계를 안고 싸움을 계속한다. 직원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서는 이게 사람이 먹을수 있는 음식이냐며 임원 식당을 폐쇄하고 식당의 음식 질을 올리는 방안을 만들어서 가져오라 지시하며, 안팎의 수많은 문제들을 파악하고 몰아붙여서 조립 공정의 문제를 개선해서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인프라가 없던 상황에서 반자동화 단계까지 도달하는 쾌거를 이뤄낸다.


이때부터 그의 몰락이 시작된다. 제약 이론(Theory of constraints)의 관점에서 볼때, 조직의 생산성을 저해하는 병목 지점을 해소함으로 생산성이 오르게 되면 병목은 새로운 곳으로 옮겨 간다는 것. 조립 공정에서 막혔던 문제들이 해결되며 속도가 오르자 설계, 전처리, 탑재, 도장 등 전후 공정의 숨어있던 문제들이 드러난다. 생산성을 올리도록 도장과 탑재를 담당하는 조 상무에게 개선을 요구하지만 회사 내에서 황 사장의 정적인 조 상무는 온갖 핑게를 대며 격렬하게 반목하고 들어주지 않는다. 조직에서 병목을 개선하고자 하는 시도가 더 이상 개선할수 없는 지점까지 도달한 것이다. 개발 독재의 화신이라 할수 있는 인물도 더 윗선의 지원이 없으니 사내 정치 투쟁에서 패배하며 개선 동력을 잃고 내리막을 걷게 된다. 도요타가 생각나는 대목인데 오노 다이이치가 현장의 엄청난 저항을 이겨내고 TPS라는 새로운 생산 방식을 실험하며 안착시킬수 있었던 것은 그를 후방 지원해준 도요타 가문의 존재로 흔히 설명된다. 전시에 미군의 폭격을 경험하며 쑥대밭을 만든 미국에 대한 불안감과, 패전 후 조만간 미국 자동차 빅3라는 쿠로후네가 국내에 들이닥칠 것이란 위기감이 도요타를 TPS라는 가보지 않은 방향으로 움직일수 있게 했다. 소설 속 회장은 자신을 떠받들어 주는 사람들을 왕처럼 굽어보며 자기 아래로 뻗어 내린 위계에 사람들이 어떤 태도로 복종하는지 그것만 보는 인물로 그려진다.


회사 상황이 악화됨에 따라 일하지 않는 윗선들의 지대 추구는 조직의 수직 구조에서 일이 아래로만 내려가는 문제를 심화시킨다. 회사가 기울고 해결할 일들은 더 어려워지는데 그럼에도 윗선은 이를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 왜냐면 그냥 밑으로 내려보내면 되기 때문이다. 임원은 부장에게, 부장은 과장에게 너네가 알아서 해결하라 지시하고 결국 더 내려 보낼 곳이 없는 조직의 말단이 이 모든 하중을 받아내어 자신을 갈아내어 일을 처리하고 겨우 회사가 움직여나간다. 견디다 못 해 다른 회사로 옮기는 직원들이 있지만 대체로 여길 나가봐야 다른 곳도 비슷할 것이라 여기며 어떻게든 버티고 그렇게 자신의 젊음을 '동대문 시장의 포목처럼 끊어다' 팔아 월급으로 바꾸고 그만큼 늙어간다.


마지막으로 황 사장은 판세를 바꿔보기 위해 2년간 누워 있던 배를 다시 세우고자 한다. 능력자 설정을 안고 있는 인물이다보니 천신만고 끝에 배를 세우는데 성공한다. 그 후에 생긴 일들에 대해선.. 더 이상의 설명을 생략합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읽어보시길 :)


소설의 전반부는 문제 해결을 위해 투입된 전문가들이 뒤엉키며 어떻게 일하는지를 보는 재미가 있고, 후반부는 외부에서 영입한 슈퍼 히어로조차 썩은 조직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하더라는 암울한 정서와 그 안에서 갈려나가는 현업들의 고통이 뺏속 깊이까지 묘사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작가가 말미에 내놓는 답은 조금 글쎄요.. 싶지만, 아무려나 스스로 내놓은 답에 충실하게 만들어 내놓은 결과물이 이 소설이다.


장강명의 당선 합격 계급을 읽으며 알게 된 책인데 장강명은 이 소설의 작가 이혁진, 정세랑 등과 자신을 묶어서 '월급 사실주의'라는 이름으로 부를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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