겜알못의 고전 게임 까페 방문기
'레트로 게임? 고전 게임을 말하는 건가?' 서초동에 이색 까페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알고 보니 레트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까페란다. 지역 주민들과 소수의 마니아들이 찾던 곳이 요 근래 방송을 타면서 유명해졌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재미있고 스릴 넘치는 고사양 게임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90년대 고전 게임이라니? 무엇보다도 나같은 '겜알못'이 가도 즐거운 곳일지 궁금했다.
이름하야 Retro Cafe Trader. 남부터미널역 3분 출구에서 도보로 5분 걸리는 곳에 위치해있다. 여담이지만 딱 5분 걸었을 뿐인데 한증막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인 것처럼 땀에 절었다. 아무리 무더워도 광복절 즈음이면 한풀 꺾여서 선선해지기 마련인데 올여름은 제대로 미친 것 같다. 게임이고 뭐고 일단은 까페 안이 에어컨 빵빵 시원하기를 기대해본다.
까페 안에 손님들이 넘쳐난다. 광복절 휴일이라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10평 규모 남짓의 작은 동네 까페의 모습이지만 한눈에 보아도 특별함을 감지할 수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많은 게임팩팩팩들이 유리 선반 안에, 거대한 책장 속에 빼곡히 진열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 같은 겜알못은 압도되는 기분을 느낀다. 과연 상당히 덕후스러운 분위기다.
닌텐도! 슈퍼마리오! 그 많은 게임팩들 중에 아는 것이라곤 슈퍼 마리오뿐이라는 사실이 조금은 씁쓸하다. 나는 어렸을 때 대체 뭘 하면서 놀았던 걸까. 남동생이 게임을 좋아해서 어깨너머로 구경했던 기억은 남아있다. 미니 게임팩으로 놀던 귀여운 동생은 PC가 막 보급되던 시절에 사춘기를 맞았다. 그는... 당연히 누나 따윈 쿨하게 잊고 PC와 한 몸이 되어 낮이고 밤이고 게임을 했다. 그야말로 말이 안 통하는 어둠의 자식이 된 것이다. 그 뒤로 나는 게임을 은근히 싫어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당일 까페 트레이더의 사장님은 보지 못했다. 인터뷰 기사를 뒤져보았는데, 사장님이 본래 레트로 게임을 무척 좋아하고 아끼는 '겜덕후'란다. 그동안 모은 수많은 게임을 둘 곳이 없어서 까페를 열게 되었다고. 현재 까페에 진열된 양만큼의 게임이 창고에 있다는 정보를 접하니 그저 겸허해진다. 덕후의 놀라운 집념과 끈기, 식지 않는 열정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덕질이 이윤을 창출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아 세상을 이롭게 한다면 어찌 아니 좋을쏘냐. (내 기사 사랑한다면 덕후처럼 (https://brunch.co.kr/@klove1130/107)을 깨알 홍보하겠다.) 까페 트레이더는 현재 썸머 이벤트 중이다. 게임 내용물을 고를 수 없다는 점은 어쩐지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럼 게임 삼매경에 빠진 손님들을 관찰해볼까? 휴일을 맞아 모처럼 까페 데이트를 나선 커플로 추정되는 남자 한 분, 여자 한 분이 뷰.릭.스.캐.비.닛을 열심히 두들기고 있었다. 한번 앉으면 30분이 후딱 지나간다는 까페의 대표 게임 머신! 워낙 하고 싶어 하는 손님이 많으므로 30분만 이용해 달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커플이 게임을 즐기고 떠나간 뒤로 또 다른 커플이, 또 다른 커플이 자리를 차지 앉고 앉아 꺄륵꺄륵 뿅뿅뿅 게임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까페가 커플들에게 인기 있는 이색 데이트 장소로 자리매김한 데에는 저 뷰릭스가 일등공신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레트로 카페 트레이더는 본래 고전 게임 팬들의 아지트로 아는 사람들만 아는 장소였다고 한다. 하지만 2016년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배우 이시언과 가수 은지원의 내기로 이슈가 되어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다. 고전 게임에 대한 추억을 갖고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나처럼 잘 모르는 사람들조차 호기심에 방문하는 핫플레이스가 된 것. 덕분에 날을 잘못 잡으면 게임기 앞에 한번 못 앉아보고 커피만 홀짝거릴 수도 있다. 이것이 TV 전파를 타는 가게의 명암인 걸까. 기존의 단골 손님든은 이전과 달라진 분위기가 불편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 아무 게임이라도 해야 할 텐데 좀처럼 자리가 비지 않는다. 하지만 겜알못이라 딱히 불만은 없다. 탁자 다리 하나가 자꾸만 기우뚱하는 것이 오히려 신경 쓰인다. 커피를 마시는 척 게임하는 손님들을 구경했다. 남자 손님들은 딱 보면 서른을 넘은 분들이 대다수이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안다고, 고전 게임도 소싯적에 홀린 듯이 해본 사람들이 그 매력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다. 서른이 훌쩍 넘어 어린 시절에 만났던 게임 속의 캐릭터와 조우하는 기분은 과연 어떤 것일까.
30분쯤 흘러서 자리 하나가 나길래 냉큼 앉았다. "안녕? 나는 제. 믹. 스. 네. 오.라고 해^^" 물론 이따위로 내게 인사말을 건네진 않았지만 뭔가 상당히 귀엽고 새침한 아우라를 풍긴다. 특히 저 조이스틱을 손에 쥐었을 때의 뿌듯함이란! (마치 젖병을 쥔 것 같다고나 할까) 재믹스(Zemmix)는 대우전자에서 MSX를 기반으로 만든 가정용 게임기다. MSX는 게임 롬팩을 꽂으면 일반적으로 조이스틱 이외에 다른 입출력 장치가 필요 없는 것에 착안해서, 입력 장치 등을 간소화해 게임기 형태로 만든 것. 대표 게임은 요술 나무, 서커스, 쿵후, 갤러그, 구니스 등이다.
투박하고 거친 도트 그래픽에, 단조로운 8비트 16비트 게임음이지만 플레이할수록 묘한 매력이 느껴진다. '세상아 잠시 나를 잊어다오' 망각과 초월의 세계로 진입한 느낌이랄까. 화려한 그래픽으로 떡칠한 요즘 게임에 비하면 눈의 피로도 덜 한 편이다. 무엇보다, 귀엽고 씩씩하다. 고전 게임 속의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짜리 몽땅 하고 대충 그려진 듯 엉성하다. 그런데 맞고 터지고 쓰러져도 다시 살아나서 길을 떠난다. 게임 속 캐릭터의 인생에는 포기란 단어가 없다.
까페에는 슈퍼패미컴(sfc), 닌텐도 64, 메가드라이브, 네오지오 메가드라이브, PC 엔진 등 다양한 기기가 마련되어 있다. 소닉 시리즈, 시노비 시리즈, 베어너클, 도태랑 시리즈, 유토피아, 왈큐레의 전설, 천외마경 등등 수많은 고전 게임을 취향껏 골라서 즐길 수 있다. 필자는 똥손이기에 그 많은 게임들을 기꺼이 플레이하는 영광을 누리지 못했다. 물론 자리가 나지 않기도 했지만 마음만 있다면 기다림쯤은 아무것도 아닐 것. 조금이라도 쾌적한 시간대에 게임을 즐기고 싶은 분들은 공휴일이나 주말보다는 평일에 까페를 방문하시길 권한다.
레트로 까페 트레이더에는 고전 게임을 하며 여유로운 한때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성지(聖地)로, 누군가에게는 이색 데이트 장소로 , 누군가에게는 편안한 동네 까페로 인식되며 사랑받는 레트로 까페 트레이더. 시작은 한 사람이 간직하고 있던 어린 시절의 동경에서 비롯되었다. “그때는 진짜 가지고 싶어도 살 수 없던 게임들이 많았죠. 당시 게임 잡지에 보면 하고 싶은 게임들이 막 나오는 데 구할 수도 없으니 동경의 대상이었죠. 그런데 제가 성인이 되고 그것들을 직접 살 수 있는 상황이 되니까 그때의 동경으로 하나둘씩 모으게 됐죠. (까페 트레이더 사장 한대윤님)” 고전 게임을 접한 경험이 없는 어린 세대들은 까페에 와서 어떤 생각을 할까. “어린 친구들 입장에서는 신기해하더라고요. ‘마리오가 처음에는 이랬구나’ 이런 반응이죠. 지금은 오락실도 없고 레트로 게임을 접할 곳도 없으니까 직접 레트로 게임을 체험할 수 있어서 많이 찾는 것 같아요" (민중의 소리_까페 사장님 인터뷰 기사 중 발췌)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옛 감성을 단지 과거의 것으로 치부한다면 그것은 죽어버려 빠르게 잊힐 것이다. 옛 것을 통해 누릴 수 있는 많은 가능성조차 함께 사라진다. 미래란 지나간 것들이 축적되는 과정의 다름이 아니다. 고전 게임을 가꾸어나가는 레트로 까페 트레이더에서 오히려 미래의 단면을 보았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이 될까. 더 진화된 게임들을 보고 접하는 세대가 굳이 고전 게임 까페를 찾는 이유를 생각해본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재방문 의사가 드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