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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leis Jun 04. 2024

아나야

en-lighten-ment

어쩌다가 아나야의 옆집으로 이사를 왔다. 아나야라는 이름에 무슨 뜻이라도 있나 싶어 그녀의 아빠에게 물어보니 'Enlightenment.' 라고 간단히 대답한다. enlightenment 라면 깨달음이다.. 내가 그게 뭔지 그렇게 알고 싶던 깨달음말이다. 나는 깨달음의 옆집으로 이사를 왔다




뜨거운 한 낮이다.

마당에서 그녀가 튜브로 된 어린이용 풀에서 고무오리와 함께 놀고 있다. 나는 할 일도 없어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건다.

재밌겠다. 이거 네 거니? 수영장이네. 물도 나오네?

네. 얼마 전에 산타에게서 크리스마스 선물 받은 거예요.

와 좋겠다. 부럽다.

어.. 그러면 들어와서 놀래요?

고마워. 그런데 괜찮아.


우리 가족은 그녀의 가족에게서 초대를 받았다. 뜨거웠던 아까의 낮과는 달리 밤은 서늘하다. 거의 추울 정도다. 내가 자리를 잡고 앉자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이 옆 의자에 오르며 내게 묻는다.


몇 살이에요? 4살? 5살?

40살쯤.

어디에서 자요?

나랑 나의 남편은 저기 보이는 저 집 안쪽 방에서. 인수 오빠는 그 바깥쪽에서 자.

나는 집을 가리킨다.

진짜요? 진짜 바깥에서 자요? 눈이 휘둥그레지며 묻는 아이. 이름이 아나야인 그녀는 아름다운 눈과 자태를 가진, 피부가 갈색이고 머리가 긴 4살 꼬마아이다. 한국나이로는 6살쯤 되었겠다.

아니 바깥쪽 방에서.

아..  


당신의 엄마는 어디 있어요?

일본에 있어.

당신의 아빠는 어디 있어요?

하늘 나라에.

하늘나라요? 저기요? 네 개의 침대가 있다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하늘을 가리킨다.

네 개의 침대?

그래요. 저기 네 개의 침대가 있고 그중의 한 개에 당신의 아빠가 누워있는 거예요. 그 얘기 몰라요?


나는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달무리 옆으로 베일 같은 흰구름이 지나가고 있다.


가방은 어디서 났어요?

그녀가 내가 무릎에 올려놓은 털가방을 가리키며 묻는다.

아 이거.. 우리 집에 괴물이 나오거든. 어제 괴물을 때려잡았어. 그 가죽으로 만든 거야.

정말요? 정말요? 그녀는 신기하다는 듯이 내 가방을 이리저리 살펴본다. 정말 집에서 괴물이 나와요?

응 너도 한번 보고 싶으면 놀러 와도 돼.

진짜요?


어제 인수오빠가 자기는 집에서 앵무새 키운댔어요. 되게 크고 예쁘다고 했어요. 진짜예요?

응? 그럼. 인수는 상상의 앵무새를 키워. 밥도 주고 물도 주지. 아주 크고 예뻐. 말도 잘하고.

진짜요?

인수는 나의 답변에 만족스러워하는 눈치다.


화로 위 석쇠에선 옥수수가 구워지고 있다. 그녀의 엄마가 거기에 올리브유와 버터가 섞인 고체형의 기름을 바르고 있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모른다. 옥수수 옆엔 닭고기로 만든 소시지.. 매콤한 맛과 순한 맛 두 가지다. 그녀가 그것들을 이리저리 뒤집다가 잘 구워진 옥수수 하나를 내게 먼저 건넨다.


고마워요.

나는 맛을 본다. 한국의 것과는 다르지만 꽤 맛있는 옥수수다. 나는 그녀에게 맛있다고, 내 나라에서 나는 옥수수는 이것보다 조금 더 찰지다고 말한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4살의 아나야는 엄마에게서 옥수수를 받아 요정처럼 한 입 먹다가 만다. 말랐다. 소시지는 그래도 좀 먹는다.


우리 모두는 이민자다. 그녀 가족은 피지에서 온 인도계 사람들로 영어도, 인도어에도 능통하다. 내가 한국에 가지고 있던 아파트를 이민 와서 1년 후에 팔았는데 그 이후 천정부지로 한국 아파트 값이 오른 얘길 하자, 그들은 웃으며 자신들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말한다.


사라, 와인 한 잔 더? 그녀의 아빠 샨지가 내게 와인병을 흔들어 보인다.

아니요. 내가 말한다. 겨우 한잔 마셨을 뿐인데 취하는 것 같다.


이제 화로 위엔 아무것도 없다. 장작에서 불길이 그대로 치솟는다. 일렁일렁 붉은 혓바닥처럼 화다닥거리며 타오르는 불. 사람들의 얼굴도 일렁거린다.


또 다른 손님으로 아기를 안은 젊은 부부가 온다. 피지에서부터 알던 사이라고 했다. 부인은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었고 그녀 또한 매우 아름답다. 남편은 부유한 인상으로 다리를 벌리고 의자에 깊숙이 기대어 앉아 있다. 한 살쯤 된 아기에게 아나야는 반한 듯이 순식간에 정신을 빼앗긴다. 아기를 안은 엄마가 내 옆에 앉았다.


아나야, 자리 바꿔줄까?

아나야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그녀의 관심은 내가 아니라 온통 아기에게 쏠려 있다. 아기는 타오르는 화롯불에 시선을 고정하고 뻗장다리로 엄마의 무릎 위에 서있다. 엄마가 붙들고 있지 않다면 불을 손으로 잡으러 갈 기세다. 아나야는 그 옆에서 아기만을 바라본다. 신기해? 응? 아기에게 말을 걸지만 아기는 불에 사로잡혀있다.


어른들은 한참 대화를 이어가고

아나야는 집 앞 데크로 간다.


나도 마당을 잠시 걷다가 그녀 앞에 선다.

불꽃놀이 할래요?

그녀의 발 밑에 불꽃놀이 상자와 흩어진 불꽃 막대기들이 있다. 그녀는 그중에 하나를 집어든다.

얼마 전에 불꽃놀이하고 남은 거예요. 불꽃놀이 하고 싶어요? 아나야는 다정하게 묻고 내 대답을 기다린다.


아니 지금은 괜찮아. 나중에.

나는 그녀의 부모가 언짢아할까 봐 불꽃놀이를 만류한다. 주위는 아주 조용한 주택 가고 깊은 밤이다.


자신이 불꽃놀이를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배려심에서 물어보는 건지 몰라서 나는 그녀의 표정을 살핀다. 아나야는 계속 시선을 불꽃놀이 상자에 고정시키고 발로 흙을 차고 있다.


그녀가 보석 같은 아이라는 걸 그녀의 부모는 알고 있을까. 나는 그녀의 부모 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아나야가 다시 말한다.

괜찮아요. 이거 갖고 놀아도. 하고 싶으면...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주저한다. 나는 불꽃놀이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반짝! 불이 켜지면 얼마나 이쁠까.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다.


어느새 곁에 와 있는 그녀의 아빠가 웃으며 그녀에게 나중에 하자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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