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예술치유허브를 찾다
‘아픈 일상을 문화로 치유할 수 있을까.’ 유난히 힘든 마음으로 전시회이나 공연장을 찾을 때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상처 난 사회를 문화예술로 치유하려는 움직임을 볼 때면 더욱 강하게 드는 질문이었는데요. 예술가가 아닌 일반인이 다양한 예술 행위를 통해 치유를 꾀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요. 예술을 통한 개인과 사회의 치유를 취지로 하는 공공기관이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찾아가 보았습니다.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 위치한 '서울예술치유허브'입니다.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서울예술치유허브는 성북구 보건소를 리모델링해서 2010년 '성북예술창작센터'로 개관했습니다. 그간 시민의 일상과 함께하는 '예술치유' 콘텐츠 개발과 운영을 선도해왔고 2016년 4월 '서울예술치유허브'로 명칭을 변경했는데요. 예술치유 특화 콘텐츠 연구 개발을 지원하면서 시민들에게 예술을 통한 위로와 재활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지하 1층~지하 4층 건물로 이루어진 서울예술치유허브는 예술가 스튜디오, 갤러리, 다목적홀, 주민창작실, 옥상공방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갤러리 '맺음'에서는 후원 공모전에 선정된 신진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는데요. 이 날 저는 최선령 개인전 <Wonderland>를 관람했습니다.
최선령 작가는 가상의 공간인 'Wonderland'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자연' 공간을 매치시킨 작품을 선보이고 있었습니다. 작품을 통해 인간, 즉 우리들이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을 환기시키고 있는데요. 작가에게 자연은 고향이며 휴식의 공간일 뿐 아니라 죽음을 상징하는 내러티브를 지니고 있습니다. 일탈을 꿈꾸며떠난 대자연 속에서 생생한 죽음의 이미지를 발견한 것인데요. 도시 문명이 죽음을 금기시하며 쫓아내려 애쓴다면 야생의 자연은 그 품 안에 죽음을 수태하고 길러냅니다. 도시 문명과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자연일수록 재생과 죽음의 순환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야생의 자연은 그만큼 인간에게 위험하고 두려운 영역으로 인식됩니다. 자연에 인위적인 힘을 가해 좀 더 '덜 위험한'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모습은 이제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작품 속의 자연은 창백하면서 인공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데요. 야성을 거세한 '비현실적인' 모습이 현대 문명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뭘까요. 이 불길하면서 낯익은 느낌은. 혹시 우리는 문명에 의해 길들여진 자연을 진짜 자연이라고 믿으며 향유해온 것은 아닐까요.
서울예술치유허브는 치유적 예술단체 및 전문 예술치료 단체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합니다. 외부 단체나 기관과 연계하여 다양한 예술치유 콘텐츠를 개발, 보급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예술보건소'인데요. 연극, 음악, 미술, 인문 상담 등 다양한 장르의 치유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예술보건소’는 심리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청년, 여성, 직장인에 특화된 8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9세 이상의 성인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각 프로그램별로 6월까지 총 8~11회가 운영됩니다.
‘예술보건소’의 세부 프로그램으로는 1. 보아뱀의 코끼리(다방구밴드) 2. Our Town(응용연극단체 문) 3.예술, 삶과 소통의 ‘의미술’(아티스트 커뮤니티 클리나멘) 4. 마음을 그리는 팟캐스트(별마을) 5. 음악일기(한아인) 6. 스트레스 OUT, 나 IN(스튜디오 버튼) 7. 심심(心深)표류기(인문예술연구소 아트휴) 8. 용감한 엄마들-먹고, 읽고, 예술합시다!(린협동조합)가 있습니다.
마음을 치유하는 '예술보건소' 프로그램은 예술 활동을 통해 창작의 즐거움을 경험하게 합니다. 시민들이 일상에서 지친 마음을 회복하도록 돕는 데에 가장 큰 취지를 두고 있습니다. 프로그램별 자세한 내용은 서울문화재단 누리집 또는 서울예술치유허브 카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상 속에서 문화와 예술은 휴식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또 힘겹고 슬픈 시간에는 위로와 치유가 되어서 우리의 상처를 보듬기도 하는데요. 문화예술을 통한 치유공간을 모토로 하는 공공기관을 찾는 것은 의외로 쉽지 않았습니다. 서울예술치유허브는 옛 성북구 보건소를 리모델링하여 2016년 새롭게 발촉된 기관입니다. 이처럼 낙후되거나 이전한 시설을 활용하여 시민들에게 위로와 재활을 지원해주는 기관이 꾸준히 설립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예술이 개인의 아픔을 보듬고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 첫 번째 열쇠는 '기회의 유무'가 아닐까요. 개인이 문화예술을 가까이 접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술가들처럼 스스로 퍼포먼스에 참여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길 바랍니다. 예술이 모두의 상처를 치유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선한 영향을 끼치는 매개인 것만큼은 분명하니까요.
서울예술치유허브는 평일 오전 10시에서 오후 6시까지 개관하며 갤러리 '맺음'의 최선령 개인전은 오는 6월 10일까지 무료 관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