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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팡피곤 Sep 26. 2023

신이 아닌 너를 믿고 싶은 여름이었다.

나를 숨 쉬게 하는 너의 한 마디

강남역 11번 출구 근처에는 다양한 메시지가 떠 다닌다. 유니세프, 환경보호단체, 종교단체 등의 문구는 행인들에게 봐달라고 손을 흔든다. 평소라면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 텐데 딱 한 구호가 나에게 꽂혔다. 그건 바로 종교단체의 메시지였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신을 믿지 않으면 불지옥에 간다.”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종교가 없었다. 하지만 아주 잠깐 동안 신을 믿고 싶었던 시기가 있었다. 올해 7월은 나에게 불지옥이었다. 날씨부터가 불덩어리였다. 이 불덩어리 속에서 나는 땀에 절여졌다. 실내에 들어갈 때마다 사장님들은 내 모습을 보면 냉방기를 세게 틀어주셨다. 마치 내가 겨울왕국에 나오는 ‘올라프(눈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정말 녹아버릴 것 같은 날씨였다. 하지만 지옥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몸이 아닌 정신도 같이 녹아버릴 것 같은 7월이었다. 


일단 퇴사를 했다. 백수의 루틴으로 돌아간 이 시간은 곤욕스러웠다. 아침에 눈만 뜨고 움직이지 않았다.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지만 의미가 없었다. 할 일은 없지만 정신에는 불이 켜져 나를 힘들게 했다. 6평짜리 작은 오피스텔에는 시선이 머무를 곳이 없었다. 시선을 돌릴 곳이 없으니 혼자 상상을 하게 되고, 상상의 끝은 언제나 좋지 않았다. 


‘하 이제 일어나서 뭐 하지’

‘오늘은 뭐 하지’

‘내일은 뭐 하지’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야 하나?’


끝없는 속삭임은 아주 조금씩 나를 파먹기 시작했다. 마치 딱따구리가 나무를 뚫어 내듯이 조금씩 조금씩. 처음에 부리는 나무의 껍데기에 생채기를 내지만 어느 순간 심장부에 다다른다. 나무가 상처 입어도 저항하지 않듯이 나도 저항하지 않았다. 아니 저항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듯싶다. 상처가 계속 파고들던 중 현실세계 소리가 들렸다. ‘카톡’. 그리고 흐릿한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 잘 지냈어?” 


한 메시지가 나를 아주 잠깐 상상 속에서 끌어올렸다. 저 문자는 “정신 차려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정신을 다 잡고 답장을 보냈다. 

“응 괜찮아 너는 잘 잤어?”


그녀는 내 말에 답했다. 

“응 금방 갈게 기다려. 우리는 곧 같은 시간대에 있을 거야.” 


그녀는 유럽에 있었다. 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덴마크-영국 등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있었다. 우리의 시간대는 항상 달랐지만, 마음만은 일치했다고,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신이 그녀의 말을 들어준 걸까? 정말 이 말이 실현되었다. 7월에, 내가 불지옥에 있을 때, 몸과 정신이 녹아내릴 때, 우리의 시간대는 일치했다. 한편으로는 고마웠지만, 미안했다. 완벽은 아니더라고 불안할 때 너를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불안 가득한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이런 맑은 날 너를 만나서 다행이야.


첫 만남 때는 삐걱거렸다. 한 사람은 불안해서 얼어버렸고, 다른 한 사람은 부끄러워서 벽 뒤에 숨어버렸다. 신이 보기에 우리는 답답한 인간들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우리는 인연이었나 보다. 삐걱거리는 것 마저 닮은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해피엔딩이면 좋겠지만 나는 아직 불안했다.  


한 사람의 시간과 두 사람의 시간은 다르다. 시간을 공유하게 된 순간 신경 쓸게 많아진다. 이제 나 혼자만의 시간이 아니니까. 내가 보는 시선, 느끼는 감정은 함께 나눌 수밖에 없다. 항상 좋은 것만 기쁜 것만 공유할 수 없다. 그렇더라도 지금의 불지옥 같은 감정을 주기는 싫었다. 끙끙 앓던 중 그분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괜찮아. 이제 더 안 좋아질 것도 없을 거야. 나도 노력할게 너도 노력해 줘. 그럼 내일이 더 나아질 거야!”


짧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후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건 아니다. 그냥 아침에 일어나서 할 일을 찾고, 글을 쓰고, 적당히 외출을 하며 지내고 있다. 달라진 건 내가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옆에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정도? 그분은 나에게 특별한 말을 하지 않는다. 


“그래 알겠어, 오늘도 파이팅!”


딱 이 정도의 말이지만 적어도 하루를 숨 쉴 수 있게 하는 한 마디였다.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지금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지, 이 감정을 받아들여도 괜찮은 건지. 만약 다시 불지옥이 찾아온다면 그건 좋은 시절의 기억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지금 나는 행복을 채우면서 슬퍼질 준비를 다시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 순간에도 그분이 곁에서 한 마디 해줄 것 같다. 


“나도 노력할게. 너도 노력해 줘. 그럼 내일이 더 나아질 거야!”


‘신이 아닌 너를 믿고 싶은 7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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