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 프로젝트 : 몰입하다' 전시회 in 북서울 미술관
덕후, 덕질, 덕밍 아웃… 이 단어들을 떠올릴 때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친숙하거나 혹은 불편하거나, 혹은 두 가지 상반된 생각이 함께 떠오를 수도 있는데요, 덕후 문화를 바라보는 사회 전반의 시각 역시 복잡한 것 같습니다. 고정관념이 여전히 존재하는가 하면 덕후 문화의 자기주도적인 면모를 높이 사는 긍정적인 인식도 점차 확산되고 있으니까요.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덕후’를 주제로 동시대 문화의 흐름을 들여다보게 하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서울시립 북서울 미술관을 찾았습니다.
'덕후'는 '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일본어 '오타쿠'를 누리꾼 사이에서 이와 유사한 발음인 '오덕후'로 바꾸어 부르며 생겨난 줄임말입니다. 일반적으로 '덕후'하면 며칠씩 먹지도 씻지도 않고 방구석에 처박혀 자기 세계에 몰두하는 사람이 떠오르기 마련인데요. '덕후 프로젝트: 몰입하다' 전시회는 좋아하는 분야에 몰입하며 가지게 되는 자세와 행동양식의 의미를 조명함으로써 사회문화적 현상을 살펴보는데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덕후’와 ‘덕질’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전시회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습니다.
전시회는 두 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열리고 있습니다. 첫 번째 섹션에서는 덕후의 기질이나 자세, 행동 양식을 전제로 한 미술 작품들을 만나보았습니다. 도입부에서 특히 눈길을 끌었던 작품은 박미나 작가의 <핸드폰 액세서리> 작품이었는데요, 박미나 작가와 김성재 작가는 덕후의 가장 기본 소질인 ‘수집’에 초점을 맞춘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김성재 작가가 수집한 피규어들은 캐릭터 디자인의 스케치부터 입체화까지 작품 구상에 영감을 주며 창작 활동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핸드폰 액세서리를 통해 당시의 유행과 핸드폰이 바꾸어 놓은 생활상을 알 수 있습니다.
김성재 작가는 "수집 활동은 취미이자 창작의 시작이며, 피규어는 자신의 작업 전 과정에서 작품의 완성도를 가늠하게 하는 기준이자 창작을 이어나가도록 자극을 주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첫 번째 섹션의 전시는 11명의 작가의 신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김이박 작가와 진기종 작가는 예술적 태도와 긴밀히 연결되는 '취미 생활'을, 신찬용, 이권, 이현진, 장지우 작가는 영화나 만화 같은 관심 있는 '특정 장르'에서 소재를 따온 작업을 선보였습니다. 이 중에서 신창용 작가의 그림(덕화)과 장지우 작가의 비디오 작품(지우맨 : Be the hero 프로젝트)이 특히 눈길을 끌었는데요, 신창용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킬빌’과 코엔 형제의 ‘파고’의 특정 장면을 자신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회화작품을 선보였습니다.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감독들의 영화 속 장면을 작품으로 표현하며 덕심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비교적 널리 알려진 영화 ‘킬빌’을 재해석한 작품은 특히 현장의 관람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오른쪽부터 <Kill bill 1>, <Kill bill2>, <fargo>. 신창용 작가는 “타란티노 덕질에 빠진 덕후가 그린 그림”이라며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덕화(畵)’라 부릅니다.
장지우 작가의 싱글 채널 비디오 작품 또한 놓칠 수 없는 관람 포인트입니다. 일본에서 다수의 마니아들에 의해 독자적인 입지를 구축한 ‘특촬물’을 선보이고 있는데요, '영웅으로 변신하여 악당으로부터 지구를 지킨다'는 단순한 서사구조와 특수 활영물 특유의 클리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현실을 탈피한 것 같은 포즈가 오히려 현실을 바꾸어놓으려는 진지한 야망으로 비춰진달까요. 작가는 직접 영웅으로 변신하며 모든 등장인물을 연기했습니다. '지우맨'의 영웅 성장 서사를 통해 자전적 경험을 이야기하며 청년세대의 현실을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이현진 작가는 자신이 몰입했던 여러 만화의 유명한 장면들을 출판 만화의 컷 구성과 같은 연출 방식으로 활용하여 시각화했습니다. 작가는 "지금은 사양길인 출판 만화에 대한 일종의 헌정"의 의미를 부여한다고 말합니다.
두 번째 섹션에서는 덕후의 특징이라 여겨지는 행동이나 분야를 다루며 ‘덕질’에 대한 시각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더쿠 메이커'는 잡지 더쿠(The Kooh)에 소개되었던 덕후의 습성 10가지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참여형 전시인데요. 자신이 어떤 유형의 덕후에 속하는지 알아볼 수 있는 덕후 자가진단표를 비롯하여 혼자 놀기 - 집착 - 은폐 엄폐 - 공상 - 중이병 - 배회- 만화 - 수집 - 제작, 마지막으로 관람객이 자신의 덕후 기질을 고백하는 덕밍 아웃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더쿠 메이커는 흔히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행위를 진지하게 수행해나가는 과정을 전시하면서 관람객들에게 의문을 제기합니다. 쓸모없는 특정한 것에 몰두한 사람을 덕후라고 부르며 비하하는 사람들을 향해 던지는 메세지라고도 볼 수 있는데요. 전시를 관람하면서 단지 쓸모없는 행위라고 규정지을 수 없는 창조적인 에너지를 느꼈습니다. 고스란히 몰입하는 데에서 오는 순수한 기쁨(!)이 전해진다고 할까요. 더쿠 메이커는 누구나 자발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자신만의 덕질 분야가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도입부에는 이처럼 자신이 어떤 타입의 덕후인지 알아볼 수 있도록 여러 질문을 배치해 놓고 있습니다. 이른바 ‘덕후 자가진단’ 공간인데요. 이 질문의 답을 따라가다 보면 A 타입부터 D타입까지 결과가 나옵니다. A는 수집 덕후, B는 공상 덕후, C는 배회 덕후, D는 홀로 덕후로 각각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나는 눈을 뜨며 꿈을 꾸오” “땅 보고 다닌 자 동전을 얻으리”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테스트 결과 저는 B타입이 나왔습니다. 상당히 신뢰가 가는(?) 테스트였습니다.
요즘에는 '덕후'가 단순히 특정 분야(쓸데없어 보이는)에 몰두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에서 한걸음 나아가 전문적 지식이나 실력을 축적한 사람이라는 인식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폐쇄적이던 덕후 문화 역시 개인의 취향을 드러내며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과 정보를 교류하는 문화가 생기면서 변화하고 있습니다. 덕후 프로젝트 : 몰입하다 展은 ‘덕후’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긍정적인 문화 현상으로 재조명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덕후 문화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몰입하는 자세에서 삶을 대하는 능동적인 태도를 봅니다. 덕후 프로젝트 : 몰입하다 展은 오는 7월 9일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전시기간 동안 덕후 문화에 대한 심포지엄과 작가와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됩니다. 전시장 내에서 사진 촬영이 가능합니다. 비교적 작은 규모의 전시회인지라 가볍게 둘러보셔도 좋을듯 합니다. 서울 시립 북서울 미술관은 화요일에서 금요일까지는 오후 8시까지 개관하며 토요일과 일요일, 공휴일에는 오후 7시까지 개관합니다. '덕후 프로젝트 : 몰입하다' 전시회를 통해 덕질의 즐거움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