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플라톤의 대화편 중 하나인 <에우튀프론>의 패러디물 중 하나를 패러디한 것입니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과 설정은 픽션이며 현실과 유사해 보인다면 그것은 오해입니다...
등장인물
편삼교: 출판 편집자. 마감을 앞두고 편집장과 티격태격 중.
김소크: 철학과 학사. 논술학원 첨삭강사.
1.
소크: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생겼나요, 삼교 선배? 그처럼 어두운 표정을 하고서 쓸쓸히 걸어가고 계시니 말이에요.
삼교: 아 자네로군. 다름이 아니라 나의 이번 담당 도서 때문일세. 내가 상신한 보도자료를 보고 편집장이 또 나를 불렀다네. 이번 주에는 반드시 오케이를 내야 할 텐데.....
소크: 안타깝군요. 어떤 책이길래요?
삼교: 정치철학적 주제를 다룬 교양 단행본일세. 불행히도 편집장은 내가 보도자료에서 이 책의 개념, 그러니까 ‘콘셉트’를 합당하게 드러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네. 지난 주에도 지지난 주에도 같은 지적을 받았으니 말이야.
소크: 아하, 그 주제라면 제가 도움이 되어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아시겠지만 저는 철학과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했고 논술학원 첨삭 경력이 십 년이 넘으니까요. 콘셉트, 그러니까 ‘개념’이라니 흥미로운 소재인걸요.
삼교: 그거 잘 되었구먼. 알겠네. 자, 그럼 자네가 생각하는 합당한 보도자료가 어떤 것인지 나에게 알려주게.
2.
소크: 보도자료란 바로 책의 특징을 일목요연하게 요약하여서, 읽는 사람이 이 책이 어떤 것인지 잘 파악하도록 돕는 문서이지요. 저자에 대한 소개, 책의 특징, 이 책을 읽으면 좋을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충실히 정리한다면 좋은 보도자료가 되지 않을까요?
삼교: 이보게, 내가 듣고 싶은 대답은 그런 게 아닐세. 자네의 말대로라면 세상에 보도자료로 조인트 까이는 편집자가 어디 있겠는가. 살면서 책을 수백 수천 권을 읽었을 테고 편집을 하면서 원고를 몇 번을 읽었을 텐데, 꼴랑 팔백 매짜리 교양 단행본을 요약하지 못하겠나.
소크: 그건 그렇죠.
삼교: 말하자면, 나는 보도자료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개념을 묻는 게 아닐세. 어떤 보도자료를 써야 책이 잘 팔릴 것인지가 나의 질문이네.
소크: 바로 그렇습니다. 보도자료는 책을 팔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요.
삼교: 그렇네. 정리하자면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어떤 문서가 ‘보도자료로서’ 합당하게 되기 위한 조건, 즉 책이 더 많이 팔리게끔 하는 수단으로서 보도자료의 속성이 무엇인지일세.
소크: 그것을 바라신다면, 기꺼이 말씀드리지요. 자, 들어 보세요. 세상에는 온갖 다양한 종류의 마케팅 전략들이 있고, 어떤 것은 성공하고 또 어떤 것은 실패하죠. 홍보비로 수십억을 쓰는 게임이나 영화도 쪽박을 차는 경우가 있잖아요? 즉 보도자료와 판매를 인과 관계로 접근해서는 안 될 거예요.
삼교: 계속 말해 보게나.
소크: 그런데 관점을 바꿔 보면,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기업’은 존재하지요. 즉 우리는 개별 도서 단위에서 사고하기보다, 하나의 사업체로서 ‘출판사’ 단위의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합당할 거예요. 어떤 한 권의 책이 기획 단계에서 만 부, 이만 부를 팔 거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올바른 사업 방향을 수립하고 시행 횟수를 늘린 회사의 전체 도서목록은 흑자를 내니까요. 비슷한 분야의 출판사 중에서도 잘 나가는 곳과 망하는 곳이 있잖아요?
삼교: 훌륭하네 소크. 바로 내가 원했던 대답이 그러한 바의 것일세. 그러나 그것이 내가 만족할 만한 대답인지는 좀 더 따져 보아야 하겠네. 출판사라는 법인의 행위와 편집자라는 개인의 행위가 다르기 때문일세.
소크: 그게 무슨 뜻이죠?
3.
삼교: 편집자가 자신이 편집하는 책을 그보다 상위의 개념에 귀속되는 것으로서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네. 자네의 말처럼 자신의 담당 도서를 출판사의 도서목록 중 하나로 사고하려면 그 출판사에 명확한 비전과 그 비전에 합당하게 수반되는 업무 체계가 있어야 하네. 가령 EBS 수능특강 교재를 내는 출판사라면 이런 것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네. 하지만 많은 출판사들은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일세.
소크: 올바른 경영자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오너가 운영하는 회사라면 그럴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건 출판사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
삼교: 그렇지. 이것은 출판의 경우, 그리고 오직 그 경우에만 적용되는 논의는 아닐세. 하지만 출판업의 특징 중 하나인 ‘다품종 소량 생산’을 생각해보게. 편집자는 일 년에 적어도 세 종, 많으면 스무 종에 달하는 개별 사업 아이템을 개발하고 제작하여 판매하는 직종이네. 출판사 단위로 보면 이 수는 훨씬 많아질 테고 말이야. 그 와중에 사업체든 개인이든 명제로 정리될 수 있는 비전을 가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네. 또 기획, 편집, 마케팅을 모두 관리해야 하는 편집자가 이를 총체적으로 사고하기도 어렵네. 보통의 회사에서 ‘보도자료’는 일반적으로 마케팅 혹은 홍보 담당자가 작성하는 것임을 상기해보게.
소크: 편집자의 전문성이 합당하게 발현되기가 구조적으로 어렵다는 말씀이신가요?
삼교: 그렇네. EBS 교재 출판처럼 목적이 명확하고, 작업을 수행하는 방식이 잘 정리되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판사는 많지 않으니까 말이야.
소크: 으음. 삼교 선배.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요, 그렇다면 지금 논의를 출판업 전체의 문제로 생각하기는 어려운 것 아닌가요?
삼교: 올바른 지적일세. 출판을 하나의 개념으로 묶어 사고하다보면 여러 오류가 발생하기 마련이지. 작금의 논의가 내가 처한 상황, 즉 대략 넓은 의미의 단행본 출판의 경우에 한정됨을 이제라도 명시할 필요가 있겠네.
소크: 그보다 더 범위를 좁힌 정의는 어려울까요? 단행본에도 종류가 많잖아요.
삼교: 그것도 가능하지만 일단은 이렇게만 두도록 하세. 지금 자네는 출판 일반의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 고민을 들어주고 있는 중이지 않는가. 나는 논의의 범위를, 비록 엄밀하지 않더라도, 편집자로서의 내 생애에 기술적으로 가능하며, 또한 내 의식이 지향하는 바까지는 넓혀 한정하고 싶네.
소크: 선배가 이직할 만한 회사들의 집합을 말씀하시는 거로군요.
삼교: 바로 그러하네. 이 전제에서 계속 이야기를 해보겠네. 출판사의 규모를 생각해보게나. 10인 미만 출판사가 대부분인 것은 알고 있겠지? 이런 소규모 조직에서 경영자의 자질은 더 크게 작용하네.
소크: 법인에 고용된 것이 아니라, 사장님에게 고용된 형태에 가깝다는 말로 들리는군요.
삼교: 그러하네. 또한 그밖에도 수많은 문제들이 출판에 있네. 경험하지 못하면 파악할 수 없을 만큼 개별적인 문제들을 포함하여 말일세.
소크: 넓은 의미에서, 실천의 차원에서 레퍼런스를 발견하기 어렵단 말씀이시군요.
삼교: 바로 그러하네.
소크: 출판에 대한 전칭 명제를 작성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것이 많은 경우 선배와 같은 개별 편집자의 문제와 연결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요.
삼교: 그렇게도 볼 수 있겠네. 듣고 보니 내 고민의 핵심이 그것인 것 같구만.
소크: 그건 또 무슨 말인가요?
4.
삼교: 나는 근본적으로, 편집자의 판단이 얼마만큼 신뢰받을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드네. 가령 내가 어떤 문장 하나를 고쳤다고 가정해보세. 고친 문장이 ‘더 낫다’는 것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
소크: 글쎄요... 하지만 그건 너무 회의적인 시각 아닐까요? 편집자는 평균보다 독서량이 많고, 무엇보다 그 원고를 저자 다음으로 많이 읽은 사람이잖아요. 고친 문장이 존재 가능한 문장 중 가장 나은 것은 아닐지라도, 그 문장에 대해 집필 다음으로 가장 많은 노동력이 투입된 결과임은 자명하니까요.
삼교: 자네 말도 맞네. 내가 삼 주째 보도자료가 까인 터라 좀 예민한 것일지도 모르네. 하지만 나는 그런 방식의 언술이, 편집에 면책을 부여하는 자기위안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 산업의 구조상 개별 도서에 대한 절대적인 노동시간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물론 가능하네. 그러나 단순히 시간을 투여한다고 더 나은 책이 된다는 보장이 있을까? 내가 문장 한 개를 열흘 동안 고민해서 고쳤다고 해서, 그것이 수정된 문장이 더 나음을 보장하지 않는데 말이야. 생산력이 증가한다고 다 공산주의 오는 것 아니지 않는가.
소크: 선배 그런 개그는 이제 박물관에서도 못 찾아요...
삼교: 그런가. 그럼 이렇게 바꿔 보지. 얼마전에 인터넷에서 읽은 건데 말일세. 양치 수십 년 한다고 다 이 잘 닦는 것 아니라는군.
소크: 어음... 계속 말씀해보세요.
삼교: 삶이나 사업은 수학이 아니므로 여기에 논리적 차원의 타당성을 요구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은 물론 알고 있네.
소크: 그건 그렇죠. 뿐만 아니라 앞선 논의에 따르면 출판에는 정량화된 평가 체계도 존재하기 어렵겠는데요.
삼교: 바로 그러하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실천적인 차원에서, 편집자 개인의 주관 이상의, 일반적인 신뢰를 부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를 찾고 싶은 마음인 것일세. 즉 가령, 보도자료를 컨펌받는 과정에서, 편집장과 나 사이에, 이견이 있을 수가 없는, 보도자료가 반드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속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비록 그것이 판매와 인과관계로서 연결되지 않더라도, 실무에 도움이 되는 지식을 얻고 싶은 것일세. 또한 기획, 교정교열, 저자관리, 제작, 마케팅 등 다른 모든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말일세.
소크: 데카르트처럼요? 선배, 그건 너무 낡은 방법 아닐까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말이에요.
삼교: 논술학원 일타강사인 자네가 그런 말을 하니 신뢰가 가기도 하고 안 가기도 하는구먼.
소크: 어음... 그래도 조금 더 구체적인 논의를 해보면 어떨까요? 실제 선배의 업무와 생활을 더 나아지게 할 수 있는 그런 방법 말이에요.
삼교: 내가 오래전 선배에게 들었던 말이 하나 있는데, 들어보겠나?
소크: 말씀해 보세요.
삼교: 그걸 알면 내가 했지, 지금 이러고 있겠는가?
소크: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