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혜 Mar 20. 2018

[Preview] 집시와 여행자

하림과 집시앤피쉬오케스트라 '집시의 테이블'




“한 개비 장작처럼, 성령의 숨결처럼 단순했던 내 어린 집시 여자.” 보후밀 흐라발의 장편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에는 사랑스러운 집시 여자들이 등장한다. 폐지를 주워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여자들, 무시무시한 생기를 자랑하는 여자들, 언제 어디서나 웃고 떠들고 노래하는 여자들... 소설 속 주인공 한탸는 그들의 가식 없는 자유로움을 사랑한다. 한탸의 젊은 시절을 수놓은 첫사랑 역시 집시 여자였다.

       

집시들은 특정한 삶의 가치와 방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들은 길 위에서 태어나 길 위에서 생을 마감하는 존재이다. 정착하지 않고 늘 이동하는 삶이 약속하는 것은 무엇일까. 가난하면서도 부요한 마음일 것이다. 크게 욕망하지도, 크게 기대하지도 않는 초연한 자세일 것이다. 집시와 구도자. 혹은, 집시와 허무주의! 이쯤 되면 연단을 꾸며놓고 집시를 초빙해 인생지론을 설파해달라고 부탁할 만하다. 하지만 진짜 집시라면 말을 하는 대신 빙그레 웃고 말거나, 즉흥에서 우러나오는 노래 한 곡조를 뽑아낼 것 같다. 그들은 연사보다는 천진한 딴따라가 어울린다. 어떤 면에서 그들은 예술을 하는 사람에 가깝다.     



언젠가 집시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집시들이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추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진짜 집시를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 짐을 꾸려 스페인이나 프라하로 당장 떠날 수 없는 현실이다. 집을 나서는 것 자체가 커다란 모험인데 해외로의 여행이라니 당치도 않다. 다행이도 집시들의 음악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국내 공연 소식이 들려왔다. 음악 하는 사람 ‘하림’과 ‘집시앤피쉬 오케스트라’의 만남이다. 이른바 ‘집시의 테이블’은 여러 뮤지션들의 음악적 소통이 테이블에 둘러앉은 집시들처럼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공연이다. 그들은 다양한 민속악기로 각 나라의 전통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며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의무를 버리고 의미를 찾아 떠나는 집시들의 음악여행.” 멋진 카피 문구다! 의미가 있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있는 알찬 공연이 예상된다. 음악으로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성공할 확률이 높다. 심각할 필요 없이, 가볍게 즐기려는 마음만 준비하면 된다. ‘집시의 테이블’ 공연의 초점은 월드 뮤직을 한자리에서 만끽하는 즐거움에 맞춰져 있다. 공연에 임하는 아티스트들이 거리의 집시를 표방한다면 관객들은 잠시 걸음을 멈춘 여행자들이다. 집시와 여행자. 둘은 어쩌면 같은 말인지도 모른다. 삶은 곧 여행이라는 말은  진부하게 들리지만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지나가고, 또 지나가고 있다. 사람과의 만남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다양한 만남이 없다면 얼마나 심심하고 허무할까. 이번 공연이 집시 음악과 그 뜨겁고 자유로운 감성을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떠나보낸 겨울, 다시 올 겨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