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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 May 24. 2017

노래하고 춤추는 햄릿

뮤지컬 햄릿 in 디큐브 아트센터




‘To be, or Not to be, That is question.’ 셰익스피어스의 명작 ‘햄릿’을 대표하는 한 줄 대사입니다. 400년 전 햄릿의 고뇌에 찬 독백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살아 부지할 것인가, 죽어 없어질 것인가(최재서 역, 햄릿)’로 번역되기도 하는 이 명대사를 뜨거운 노래로 만나보았습니다. 2007년 국내에서 처음 선을 보인 체코 뮤지컬 <햄릿>이 10주년을 맞아 더욱 탄탄하게 돌아왔는데요. 뮤지컬의 옷을 입은 햄릿은 어떤 모습일까요. 개막 이튿날 공연이 열리고 있는 신도림의 디큐브 아트센터를 찾았습니다.



뮤지컬 <햄릿>은 국내에서 2007년 초연 이후 회를 거듭하며 진화를 해왔습니다. 부족한 점을 보완하면서 내용과 연출의 완성도가 더욱 높아졌는데요. 이번 공연에는 특히 젊은 관객층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한 시도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주인공 햄릿 역할에 배우 이지훈과 아이돌인 신우(B1A4), 서은광(BTOB), 켄(VIXX)이 캐스팅되어 이전 공연보다 한층 젊어진 감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이정화, 최서연(이상 오필리어 역), 에녹, 김승대 (이상 레어티스 역), 안유진, 전수미(이상 거투르트 역) 등 검증된 연기력과 팔색조 매력을 선사하는 배우들이 출연합니다. 저는 배우 이지훈의 ‘햄릿’과 이정화의 ‘오필리어’ 김승대의 ‘레어티스’ 연기를 관람했습니다. 





원작 햄릿은 세월을 뛰어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끼치며 재창조되고 있습니다. 뮤지컬 <햄릿>은 원작의 큰 줄기를 따라가면서 현대적인 해석을 덧붙여 대중성을 표방하고 있는데요. 햄릿의 연출은 <몬테크리스토>, <엘리자벳>, <레베카> 등으로 국내 관객들에게 친숙한 로버트 요한슨이 맡았습니다. 원미솔 음악감독과 제이미 맥다니엘 안무가의 활약 또한 공연 전부터 세간의 기대를 모았습니다. 

개막 이튿날 공연에는 로버트 요한슨과 작곡가 야넥 레덱츠키의 무대 인사가 있었는데요, 대중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가는 작품이 되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연출가 로버트 요한슨(왼쪽)과  작곡가 야넥 레덱츠키 (오른쪽)
야넥 레덱츠키의 말.말. "한국 사랑해요!" 




<줄거리>
덴마크 선왕의 장례식 날, 선왕의 동생 클라우디우스는 햄릿의 어머니인 거트루드 왕비와 결혼하면서 왕좌에 오른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잠겨 있던 햄릿은 연인 오필리어를 통해 위로받고 달콤한 하룻밤을 보내지만, 죽은 선왕이 꿈에 등장하면서 끔찍한 비극이 시작된다. 선왕은 아들인 햄릿에게 자신의 죽음이 숙부에 의한 독살이었다는 것을 알리고 복수를 명령한다. 충격에 빠진 햄릿은 모든 이의 의심을 피하고자 광인(狂人)을 연기하며 치밀한 복수극을 준비한다. 선왕의 독살을 암시하는 연극을 만들어 숙부 앞에서 공연하게 하면서 모든 상황이 점차 파멸로 치닫는다. 





파멸을 불러일으키는 사랑 이야기

원작 햄릿을 긴장감 있게 끌고 나가는 기본 정서는 ‘복수’입니다. 거짓으로 가득 찬 세상을 향한 젊은 햄릿의 분노와 고뇌가 주축을 이루는데요. 뮤지컬 <햄릿>은 관객의 눈높이에 맞춰 복수라는 큰 그림 속에 주요 인물들의 러브 스토리를 강하게 부각했습니다. 햄릿과 오필리어의 안타까운 사랑과 햄릿의 숙부 클라우디우스와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드의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랑 이야기가 비중 있게 다루어집니다. 특히 오필리어와 거트루드의 내면을 다루면서 원작에서 다소 그늘에 가려졌던 여인들이 새롭게 조명되는데요. 거투르드 왕비의 솔로곡 ‘사랑을 원하는 나(I am untrue)’는 왜 그가 선왕의 죽음을 묵인하고 새로운 남편을 맞게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여자이고 싶었던 오필리어와 거트루드.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지독한 갈망이 비극을 초래하는 과정이 임팩트 있게 그려집니다. 극 중 오필리어가 실성하여 난간에서 몸을 던지는 연출은 특히 뇌리에 오래도록 남았습니다. 원작처럼 물에 빠져 익사하는 비극과는 또 다른 시적인 분위기가 안타까우리만큼 인상적이었습니다.  



빠르고 역동적인 전개

뮤지컬 <햄릿>은 주요 인물(햄릿, 오필리어, 클라우디우스, 거트루드) 중심으로 줄거리를 집약해 속도감이 돋보입니다. 원작의 길고 난해한 대사는 현대적으로 바뀌었고 그나마 쳐내고 쳐내어 뮤지컬답게 30여 곡의 노래만으로 극을 밀고 나갑니다. 역동적으로 회전하는 무대 역시 돋보이는 요소였는데요. 회전 무대는 극의 전개에 따라 성이나 배, 절벽이 되기도 하고 거트루드의 방이나 햄릿의 침실로 변신하기도 합니다. 덕분에 영화처럼 빠른 장면 전환이 가능해서 지루할 틈 없이 극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무대 양 옆으로 세워진 건물도 배우들이 오르내리며 작품 전체의 입체감을 살리는 역할을 해냈습니다. 

화려한 영상 기법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관람 포인트인데요. 로토스코핑이라는 영상 기법을 통해 주인공 햄릿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효과적으로 풀어냈습니다. 원작에서 햄릿은 아버지의 유령을 만나 복수를 다짐하게 되지만 뮤지컬에서는 아버지가 죽게 된 원인을 꿈을 통해 알게 됩니다. 이 과정이 햄릿의 침실에서 스크린을 통해 몽환적인 영상으로 펼쳐집니다. 뮤지컬 <햄릿>은 이처럼 무대극이라는 제한된 공간을 극복하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빛났습니다.



락(Rock)을 중심으로 한 감각적인 사운드

뮤지컬 <햄릿>에서는 여러 장르의 음악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작사와 작곡을 맡은 체코 국민가수 야넥 레덱츠키는 기성에서 과감히 벗어나 발라드뿐만 아니라 강렬한 사운드의 록과 재즈, 라틴음악을 결합했습니다. 이번 공연은 록 뮤지컬의 특성을 더욱 살려냈는데요. 같은 선상에서 주인공 햄릿은 락커처럼 스타일리시한 검은 가죽 의상을 입었습니다. 그 외의 인물들은 고전과 현대를 넘나드는 화려한 복식으로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로버트 요한슨의 웅장한 연출과 안무가 제이미 맥다니엘의 재치 있는 안무 또한 뮤지컬 햄릿을 감각적으로 돋보이게 하는 요소였습니다.  

한국어로 개사된 노래들은 진정성 있는 가사와 멜로디가 돋보였습니다. 오필리어와 햄릿의 듀엣곡인 ‘내 맘 속 깊은 곳까지(Let's riseabove this world)'가 애절한 감성을 자극한다면, 궁중 사람들의 화려한 퍼포먼스와 함께 어우러지는 노래 ‘미쳤어 (He's Crazy)’는 흥겨우면서 반복적인 멜로디가 묘한 중독성이 있었습니다. 극의 후반부에서 나오는 햄릿의 솔로곡 ‘사느냐 죽느냐(To be, or Not to be)’는 특히 호소력 짙은 가사가 마음을 울렸습니다. ‘(…) 거짓 속에 사는 대체 나는 누군가. 쓰디쓴 진실을 알고도 나는 왜 망설이는가. 진정 거짓에 굴복해야 하는가. 사느냐, 죽느냐 그게 문제야.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참고서 견뎌야 하나. 아니면 운명에 맞서 싸우나(...)’ 


커튼콜 공연 : 미쳤어 (He's Crazy)의 일부분


커튼콜 공연 : 내 맘 속 깊은 곳까지(Let's rise above this world)의 일부분


직접 관람한 20일 토요일 공연은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꽉 차있었습니다. 개막 전부터 뜨거웠던 반응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성원에 보답하듯 배우들의 연기 또한 좋았습니다. 배우 이지훈의 햄릿 연기는 노련하면서 상당히 입체적인 느낌을 주었습니다. 극 초반의 냉소적인 태도, 중반의 광기 어린 슬픔, 후반에 몰아치는 고뇌에 찬 내면 연기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습니다. 

오필리어 역의 이정화 배우 역시 빈틈 없는 연기를 보여주며 관객들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1인 2역으로 폴로니어스와 무덤지기를 연기한 배우 이상준의 존재감은 단연 돋보였습니다. 개막 초반임에도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가 대체적으로 안정적이라는 평이었습니다. 배우들의 열정을 현장에서 확인하며 함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커튼콜 
레어티스, 왕비 거트루드, 햄릿, 왕 클라우디우스, 오필리어, 폴로니어스, 호레이쇼 (왼쪽 부터)
햄릿 역 배우 이지훈이 대표로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모습


원작자 셰익스피어가 뮤지컬 <햄릿>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검은 가죽 재킷을 입고 때로는 상의 탈의까지 불사하며 승냥이처럼 방황하는 햄릿이 어쩌면 마땅치 않을 겁니다. 하지만 조는 사람 하나 없이(?) 집중하고 있는 관객석을 보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겠습니다. 젊은 관객층이 마치 락 콘서트를 찾은 것처럼 햄릿을 보는 모습은 많은 점을 시사합니다. 어려운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보다 흥미롭게 접할 수 있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만 눈과 귀를 사로잡는 감각적인 연출에 치중하느라 특유의 묵직한 주제의식이 반감된 것은 아쉽게 느껴집니다. 


뮤지컬 <햄릿>은 오는 7월 23일까지 신도림 디큐브 아트센터에서 공연됩니다. 매월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 공연을 예매하시면 50% 할인된 가격에 관람할 수 있습니다. 장미가 피는 오월. 붉은 장미처럼 아름답고 치명적인 뮤지컬 <햄릿>으로 문화 나들이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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