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클라우드 Feb 05. 2020

마음에도 진통제가 있었으면

이별 후의 고통에 대한 보고서

모든 관계의 끝은 고통을 수반한다.


 

   한 달을 만났던, 몇 년을 만났던, 연애였던, 썸이였던 내가 마음을 쏟았던 관계는 끝난 후에 어떻게든 후유증을 남긴다. 가장 크게 느껴지는 후유증은 마음 한 켠이 갑자기 비어버렸다는 느낌이 주는 공허함이다. 그리고 그에 이어지는 사무치는 외로움이 뒤따른다. 외롭다는 감정은 신기하다. 이건 그냥 정신의 한 상태일 뿐일텐데, 심장이 쥐어짜이는 듯한 고통이라는 물리적 형식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정의 상태는 보편적으로 누구나 느끼지만, 그것이 느껴지는 상황은 또 특수하기에 자주 느끼긴 어렵다.


이별에도 경험치가 쌓이는 영역은 있다.

   

   나는 최근에 운이 좋게도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 특수한 상황을 겪게 되어서 지금 보편적 감정의 상태를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이전에도 여러 번 이러한 감정을 겪었지만, 익숙해 질 것 같으면서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이별의 고통의 특징인 것 같다. 물론 여러번 겪다보면 여기에 대응하는 방식은 발전하기 시작한다.


  처음 이별을 겪었을 때에는, 너무 힘들어서 메달리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연락해서 메달리고 또 메달린다.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을 모두 상대방과 나누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이렇게 힘든데, 너는 괜찮느냐, 나 너무 힘들다. 어떻게든 안되겠나. 내가 잘 할게, 내가 바뀔게. 현재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마음이 되어서 그걸 어떻게든 표현하고 상황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그 노력은 성과를 거둘 때도, 그렇지 못할 때도 있지만.


  그리고 몇 번 겪다보면 결국에는 시간이 약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도 어떻게든 발생한 빈 자리는 해결해야 하기에 이것 저것 하기 시작한다. 어릴때는 친구와 술을 마시곤 했다. 어쩔 때는 욕을 하고, 어쩔 때는 칭찬을 하고 왔다갔다 하는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이 상황을 우스워하는 친구와 함께 고주망태가 되다보면 어느샌가 잊혀지는 경험도 있었고, 새로운 모임에 나가서 사람들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그 상황을 견딘 적도 있었다. 어찌되었든 결국에는, 다시 한 번 시간이 약이며, 자기만의 그 고통을 견디는 방법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이별에도 경험치는 쌓이는 법이다.


하지만 아픈건 아픈거다.  


   이별을 경험하며 가장 빨리 늘고 훌륭해지는 것은 이성적으로 관계를 정리하는 법이다. 나는 이런 면에서 이런 이런 점에서 이 사람과 맞지 않았고, 나의 생활에 이러한 불편함이 있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관계의 종결은 합리적으로 좋은 일일 수 있다. 머리 속으로 사람과 관계를 냉철하게 판단하고 분석하는 능력은 사람을 만날 수록 늘어만 간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잠시간은 고통을 완화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혹은 적어도 나에게는 감정이 사고를 앞서는 것 같다. 그래서 아무리 합리적인 관계의 종결이라 할 지라도 아픈 건 아픈거다.


마음의 고통에 대한 조사 

   

 과거에 전 사람을 붙잡으려다 그 사람이 새로운 연인이 생겼다는 소리를 듣게 된 적이 있었다. 정말로 괴로운 기억이었다. 그리고 너무 괴로워서, 마음의 상태를 글로 옮겨 적었다. 그때,  옮겨적은 글은 다음과 같다.


"전 여자친구가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소리를 들으면 일단 충격적이다.

(이별이 얼마 안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아직 미련을 모두 못버리고 있었다면 더욱)


내가 그 사람과 보냈던 온갖 시간들이 떠오르고 이제 내가 아닌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생각에 우울해진다.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진다. 그 사람과 날 비교해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궁금해진다. 너무 빨리 날 정리하고 가버린 전 애인에 대한 원망스러운 마음도 조금 든다. 신체적으로는 놀라서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왠지 모를 다시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산산히 무너지며 생기는 실망감도 약간 느낀다. 그리고 급격히 우울해진다."


  내가 찾은 마음의 고통을 해소하는 방법 중 하나는 마음의 상태를 그대로 글로 옮겨 적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고통을 완전히 없애주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어느정도는 약화시키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도 이런 운 좋은 일을 겪지 못했다면, 결코 이런 글을 쓰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글이 고통을 완화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이유는 아마도 현재의 감정을 객관화 시켜주기 때문인 것 같다. 이번에 고통을 겪으면서 나는 한 번 새로운 시도를 해 보기로 했다. 내가 얼마 간격으로 어느 정도의 고통을 느끼며, 이것이 얼마나 지속되는지 기록해 보기로 한 것이다. 데이터화는 글쓰기보다 더욱 객관적인 작업이니, 더 좋은 효율을 낼 것이라 기대하면서.


D+1


D+2
D+3

  정리해 놓고 보니, 고통이 약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고통을 느끼는 패턴을 알 수 있었다. 보통 오전에 더 슬펐으며 퇴근 후에 그 강도가 약해지는 양상을 보였다.


   그리고 이 패턴이 그 사람을 생각하던 강도의 패턴과 닮아있음을 깨달았다. 결국엔, 내가 한 생각의 강도가 현재의 고통을 낳는 것이다. 나는 지금 내 생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 책임이다. 내가 생각한 몫에 대한 책임.


   결국 궁극적으로는 시간이 약이라고 자꾸 자신에게 되뇌인다. 결국은 시간이 지나면 이 고통이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아프다.


그래서 지금도 간헐적으로 다가오는 고통을 맞이할 때마다 이런 생각을 계속 하게 된다.


마음에도 진통제가 있으면 좋을텐데.



———————————-

참 신기하다. 고작 일주일에 한 두번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고, 하루에 한 두시간 간격으로 몇마디 문자를 나누는 것이 내 삶에서 사라졌을 뿐인데, 그 고작이 내 하루에 이렇게 큰 공백감을 남긴다는 것이.




 



작가의 이전글 읽은 사람을 위한 리뷰 : 허삼관 매혈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