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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 May 30. 2017

향의 길을 따라서

'아라비아의 길' 전시회 in 국립중앙박물관





‘향의 길’을 들어보셨나요? 생소하다면, ‘비단길’은 어떤가요? 비단길은 아시아와 중국, 지중해를 연결하는 무역 길로 중국의 비단이 서방으로 유통되었기 때문에 실크로드(비단길)이라고 부르게 되었는데요. 이 북방의 비단길에 비견되는 아라비아 반도의 인센스로드(향의 길)은 아라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또 다른 고대 문명의 교차로입니다. 고대 아라비아 상인들이 유황과 몰약을 유통하면서 꽃피웠던 문명을 중심으로 아라비아 반도의 역사를 조명하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데요. 국립 중앙박물관과 사우디 관광국가 유산위원회가 공동 주최하는 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 사우디아라비아의 역사와 문화’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아라비아의 길' 전시회는 아라비아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국내 첫 전시회입니다이번 특별전은 선사시대의 석기부터 고대 문명의 다양한 유물, 이슬람교의 성물들, 20세기 초 사우디 왕국의 공예품 등 모두 460여 점이 선보이고 있습니다. 아라비아의 유구한 역사를 압축해서 다섯 개의 주제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1부  ‘선사시대의 아라비아’는 구석기시대 석기들과 기원전 8000년경의 코끼리·염소 등의 석상을 통해 아프리카를 떠난 인류가 아라비아에 정착한 시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당시의 아라비아 반도는 사막이 아니라 호수와 비옥한 습지가 있는 곳이었음을 알게 해줍니다.


2부 '오아시스에 핀 문명'에서는 아라비아만 연안 지역 바레인 섬을 중심으로 형성된 고대 딜문 문명을 소개합니다. 이 지역은 기원전 3000년 무렵부터 메소포타미아와 인더스 계곡을 잇는 해상교역로의 중요 거점이었습니다. 금, 은, 진주, 대추야자 등 지역 생산품을 수출하며 번성했습니다.


3부 ‘사막 위의 고대 도시’는 전시의 핵심입니다. 대표적인 향료인 유황과 몰약은 남부 아라비아와 동부 아프리카에서 생산되었는데요. 이 향료들은 향을 피우는 종교의식에서부터 상처 치료나 감염 예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고대 중근동 지역에서 매우 중요한 교역품이었습니다. 향료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지중해에까지 거래되면서 이에 따라 무역로인 ‘향의 길’이 생겼고, 그 길 위의 오아시스를 거점으로 타이마, 알 울라, 카르얏 알파우 등 고대 도시들이 생겨났습니다. 도시들은 상인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하는 한편 세금을 부과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전시장에는 고대 도시 타즈의 6살 여자아이 무덤에서 발굴된 ‘황금 가면’(1세기경)과 ‘황금 장갑’을 비롯한 각종 장신구들, 카르얏 알파우에서 나온 1세기경의 향로들과 채색 벽화·토기들 등이 특히 주목을 끌고 있었습니다.


4부 '메카와 메디나로 가는 길'은 6세기 이후 이슬람교가 확대되면서 향의 길을 따라 형성된 순례길을 소개합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전시품은 메카 카바 신전의 거대한 문입니다. 도금한 은판에 세밀한 장식을 새겨 나무 문에 붙인 형태인데요. 17세기에 제작돼 1947년까지 사용되었으며 현재 메카 신전의 문은 다른 것으로 교체되었습니다.


5부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탄생'에서는 1932년 사우디아라비아 초대 국왕으로 등극한 압둘 아지즈 왕의 유품과 19세기 공예, 민속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남성상. 기원전 3천년기 중엽.  타루트. 사우디아라비아 국립박물관 소장.

1966년 타루트 섬에 소재한 무덤을 발굴하던 도중 출토된 석상입니다. 이 남성상처럼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자세와 허리띠를 착용하고 있는 모습은 기원전 3천년기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조각상이나 인장에 새겨진 그림에서도 나타납니다.



뱀 무늬 그릇. 기원전 3천년기. 타루트. 사우디아라비아 국립박물관 소장.



<타즈의 무덤>
1998년 여름, 아라비아 북동쪽 주바일에서 80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마을인 타즈에서 1세기 무렵에 조성된 6세로 추정되는 어린 소녀의 무덤이 발굴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소녀의 얼굴에는 황금 가면이 놓여 있었고 금과 루비, 진주, 터키석으로 장식된 목걸이와 아르테미스 여신이 새겨진 금귀걸이를 차고 있었습니다. 지중해에서 온 화려한 수입품으로 가득한 이 무덤은 자녀에 대한 애틋한 사랑뿐만 아니라 아라비아 동쪽까지 확산된 그리스 헬레니즘 문화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황금 가면과 황금 장갑. 기원전 1세기. 타즈. 사우디아라비아 국립박물관 소장.

고대 도시 '게라'로 추정되는 타즈 마을에서 발굴된 무덤 속 유물입니다. 소녀가 얼굴에 쓰고 있던 황금 가면에는 얼굴의 특징적인 부분만 간단히 표현되었습니다. 가면의 크기로 보아 여자 아이를 위해 특별히 제작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막 위의 고대 도시 타이마, 울라와 까르얏 알파우>
기원전 1000년 무렵부터 남부 아라비아에서 생산된 향료가 북쪽으로 메소포타미아, 서쪽으로 이집트와 지중해로 퍼져나가기 시작하면서 전설적인 향료 교역로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길 위에서 경제적 부를 축적한 국제 도시들이 번성했습니다. 아라비아 북서쪽의 타이마에는 바빌로니아의 마지막 왕인 나보니두스가 10년 동안 지배하면서 새로운 예술 양식이 전파되었습니다. 기원전 6세기 무렵부터 기원전 1세기까지 리흐얀 왕조가 지배했던 울라는 거대한 조각과 사원이 가득한 웅장한 고대 도시였습니다. 아라비아 남부와 북동부를 이어주는 핵심적인 교역로에 있던 까르얏 알파우는 가장 부유했던 도시 중의 하나로 지중해 지역 문화의 영향이 가미된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주춧돌. 기원전 5-4세기. 타이마. 사우디아라비아 국립박물관 소장.

타이마의 함라 사원 유적에서 출토된 이 정육면체 형태의 돌은 건축물의 기단부를 장식했던 주춧돌로 추정됩니다. 두 면에 걸쳐 새겨진 도상들은 매우 다양합니다. 태양 원반을 들고 있는 소가 중심에 있는데요. 이는 이집트의 아피스 황소와 유사하며 긴 옷을 입은 사제와 초승달과 날개 달린 태양 등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도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상들도 혼재되어 있습니다.



묘비. 기원전 5-4세기. 타이마. 사우디아라비아 국립박물관 소장.

사암으로 만들어진 이 비석에는 직사각형의 틀 안에 낮은 부조로 사람의 얼굴이 새겨져 있습니다. 아래쪽에는 "'자드'의 아들 '타임'을 기념하여"라는 아람 어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비석은 남부 아라비아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북서부 아라비아와 남부 지역 간의 문화적 교류를 보여줍니다.



남자가 그려진 벽화 조각. 1세기-2세기. 까르얏 알파우. 사우디아라비아 국립박물관 소장.

까르얏 알파우의 주거 유적에서 발굴된 이 벽화에는 도시 상류층의 삶이 드러나 있습니다. 짙은 색 곱슬머리의 남자가 하인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알이 가득한 포도가 그의 주변에 있습니다. 이 벽화는 1-2세기경 중근동 지방에 퍼진 디오니소스 도상의 영향을 보여줍니다.



조각상(손). 기원전 3세기-기원후 3세기. 까르얏 알파우. 사우디아라비아 국립박물관 소장.



단봉낙타 소조상. 기원전 1세기-3세기. 까르얏 알파우. 사우디아라비아 국립박물관 소장.

고대 아라비아 사람들에게 낙타는 가장 중요한 재산이었습니다. 목과 뒷다리에 새겨진 무늬는 마구馬具를 나타내거나 또는 특정 의식을 위해 새긴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남성상. 기원전 4-3세기. 울라. 킹사우드 대학 박물관 소장


경직된 자세와 꽉 쥔 주먹, 그리고 근육 표현은 이집트와 시리아 조각상과 유사하지만 지역적 특색도 지니고 있습니다. 조각상은 납작한 등을 벽에 기댄 채 서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몸의 일부분이 빨간색으로 채색됐고 반면에 치마는 흰 석고로 덮여 시각적 대조를 이루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신전 사원 주위에서 발견된 또 다른 유물에 적힌 글로 미루어 보아 리흐얀 시대의 통치자를 표현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번 전시회에서 독특하고 웅장한 모습으로 많은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메카와 메디나로 가는 길>
622년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박해를 피해 메카를 떠나 메디나로 향한 이후 이슬람교는 아라비아를 넘어 급속히 퍼져나갔습니다. 메카와 메디나는 이슬람 세계의 종교적 중심지가 되어 주변 지역에서 순례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이제까지 향로를 운반하던 교역로는 성지를 향해 모여든 수많은 이들의 순례길이 되었습니다. 순례길에서 출토된 각종 취사도구나 저장용기, 개인 용품들은 당시의 일상생활 및 경제 예술 활동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키스와의 일부. 1992년. 메카. 사우디아라비아 국립박물관 소장.

카바 신전을 덮는 천인 키스와는 메카에 바치는 가장 귀중한 헌정품 중 하나입니다. 키스와를 메카에 매년 보내는 전통은 여기에 기록된 대로 오늘날까지 이어집니다. "이 키스와는 메카에서 제작되었으며, 신성한 두 사원의 수호자 (사우디 아라비아 국왕) 파흐드 이븐 압둘아지즈(재위 1982-2005)가 바쳤다. 신이여 그를 보호하소서. 1992년 (이슬람력 1413년)



향로. 오스만 왕조 1649년. 사우디아라비아 국립박물관 소장.

이슬람 시대에도 향은 각종 의례와 행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향로는 메디나의 술탄 아흐마드 1세의 부인인 마흐페이케르가 메디나 사원에 헌정하기 위해 의뢰한 것입니다. 섬세한 꽃 장식이 상감된 이 향로는 이스탄불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17세기 중만 오스만 제국의 궁중 양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우스만이라는 작가의 이름이 손잡이 아래에 새겨져 있어 장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카바 신전의 문. 오스만 시대 1635-1636년. 메카. 사우디아라비아 국립박물관 소장.

이 거대한 나무 문은 메카 카바 신전의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던 것으로 오스만 제국의 술판 무라드 4세가 헌정한 것입니다. 도금한 은판에 세밀한 장식을 새기고, 이를 나무에 붙였습니다. 우아한 쇠고리가 달린 은판은 이스탄불에서 제작한 것입니다. 카바 문에 대한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이슬람 시대 초기의 카바 문의 형태가 수 세기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이 문은 1947년까지 사용되었습니다. 현재 메카 신전을 장식하고 있는 문은 이때 교체된 것입니다.  메카와 메디나는 비무슬림들에게 금단의 공간입니다. 카바 문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메카 사원을 방문한 듯한 인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7세기 초 이슬람교가 성지 메카에서 탄생한 이후 아라비아 반도는 전 세계 무슬림들이 찾아드는 순례지가 되었는데요. 이번 전시회를 통해 아라비아 반도의 역사와 문화를 거시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우디 아라비아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관람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460여 점에 달하는 유물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유물은 단연 사우디 아라비아의 성지 메카의 신전 문인데요. 직접 메카에 가서 볼 수 없는 성물 중의 성물인지라 더욱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고대 문명 도시의 자취를 보여주는 유물뿐 아니라 유구한 전통을 갖고 있는 이슬람 성물들이 대거 선보였습니다.  사막 위에서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향의 길'이 메카와 메디나로 이어지는 '성지순례의 길'로 귀결되는 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한 점도 좋았습니다.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동선을 따라 관련 영상을 곳곳에 배치한 것도 눈여겨 볼만한 특색이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전 '아라비아의 길-사우디아라비아의 역사와 문화'는 오는 8월 27일까지 전시됩니다. 성인 6000원.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는 50% 할인된 가격으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사막과 석유의 땅으로 인식되는 아라비아를 새롭게 이해하는 좋은 기회, 놓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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