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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 Jun 21. 2017

生生한 유화를 보는 감동

모리스 블라맹크 전시회 in 한가람 미술관




“캔버스에서 물감이 강처럼 흘러내리는 것 같다.” “역시 유화는 직접 눈으로 봐야 한다.” “회화 작품이 이토록 입체적일 수 있을까.” 지난 3일 시작된 모리스 블라맹크 전을 둘러싸고 쏟아져 나온 말들입니다. 이번 전시는 앙리 마티스와 함께 야수파의 주축으로 평가받고 있는 블라맹크의 국내 최초 단독전으로 기대를 모았는데요. 뚜껑을 열어보니 세간의 평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거칠고 생생한 유화의 아름다움을 체험할 수 있는 전시회, 서울 서초동 한가람 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모리스 블라맹크 ’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프랑스 파리 피에르에서 태어난 모리스 드 블라맹크(Maurice de Vlaminck)는 1901년 반 고흐 회고전에서 큰 감명을 받으며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1905년 '앙데팡당' 전과 '살롱 도톤느'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야수파 스타일에 집중하게 됩니다. 하지만 1907년부터 초기 야수파의 화풍은 사라지고 보다 엄격한 구성과 어두운 청색을 기조로 한 견고한 화면 구성의 세계에 도달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반 고흐의 영향에서 벗어나 폴 세잔의 영향에 따른 결과로 보이는데요. 이번 전시회에서 선보이는 블라맹크의 작품들은 야수파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한 1910년대부터 1958년 사이에 제작된 것들입니다.



모리스 드 블라맹크 (Maurice de Vlaminck  1876년 ~ 1958년)



Part 1_원화 전시

전시는 블라맹크의 작품 80여 점을 선보이는 ‘원화’ 전시와 ‘미디어 체험관’의 두 가지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첫 번째 파트인 원화 전시는 블라맹크가 활동했던 시기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세잔의 영향을 받았던 시기(1907-1916), 1차 세계대전 이후 발 두아즈와 파리 근교 시기(1919-1925), 샤르트르 근교, 노르망디, 브르타뉴 시기 (1925-1958), 마지막으로 작가가 작고하기 전까지의 시기로 구성되었습니다.


원화 전시에서는 야성적인 필치와 중후한 색채로 대표되는 블라맹크의 독자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는데요. 그의 작품은 수채화나 아크릴화가 가질 수 없는 유화만의 매력을 극대화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블라맹크는 붓 대신 캔버스에 직접 물감을 짜서 칠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경우 물감을 섞지 않아 색채는 강렬해지고 표면에서는 물감이 쏟아질 것처럼 마티에르(matiere·질감)가 두터워집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작품들과 함께 블라맹크가 남긴 글을 전시하여 작가의 작품 세계와 인생지론에 대해 느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 나는 끊임없이 창작의 기쁨과
뇌를 흥분시키는 듯한 행복의 원천을 느낀다.
나는 하늘, 나무, 구름과 동화된다. 삶과 함께



<빨간 지붕> Les Toits rouges, 1908, oil on canvas, 79 x 92 cm


야수파의 선두에 서있었던 블라맹크는 세잔에게 영향을 받으면서 기존과 다른 화면 구성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구성은 세잔의 방식을 따랐지만 색채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자신만의 방식을 고집했습니다.'빨간 지붕'에서는 선명한 흰색과 그것을 받쳐주는 청색으로 화면을 조화롭게 구성했습니다. 블라맹크는 흰색을 즐겨 사용하면서 자신만의 컬러를 구축하여 다른 화가들과의 차별성을 두었습니다. 흰색의 존재는 블라맹크의 작품세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으며, 견고한 화면 구성과 풍경의 소재가 더해지면서 블라맹크만의 독자적인 양식으로 자리 잡는데 기반이 되었습니다.



<겨울 마을의 거리> Rue de village en hiver, 1928-30, oil on canvas, 60 x 73 cm


이 작품은 원근감이 보이는 사선 구도를 사용해 거칠고 적막한 농촌에 대한 개인적인 서정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 시기에 블라맹크가 풍경화를 통해 표현하고자 한 것은 '회화적 진실'을 넘어선 '인간적 진실'의 세계였을 것입니다. 인적이 없어 텅 빈 도로의 끝은 자신이 걸어야 할 인생의 노정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이며 큰 전쟁의 시기를 겪은 인간으로서의 허무함과 공허함의 감정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눈길> La Route sous la neige,1931, oil on canvas, 81x 100.5 cm



자연은 겨울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 본질을 드러낸다.
여름에는 푸르른 초목의 무성한 잎, 잡목의 무성한 새싹들이 모습을 보여주지만
겨울에는 대지의 기복을 감추고 그 존재의 이유를 내면에 숨긴다.


<눈 덮인 마을> Village sous la neige, 1930-35, oil on canvas,65.5 x 81.5cm


블라맹크의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마을의 거리는 그의 삶이 끝날 때까지 작품의 중요한 주제가 되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보이는 흰색 눈길과 음산한 하늘의 표현, 끝없이 이어진 길은 빛의 조화를 표현하기 위한 모티브들입니다. 블라맹크는 세잔에게서 얻은 교훈에 따라 성립된, '엄격한 구성'과 본능적으로 흐르는 듯한 붓터치를 통한 '감정 표현'으로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었습니다.

<눈 덮인 마을> Village sous la neige, 1935-36, oilon canvas, 54.5 x 65 cm


거칠고 자유분방한 필치와 암울한 색채의 조화, 독특한 화면 분위기가 어우러진 화면 속 세계는 블라맹크가 이룬 또 하나의 성취였습니다. 그림 속 흰 눈의 신랄한 화려함과 어두운 하늘의 강한 대조를 통해 블라맹크는 불안한 삶 속에서 교차되는 열정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화가, 시인 혹은 음악가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만약 그것이 그리 단순할지라도-
갈증 나는 이가 물을 마시듯, 혹은 허기를 느끼는 이가 빵을 필요로 하듯
예술가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고 발현하는 욕구가 일어나는 근원을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양귀비꽃> Bouquet de coquelicots, c.1936-37, oil on canvas, 55,5 x 38 cm


블라맹크는 그림 속 대상물을 내면적인 모습으로 재구성하면서 그에게 영감을 준 사물에 대한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주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물에서 모티브를 찾았는데 이 작품 속 꽃다발은 그의 아내인 베르트콩베가 집에 장식한 것들입니다. 어두운 톤을 회화에 주로 사용하던 이 시기에도 꽃 정물에서만큼은 풍부한 색채감으로 컬러리스트로서의 자질을 마음껏 표출하고 있습니다.



<어선의 귀환, 브르타뉴> Retour de peche. Bretagne, 1947, oil on canvas, 60 x 73 cm


 블라맹크는 가족과 함께 정기적으로 브르타뉴에 방문하여 수많은 해양화와 고깃배들을 그렸습니다. 화면 속 멀리 노을빛과 하늘, 바다가 어우러진 것처럼 블라맹크는 전혀 다른 색상을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충돌하는 듯한 효과를 주고 있습니다. 그는 묘사할 대상 에서 순간 보이는 감정들을 극적으로 담고자 했다고 말합니다.



<사일로> le silo, 1950, oil on canvas, 54.2 x 73 cm


반 고흐를 포함한 프랑스의 많은 화가들은 남프랑스 지역의 황금물결과도 같은 밀밭을 보면서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느꼈습니다. 블라맹크 역시 밀밭에서 느껴지는 자연의 생명력을 보며 그 경이로움을 화폭에 담고자 했습니다. 날씨에 의한 하늘의 변화와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대지는 블라맹크의 벅차오르는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소재였습니다. 블라맹크는 말년에 여러 밀밭 풍경을 남겼습니다.




Part 2_ 미디어 체험관


이번 전시회는 원화를 색다르게 감상할 수 있는 미디어 아트 체험관이 함께 선보입니다. 미디어 체험관의 경우 한국에 오지 못한 블라맹크의 대표 작품들로 구현되었습니다. 그의 야수파 초기 작품들에서 엿볼 수 있는 원색의 화려한 컬러가 대형 스크린을 통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블라맹크는 마치 캔버스에서 물감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느낌의 두툼한 질감을 즐겨 사용했는데요. 이러한 느낌이 미디어 영상 체험관에도 반영이 되었습니다. 특히 3면으로 둘러싼 미디어월이 인상적이었는데요. 미디어월 한가운데 서면 마치 블라맹크가 그린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 같은 환상적인 느낌을 자아냅니다. 그가 머물렀던 1900년대 초중반 프랑스 사르트르 근교의 마을로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이처럼 3D 프로젝션을 통해 감상하는 명화들은 색다른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미디어 아트를 통해 한국에 오지 못한 대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붓으로 스크린을 터치하며 스케치를 채색하는 즐거움 !


미디어월의 환상적인 3D 효과.



블라맹크전 전통적인 원화 전시와 보다 감각적인 미디어 전시의 상호조화가 돋보였습니다. 특히 원화 전시에서는 블라맹크의 예술관이 드러나는 글귀를 그의 저서에서 찾아 함께 구성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회화와 글을 함께 감상하면서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과 예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전시회의 작품들은 농촌의 하늘과 들판, 눈 덮인 마을 풍경이 주를 이루고 있었는데요. 야수파 초기와는 달리 '회화의 리얼리티'에서 '삶의 리얼리티'를 탐구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여 얻어낸 '결실'을 원작으로 감상하는 데에 큰 의의가 있었습니다.

블라맹크의 초기 야수파 시절 대표작들을 원화로 감상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미디어 체험관을 통해 간접적으로 감상할 수 있었지만, 이번 전시회를 통해 원화를 직접 관람하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았다고 해야 할까요. 블라맹크의 강렬한 원색과 자유분방한 필치를 감상할 수 있는 초기 작품들을 국내에서 다시 한번 볼 수 있게 되길 기대해봅니다.
                                                                                                                                                                       

                                                                              

관람료는 성인 1만 3000원,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는 50% 할인된 가격으로 관람 가능합니다. <모리스 블라맹크 전>은 오는 8월 20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 한가람 디자인미술관에서 전시됩니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뚝뚝 묻어날 것만 같은 생생한 유화의 매력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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