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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leis Jul 08. 2024

달과 시간

그날도 나는 대학교 건물 앞 넓고 판판한 계단을 하나 둘 뛰어 내려가던 중이었다. 피아노 건반을 밟듯이 천천히 움직여가면 내 앞에 펼쳐진 세상이 그만큼 조금씩 뛰어 다가오곤 했다. 건물 안 학교 조리실에선 몇몇의 사람들이 정리를 하는 듯 공간을 가로질렀다. 나와는 상관없이,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집에 갈 채비를 하는 것이었다. 5시쯤이나 되었을까, 나는 집에 가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방학이었는지 몰라도 학생들은 보이지 않고 조용히 건물들만이, 교정의 잔디와 나무들만이 그 자리에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석양이 지는 시간이다.’ 나는 생각했다. ‘그러면 노을을 바라보면서 이 계단을 뛸 수 있을 거야.’ 계단은 한 번의 스텝으로 밟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계단에 어린이 열명은 둘러앉을 수도 있을 정도로 넓었다. 그러니 나의 발걸음으로는 서너 번 그리고 끄트머리에서는 폴짝 뛰어야 다음 계단으로 갈 수 있다. 그 점이 그 계단의 매력이었다. 쉽게 내려가는 길을 허락하지 않기에 걸음을 신중히 맞춰야 리듬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새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내 옆에 와서 섰다. 한 손에 책을 들고, “여기 뛰어내려 가는 거 재밌지?”라며 말을 걸었다.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그 계단을 성큼성큼 내려가 밑에 다다랐다. 그리고 나는 관성에 의해 조금씩 계단을 마저 내려가고 있었다. 그는 바삐 어딜 가려는 것처럼 보이던 것과는 달리 맨 아랫계단에 멈춰서 있다. 몸을 돌리고 내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 있다가 다 내려오자 나를 번쩍 안아 든다. “잘했어!”


나는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새어 나오는 것을 막으며 그에게 매달려 있다. 잠시 아빠인가 착각했다. 그리고 이내 알았다. 내 아빠는 나를 들어 올릴 수가 없다는 것을, 내가 이제 너무 커버려서 아빠의 한쪽 다리로는 지탱할 수 없다는 것을. 아빠는 다리를 절었다. 어릴 때의 병으로 한쪽 다리를 쓰지 못했다. 어안이 벙벙한 나를 내려놓은 그는 말한다. “떡볶이 먹으러 갈래? 요 앞에 떡볶이 가게가 많아. 가서 먹자.” 아무도 따라가지 말고 누가 사주는 걸 먹지도 말라고 교육받은 나는 됐다고 하고 길을 가려한다. 그가 피식 웃으며 나를 따라온다. 그와의 나이차이가 얼마나 될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핸섬하고 마른 외모였다. Owner라고 쓰인 맨투맨을 입었다. 나는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온종일 바깥을 돌아다니느라 피부가 까만 열한 살의 아이이다. 별명은 까마귀, 햇볕에 타고 목욕은 일주일에 한 번 공중목욕탕에 간다. 비가 오면 발목의 때가 벗겨져 일시적으로 하얘진다. 이런 내게 무슨 호의인지 나는 의아해한다. 그렇기에 더욱 의심이 간다. 왜 내게?


고개를 숙이고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닌 먼 길로 일부러 돌아서 가는 내내 그는 내 옆에 있다. 원래대로라면 나는 대학의 후문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나 계단은 정문에서 가깝고 정문으로 나가면 집으로 가는 길이 몇 배 더 멀어질 텐데. 정문으로 향해 가는 길에 익숙한 잔디밭과 내가 좋아하는 키 작은 나무들이 나를 쳐다본다. 오늘은 혼자가 아니네. 누구와 함께 있네. 그 남자는 누구야?


그가 말했던 분식집들이 있는 정문 근처, 도로에 차와 사람들이 많은 곳, 여기서 어떻게든 그를 따돌려야 하는데 그는 계속 아무 말도 않으면서 내 옆에서 걷는다. 누가 보면 일행인 줄 알겠다. 그런데 위험한 사람 같아 보이진 않아서 나는 호기심이 생긴다. “전 이 쪽으로 가요.” 내가 도로의 오른편을 가리키자 그가 “가자.”라고 말한다. “가자.”라니? 아직 따돌릴 기회는 있다. 조금만 더 가면 다니는 초등학교가 나오고 주변에 혹시라도 아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초등학교 펜스를 따라 걷는 도로변 길, 아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하늘에 낮달만이 조용히 나를 지켜보고 있다. 그는 마치 나를 바래다주는 것처럼, 아무 말도 않고 걷는다. 책은 두껍고 종이가 낡아있었으며 겉엔 뭐라고 씌어있는데 그의 팔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자주 가던 서점이 길가에 있다. <꿈의 해석>을 골랐을 때 어린이가 이런 책에 관심이 있냐며 말 걸던 다정한 사장님이 있던 곳, 책갈피를 끼워 주시며 잘 읽고 내용을 얘기해 달라고 했었지. 내가 그 책에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전체의 10퍼센트도 되지 않았고 오직 구강기, 항문기, 리비도 그리고 거세 불안 같은 것들만 기억에 남아있다. 그리고 꿈은 소망충족적이라고 했던 것 같다. 내가 서점을 쳐다보며 걷는 것을 보고 그가 책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도 않고 걷는다. 그런데 그가 잠깐 들를 곳이 있다며 멈춘다. 거기서 내가 왜 같이 멈추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우리가 멈춰 선 그 횡단보도 바로 건너편, 그가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곳이 내가 평소에 아무 용건도 없이 자주 들러 구경하던 선물가게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곳은 나에게 환상 그 자체를 의미했다. 조금 어둡지만 따뜻한 조명이 켜진 그곳은 오르골과 엽서와 선물거리들 - 편지지와 카드, 작은 보석함, 천장에 매달린 풍경 같은 것들, 온갖 예쁘고 작고 환상을 자극하는 것들로 채워진 공간이었으니까. 나는 한참 둘러보다 가끔 가진 돈으로 겨우 살 수 있는 엽서 몇 개를 사고 나올 뿐이었다.


그는 신호가 바뀌자 걸어갔고 나는 자발적으로 그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가 그곳을 좋아한다면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선물가게의 문을 열고 내가 들어갈 때까지 문을 잡아주었다. 그가 주인과 인사를 한다. 잘 아는 사이인 것처럼. 그가 책을 계산대 앞에 내려놓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내 시야에서 사라진 그를 쫓아가고 싶진 않아 나는 엽서 스탠드 앞에 서서 엽서들만 쳐다보고 있다. 주인도 어디론가 사라져 가게엔 나뿐인 것처럼 느껴진다. 엽서 속 아이들은, 여자와 남자들은 멋있고 행복하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흑백과 빨간색이 주조를 이루는 이미지, 풍선, 리본, 남자 앞의 여자, 분수, 새들.. 집에도 이미 많지만 더 사고 싶다. 그가 나왔다. 가게 주인도 그를 뒤따라 나와 계산대로 간다. 벽에 거는 시계, 그가 고른 물건이다. 선물 포장해 줄까? 주인이 묻는다. 그는 아니라고 말하고 아무 데나 담아달라고 한다. 그가 나에게 엽서를 사줄까 물어본다. 아니에요. 나는 말한다. 그가 하얀 비닐봉지에 담긴 벽걸이 시계를 든 채 문을 열고 그와 나는 함께 나온다. 다시 횡단보도 앞에 선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당연하다는 듯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그와 나는 한참 길을 걷는다.


오른쪽으로 교회의 십자가가 보인다. 이제 집에 반쯤 온 것 같다. 왼쪽을 올려다보니 달이 보인다. 질린 듯이 하얗고 동그란 달은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집으로 가는 마지막 부분은 인적이 드문 길이기에 나는 잠시 고민한다. 시장 쪽으로 갈까. 그런데 발이 평소의 습관대로 자연스럽게 가던 길을 간다. “교회 다니니?” 그가 묻는다. “아니요, 성당 다녀요.” 내가 대답한다. “여기 교회도 있구나, 사람이 많이 살 것 같은 동네는 아닌데 이런데 큰 교회가 있었네.” 그는 교회를 인상 깊은 듯 쳐다보고 우리는 개천이 흐르는 다리를 건넌다.


다리 끝 내가 다니는 피아노 학원은 문이 닫혀 있다. 그 옆 우리 가족이 이용하는 미용실은 불이 켜져 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주머니가 물어볼 것이다. 이 사람은 누구냐고. 어쩌면 내가 미용실로 들어가면 그가 더 이상 따라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용실에 오래 머물 수는 없고 나는 그 아주머니와 친하지도 않다. 도움을 청할 숫기도 없고 무엇보다 내가 다시 나왔는데 그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면 그 모든 노력은 허사다.


벽걸이 시계는 그다지 크지 않아 보였다. 그는 그 시계를 어쩌려는 걸까. 이제 그의 책도 비닐봉지 안에 벽걸이 시계와 함께 담겨있다. 시계와 책, 뭔가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시계의 바늘이 조금 뒤로 돌아가 있다면 더욱, 그의 방에 벽걸이 시계가 걸리고 그는 책을 읽고, 그는 어떤 소녀와 걷는다. 그리고 그는 그 일을 평생 기억할까. 이 사람이 여자였다면, 어떤 언니였다면 나는 마음 편히 수다를 떨며 걸었을까.


저녁이 오고 있었다. 어느새 주위에 어둠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집들이 멀리에 모여 있는, 기다랗고 먼 길, 한쪽엔 대학교 캠퍼스의 담장이 있고 또 한쪽엔 커다란 밭이 있는 그 길의 초입으로 들어가고 있다. 내가 동네를 빙 둘러 오는 동안 달은 이상하게도 내내 나를 따라온다. 그러니까 오늘은 나, 그, 그리고 달 이렇게 셋이 걸은 셈이다. 사람이 없는 그 길을 걷는다. 무슨 일이 생기면 이제 나는 집 쪽을 향해 소리 지를 수 있다. 멀지만 주위가 조용하기에 내 소릴 듣고 집에서 누군가 나올 수 있다. 그렇게 하라고 교육받았다. 드문드문이긴 하지만 마을버스도 지나다니는 길이다. 기다란 담장 위로 키 큰 나무들이 수도사들처럼 고개를 숙인 채 우릴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낮은 허밍.


“나는 가끔 시간이란 것이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해, 그런 생각해 본 적 있니?” 그의 입에서 나온 소리다. 내가 아무 대답이 없자 그가 계속한다. “어떤 사람이 죽었는데, 그 사람은 아직도 내 눈앞에 보이고 만져지는 것 같은 거지. 그럼 나는 그 안에서 행복할 수 있는데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해, 그건 허상이라고. 그 사람은 이미 죽었고 없다고. 그런 시간들은 사라졌다고 말이야.”


허상?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누가 죽었나 보다고 불쌍하게 생각하고 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어떤 노력을 기울인다면 시간을 잠시 돌려세울 수도 있지 않을까.. 타임머신 같은 거 말이야. 그게 기계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건 오히려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장치 같은 거야.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걸 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너무 바라는 게 많아서 만족하지 못해. 꼭 만져야 한다고. 꼭 지금 어떤 시간에 나와 함께 일어나야 한다고 믿는 거지. 하지만 어떻게 알겠어. 우리의 과거가 사실은 우리의 미래에 펼쳐졌던 일이라면, 우리의 과거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일 수도 있다면. 아.. ” 그가 말했다. “우리 뛸까? 뛰어보자.” 그는 한 손으로 내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속도가 너무 빠르고 점점 더 빨라져서 나는 그의 뒤쪽으로 공중에 붕 떠서 달렸다. 사춘기 이전의 지방이 적은 나의 몸은 공기를 헤치는 동시에 그것을 저항하며 떠올랐다. 만화에서 본 축지법이란 게 이런 걸까. 그에 의해 나는 거리를 긴 땀으로 홈질하고 있었다.  땅을 딛고 뛰려고 노력했지만 나의 다리는 중력에 의해 어쩌다 한 발씩 툭 툭 땅을 찰뿐이었다. 그 속도, 붕 뜬 기분, 젊은 남자의 추진력이란 이런 것이구나. 어린 나이였지만 어렴풋이 느꼈다. 그 힘이 어떤 건지. 나를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그는 내가 매달려 힘겹게 날아가고 있다는 사실에는 아무 관심도 없이 달렸다. 그가 원하는 동력의 크기가 어느 만큼일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바람이 시원하게 우릴 갈랐다. 나는 어처구니도 없고 기분이 좋아 웃고 싶은데 그러지 못했다. 그는 떠오르길 원하는 걸까. 더는 못하겠고 이러다 고꾸라질 수도 있겠다 싶을 때 그는 멈췄다. 나는 헥헥거리고 그는 후련한 듯 웃고 있었다. 달이 우리를 쫓아오지 못한 게 분명했다. 우리가 멈춘 곳에선 아무것도 우리에게 말 걸지 않았다. 그저 둘의 존재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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