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과 인간, 적과 친구 사이에서

영화 <드래곤 길들이기>가 전하는 이해와 소통의 여정

by 인문학 도슨트
드래곤길들이기02.jpg 영화 <드래곤 길들이기> 스틸 컷


한 섬마을 위로 드래곤들이 날아다니고, 그 아래로는 불을 피워 그들을 쫓아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화 <드래곤 길들이기>는 이 마을의 이야기를 통해 적대와 이해의 간극을 탐구합니다. 불을 내뿜는 드래곤은 마을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타자(他者)의 은유입니다.


영화 속에서 아버지인 스토이크는 드래곤을 멸종시켜야 할 적으로 간주합니다. 반면, 아들 히컵은 드래곤에게 다가가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드래곤을 두려움이 아닌 소통의 대상으로 바라봅니다. 두 사람의 시선은 단순히 세대 간의 차이를 넘어, 우리가 타자를 바라보는 방식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불과 칼: 적대의 그림자

스토이크의 세계에서는 드래곤은 오직 제거해야 할 대상입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과 마을의 역사를 통해 드래곤을 생존을 위협하는 절대적 악으로 이해합니다. 이는 우리가 낯선 것에 대해 가지는 두려움과 비슷합니다.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이념적 갈등도 이와 닮아 있습니다. 서로를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상대를 두려움과 혐오의 대상으로 여깁니다. 상대의 말을 듣기도 전에 그들을 "드래곤"처럼 적대적인 존재로 규정합니다. 하지만, 이 적대는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더 큰 갈등을 낳을 뿐입니다.


드래곤의 눈: 이해의 첫걸음

히컵은 스토이크와 다릅니다. 그는 드래곤 투슬리스와 조우하며, 그들이 단순히 적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 생존하려는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투슬리스의 날개를 치료하고, 그와 함께 하늘을 날기 시작하면서, 히컵은 드래곤이 결코 인간과 다른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사회적 갈등도 여기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갈등의 본질은 서로의 두려움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풀립니다. 상대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는 시도는 때로 느리고 불편하지만, 그것이 없으면 우리는 끝없는 대립 속에 갇힐 수밖에 없습니다. 히컵이 투슬리스의 눈을 들여다보았듯, 우리도 상대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야 합니다.


하늘 위에서의 동행: 소통의 가능성

스토이크는 아들의 방식을 믿지 못합니다. 그는 드래곤과의 협력을 인정할 수 없고, 전쟁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히컵은 아버지에게 드래곤의 진짜 모습을 보여줍니다. 드래곤은 단순히 파괴자가 아니라, 서로 이해하며 공존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요.


결국, 스토이크는 히컵의 시선을 받아들이며 드래곤과 인간이 함께하는 새로운 세계를 만듭니다. 두려움과 적대의 벽을 허물고, 새로운 길을 여는 것은 소통과 신뢰에서 비롯됩니다.


불씨를 끄는 바람: 이해와 몰락의 경계

히컵과 스토이크의 갈등이 해결되지 않았다면, 그 마을은 끝없는 전쟁 속에 몰락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이해와 몰락은 같은 지점에서 출발하지만, 전혀 다른 길로 나아갑니다. 이해가 부족하면 갈등이 지속되고, 갈등은 결국 공멸로 이어집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이념적 갈등은 스토이크와 히컵 사이의 대립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각자의 진영 속에서 서로를 비난하며 불신의 벽을 높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몰락은 불가피합니다.


결말을 바꾸는 선택

영화 <드래곤 길들이기>는 단순한 성장 영화가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두려움과 적대를 넘어, 이해와 소통으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합니다. 드래곤이 더 이상 적이 아닌 친구가 되었듯, 우리도 서로를 길들여야 할 대상이 아닌, 함께 살아가야 할 동반자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갈등도 이 영화처럼 결말을 바꿀 수 있습니다. 히컵이 드래곤에게 다가간 용기를 기억하며, 우리도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첫걸음을 내딛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몰락을 막는 유일한 길은, 두려움을 넘어선 이해와 소통 속에 있습니다.

드래곤길들이기03.jpg 영화 <드래곤 길들이기> 스틸 컷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불멸의 제국, 사라진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