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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 Mar 13. 2018

떠나보낸 겨울, 다시 올 겨울.

'겨울 문학 여행' 전시회 in 국립한글박물관 




"올 겨울은 너무 긴 것 같아!" 요 몇 달 사이 지인들과 툭하면 주고 받았던 말입니다. 시시때때로 내리는 눈, 한파주의보, 짧은 낮과 길고 긴 밤... 활동하기 불편한 나날이었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계절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독서 삼매경에 빠져 긴긴 겨울밤을 지새우는 즐거움! 이번 달 '문화가 있는 날'에는 전 세계의 겨울 문학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시회를 다녀왔습니다.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특별전 '겨울 문학 여행'입니다.


                                      

국립한글박물관의 이번 특별 전시회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기념하는 취지에서 기획되었습니다. 1924년 프랑스 샤모니 대회를 시작으로 2022년 중국 베이징 대회에 이르는 역대 동계올림픽 개최국, 예정국의 대표적인 겨울 문학 454점을 소개합니다. 1부 '겨울 길을 떠나다'에서는 10개 언어권 13개국의 대표적인 겨울 시와 소설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각 나라의 문학 작품 속 '겨울'의 의미를 살펴보는 자리입니다. 2부 '겨울의 만남'에서는 세계 명작 동화와 한국의 아동 문학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눈과 설원을 배경으로 하는 순수한 동심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PART 1 _ 겨울 길을 떠나다


"프랑스"


프랑스의 겨울은 비가 자주 오고 바람이 강하게 붑니다. 습기, 빛, 냄새를 통해 느끼는 겨울의 날씨는 프랑스 문학의 시적 토대가 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있습니다. '오랜 어느 겨울날...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과거로의 생생한 회상이 열쇠가 되어 삶과 인간의 본성을 성찰하는 작품입니다. 



"이탈리아"


이탈리아를 생각하면 남부의 태양과 올리브 가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하지만 따뜻한 남부와 달리 알프스 산맥에 접한 북부 이탈리아는 눈이 많이 내립니다. 이곳 출신 작가들은 인간의 삶을 눈의 속성에 비유한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신곡(단테 알리기에리) : 그렇다면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속에서 눈이라는 실체가 그 본래의 흰색과 차가움을 포기하듯이, 그대의 지성도 깨끗하게 포기되겠지요. 나는 이제 아주 반짝거려서 그대 눈에는 별처럼 초롱초롱할 진실을 보여주겠어요.'



"북유럽"



노르웨이를 비롯한 북유럽은 한겨울 오후가 되면 벌써 어둠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북유럽에는 스산하면서 신비로운 겨울을 배경으로 하는 추리 문학이 발달했습니다. 대표작으로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의 '스노우맨', 덴마크 작가 페터 회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스웨덴 작가 카밀라 레크베리의 '얼음공주' 등이 있습니다. 눈 내리는 겨울밤에 읽으면 더욱 몰입해서 읽게 되는 명작들입니다. 국내에서는 요 몇 년 사이에 북유럽 스릴러 문학을 좋아하는 마니아층이 형성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러시아"



러시아의 겨울은 어느 나라보다도 혹독한 추위를 자랑합니다. 기나긴 겨울밤 러시아 사람들은 신비로운 환상의 세계를 상상하는데요. 러시아 문학 속의 겨울은 빛의 축제이자 순수함의 표상입니다. 표도르 류체프가 쓴 시 '마법사의 겨울'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등장합니다. '마법사 겨울의 주문에 빠져 숲이 멈춰 있네. 움직이지 않고 말 없는 눈의 장식 아래서 찬란한 생명처럼 숲은 빛나네 숲은 주문에 빠져 멈춰 있네...'



"일본"



일본의 북부 지방에는 큰 눈이 많이 내립니다. 일본 문학과 예술에서는 '눈 쌓인 겨울 풍경'을 소재로 삼는 고전적인 전통이 이어져내려 옵니다. 겨울 풍경의 운치를 노래하는 하이쿠는 읽는 사람의 마음을 젖어들게 합니다. 눈이 녹아 사라지는 찰나의 순간을 절제된 섬세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작품도 많습니다. 일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작품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은 눈이 내리는 지방의 정경을 묘사하는 서정적인 문체로 유명합니다. 



"한국"



한국 문학에서 겨울은 '고난', '시련', '인내', '새로운 희망'의 상징으로 나타납니다. 추운 겨울을 견딜 수 있는 것은 결국 봄이 온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푹푹 나리는 눈을 바라보며 연정을 노래하는 시도 있습니다. 백석 시인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오늘날 문학 애호가들에게 널리 애송되는 명시로 자리 잡았습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중국"



중국은 예로부터 동양의 지혜를 담은 유가와 도가 사상이 발달했고, 이를 계승하는 전통을 이어왔습니다. 중국 고전 문학에서는 자신이 바라는 이상향의 경지나 감정을 겨울 풍경에 빗대어 나타냈습니다. '눈 내리는 강(유종원, 773-819) _ 뭇 산엔 새조차 날지 않고 / 모든 길엔 사람 자취 다 사라졌다. / 외로운 배, 도롱이 걸치고 삿갓 쓴 노인 /  눈 내리는 추운 강에서 홀로 낚시질. '




PART 2 _ 겨울의 만남


세계 각국의 명작 동화들이 한곳에 !
이수지 작가의 그림 동화 '선'


매서운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아이들은 신이 납니다. 아이들을 위한 겨울 문학은 눈처럼 순수하고 얼음처럼 맑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은 흰 눈 위에 찍힌 또렷한 발자국처럼 밝은 미래를 향합니다. 전시 2부에서는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겨울 동화와 한국의 겨울 아동 문학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독일의 그림 형제, 덴마크의 안데르센, 이탈리아의 콜로디 등이 쓴 세계 명작 동화부터 윤동주 시인의 겨울 동시 '개'와 '눈', 강소천의 겨울 동요 '꼬마 눈사람'에 이르기까지 즐겁고 신나는 겨울을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미디어 체험 공간


국립한글박물관의 '겨울 문학 여행' 전시회는 '하나 된 열정(passion connected)’이라는 올림픽 취지를 살리기 위해 전 세계의 겨울 문학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도록 기획되었습니다. 각 나라 언어로 된 작품들과 한국어 번역본을 함께 비치하여 비교하면서 읽어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전시 공간 또한 문학 작품의 분위기에 어울리게 디자인되었는데요. 서유럽 코너는 알프스 산맥이, 북유럽 코너에서 오로라 등이 표현되었고, 동유럽 코너는 환상 문학작품이 많은 점을 고려해 차가운 얼음왕국처럼 만들어져 눈길을 끌었습니다.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공감각적인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찬찬히 감상해야하는 전시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에게 있어 겨울은 무엇입니까?'  각 나라의 겨울 문학이 선사하는 감동이 다르듯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겨울의 심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만치 앞에서 걸어오고 있는 봄을 느끼면서, 길고도 짧았던 지난 겨울을 회상할 수 있었습니다. 밤이 오는 것처럼, 긴 잠에 빠지는 것처럼, 꿈꾸는 겨울은 또다시 찾아올 것입니다.
'겨울 문학 여행' 전시회는 3월 18일까지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선보입니다. 관람료는 무료입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연중무휴이며 이용 시간은 평일 오후 6시까지, 토요일 9시까지입니다. 매월 '문화가 있는 날'에는 9시까지 연장되어 좀 더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습니다. 문화가 있어서 즐거운 일상, 세계 각국이 자랑하는 겨울 문학의 진수를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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