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버린 내 고향 잠실

아파트 단지가 고향인 세대의 장소상실감

by 지리는 강선생

2002년 겨울, 월드컵 4강의 열기가 이제 막 가시고 있을 무렵 저는 대한민국 사교육의 중심지 강남 대치동에서 논술 수업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지금은 이름처럼 거대한 사교육 기업, 메가스터디 왕회장으로 유명한 손주은 회장의 수업을 직강으로 들었습니다. 한때 '손사탐'으로 유명했던 그가 했던 여러 이야기 중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는 강남 도곡동 타워 팰리스를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욕망의 상징으로 정의 내리며, 이를 입에 담기도 민망한 '타워 페니스'로 정의 내렸습니다. 이는 아마도 타워 팰리스가 주변의 건물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뚝 솟아있었고, 궁전(palace)이라는 울타리에 속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끝없는 욕망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당시 타워 팰리스에 입주하기 위한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단순히 돈만 많은 졸부는 입주가 불가능하고, 이름 있는 기업 출신이거나 명망 있는 가문, 품격 있는 연예인 정도 되어야지 입주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당시에 타워 팰리스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그 위상을 뽐내고 있었고, 욕망과 비판의 대상으로서 이 웅장한 건물은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었습니다.

2002년 욕망의 스펙터클 도곡동 타워팰리스 (출처: 2002년 오마이 뉴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23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타워 팰리스를 대체하고 있는 건물은 무엇일까요? 가격으로만 따지면 더펜트하우스청담, 아크로서울포레스트, 부산엘시티 등 다수의 수십억대 아파트 및 오피스텔 건물이 있겠지만, 20년 전 사교육 시장의 대부가 논술 수업 시간에 언급할 정도로 사회적 파급력이 있는 건물은 누가 뭐래도 잠실에 위치한 '시그니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속 시그니엘은 많은 연예인들이나 인플루언서들의 일상이며, 슈퍼카와 더불어 자신의 성공을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트로피와 같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또한 시그니엘은 언젠가 자신의 성공을 증명해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상징적인 목표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2023년의 시그니엘에 대한 욕망은 20년 전의 타워 팰리스의 그것과 매우 닮아있습니다. 이러한 욕망의 창출 기제로 등장하는 것이 스펙터클입니다. 스펙터클은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광경이나 볼거리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 그 이면에는 총체적인 경제 사회 구성체의 논리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디보르는 스펙터클을 이미지가 될 지경까지 축적된 자본으로 바라봅니다.

최근 욕망과 질투의 대상이 된 시그니엘 (출처: 유튜브)


송파구 잠실은 이제 강남 3구 중 하나를 넘어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또 다른 중심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탄천 너머 삼성동 구 한국전력 위치에 초고층으로 건설될 현대 글로벌비즈니스센터가 바로 위치하고 있고, 대한민국 사교육의 메카 대치동은 지하철 두 정거장 거리에 위치합니다. 대한민국 최대규모였던 잠실 주공 아파트 단지가 재개발되어 현재 수십억을 호가하는 고급 아파트 단지가 대규모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종합운동장과 올핌픽공원 등 스포츠, 근린 시설도 풍부합니다. 롯데월드, 롯데 호텔, 롯데 백화점, 에비뉴엘, 시그니엘 등 롯데 그룹의 상업 및 주거 시설이 집적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며, 석촌호수 남쪽으로는 배달의 민족의 우아한 형제를 비롯하여 젊고 강한 IT기업들이 다수 모여있습니다. 이처럼 현재 강남구, 서초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송파구의 중심, 잠실에 대해 제가 이렇게 관심이 많은 이유는 바로 이곳이 저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잠실새내(구 신천)는 원래 옛 한강이었던 송파강 북쪽에 있었습니다. 새내란 지명은 조선 중기 이후 큰 홍수가 났고 그로 인해 새롭게 작은 물줄기가 생겨서 새로운 하천이라는 뜻으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그 후 1960~70년대 한강개발을 하면서 송파강은 매립되었고 새내는 확장되어 지금의 한강이 되었습니다. 옛 송파강의 흔적은 롯데월드 매직 아일랜드가 품고 있는 석촌호수에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새내는 원래 강의 북쪽, 즉 광진구 자양동 쪽에 붙어있었던 것이 현재 강의 남쪽, 송파구 잠실동이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상전벽해를 넘어선 강을 넘나든 변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대동여지도에서 강북쪽에 위치한 잠실(빨간 원으로 표시),
개발전 잠실과 개발후의 잠실


몇 년 전 찾아간 저의 고향은 정말 많이 변해있었습니다. 제고향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잠실 주공 1단지입니다. 주공 1~4단지가 전면적으로 재개발되면서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와 떡볶이를 사 먹던 종합상가, 그리고 친구들과 잠자리를 잡고 야구를 하던 운동장과 놀이터가 전부 사라져 버렸습니다. 저는 그야말로 렐프가 언급한 장소상실감을 현실로 경험했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나서 아파트 단지가 고향일 수밖에 없는 저와 비슷한 세대는 이러한 아파트 재개발로 인해서 고향에서의 추억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다분히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래 글은 당시 오랜만에 고향 잠실새내를 방문했을 때 제가 썼던 글입니다.

오랜만에 태어나고 초등학교를 다녔던 고향, 신천에 왔다. 새로 생긴 하천의 순우리말, 잠실새내로 지명이 바뀐 지는 꽤 되었지만 아직은 어색하다.

할머니와 신당동 떡볶이를 사 먹던 새마을 시장 골목도 걸어봤다. 그때부터 감기와 눈병이 심해서 병원을 다녔는데, 한참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이 그게 알레르기 비염 때문이었고, 오늘 비염 수술 상담을 받으러 온 곳도 바로 여기 신천이다.

지금은 잠실주공 1단지가 재개발되어 20층 넘게 우뚝 서있는 잠실엘스 건너편 스타벅스에 앉아있다. 저 단지 안에서 학교도 다니고 야구도 하고 매미도 잡고 핫도그도 사 먹고 했었는데, 지금은 흔적 하나 없이 사라졌다.

2009년 8월에 한 번, 2011년 5월에 다시 한번, 잠깐씩 들러보았던 잠일국민학교는 잠일초등학교로 바뀌어있었고, 드넓었던 운동장은 좁디좁게 변해있었다. 아마 요새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잘 놀지 않겠지.

장소는 기억의 지층이라고 하는데, 여기 나의 고향 신천에 쌓인 추억들이라고는 몇 년 전, 추억을 기억하려 잠시 들렀던 그때의 추억밖에 없구나!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마음이 가난한 건 매한가지이다.

#신천 #잠실새내 #사라진고향
내가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잠실 주공 1단지(현 잠실 엘스)


할머니와 병원을 다니며 신당동 떡볶이를 먹었던 새마을 시장

올해 김시덕 박사의 '서울 선언'이라는 책을 통해 고향 잠실을 다시 만났습니다. 저는 잠실 주공 1단지에서 태어났고, 그 바로 옆에 있던 잠일 국민학교를 다녔습니다. 그 역시 잠실 주공 1단지에 살았었고, 잠일 국민학교를 다녔다고 언급하는 장면에서 저는 매우 오랜 고향 친구를 만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비록 직접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 꼭 만나서 고향에 대한 추억을 나누고 싶은 마음입니다. 저는 주공 1단지 곳곳에서 잠자리를 잡고 야구를 하면서 놀았던 추억이 있었고, 그 역시 친구들과 덤불과 반지하 벽에서 비밀 기지를 만들며 놀던 추억을 이야기합니다. 1984년 생인 저는 38동에 살았고, 1975년 생인 그는 49동에 살았다고 합니다. 약 10년 간의 텀이 있긴 하지만, 똑같은 장소에서 추억을 쌓았고 그 추억을 다시금 찾아가서 되새기며 글을 쓰는 모습에서 저자와 제가 결이 참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살았던 잠실 주공 1단지 배치도


그의 책을 통해 잠실 주공 아파트의 새로운 역사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손정목이 쓴 ‘서울 도시 계획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양택식 서울 시장은 잠실 주공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며 고민이 있었다고 합니다. 박 대통령의 ‘국민의 주거 생활을 호화롭게 하는데 주택공사가 앞장서지 말라’는 지시에 따라 저소득층을 위한 7.5평의 소규모 주택을 지어야 했는데, 양시장은 홍콩에서 보았던 슬럼 아파트 단지가 떠오르며 이곳 잠실 주공 아파트 단지가 홍콩의 비참하다 못해 지옥과 같은 모습으로 될까 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슬럼이 되지 않고 이곳에서 생활하는 어린이가 밝고 씩씩하게 자라날 수 있을 것인가 고민과 연구를 지속하였고, 이 말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앞으로 잠실 단지에 사는 아이들에게 <너 어디에 사느냐>라고 물었을 때 <잠실 단지에 삽니다>라고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도록 해라.‘ 이어서 ’비록 7.5평의 작은 주택이라도 결코 슬럼화가 되어서는 안 되고 그 집이 깨끗하게 유지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난 어느 정도의 미화가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그곳에서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보낸 저 역시 저자와 마찬가지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고 이렇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양택식 서울 시장이 말한 그 아이가 바로 접니다!‘


물론 지금은 행복했던 추억으로 주공 1단지를 떠올리지만 당시 어렸던 저는 롯데월드 근처에 있는 무려 15층에 엘리베이터까지 있는 주공 5단지에 사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할머니와 손을 잡고 핫도그를 먹으며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 우리도 저기 5단지 이사 가면 안 돼?’라고 이야기했었습니다. 저자 역시 저처럼 주공 5단지를 선망의 대상이라고 표현했더군요. 주공 5단지에는 당시에나 지금에나 생소한 개념이었던 단지 내 실외 수영장이 있었습니다. 당시 중산층 이상을 대상으로 지어진 여의도 시범 아파트, 반포 주공 아파트 등의 고층 아파트 단지에는 주변 단지와의 차별성을 두기 위해 야외 수영장과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였다고 합니다. 물론 현재 요새화, 성채화 되어서 비거주민들을 배제하는 고급 아파트들과는 다르게 당시 고급 아파트에는 울타리도 없었고 저와 같은 다른 단지 아이들에게도 수영장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찾아간 주공 5단지는 재개발된 주변 아파트들과는 다르게 낡고 흉물스러운 모습이었고, 과거 실외 수영장이었던 곳은 주차장으로 변해있었습니다.

1단지에 살던 10살 꼬마가 부러워했던 고층 아파트 잠실 주공 5단지 배치도


누가 저에게 고향을 물어보면 몇 년 전까지는 고민 없이 '서울 잠실'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당연히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 고향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잠실에서 살았던 날보다 지금 살고 있는 춘천에서 살았던 기간이 더 길어지면서 '나의 고향은 어디인가?'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 고향에 대한 의문에 촉매제가 더해지는 이유는 바로 제가 기억하는 고향 잠실의 모습은 이미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기억은 장소에 기록되고 그중 의미 있는 기억을 추억이라고 부릅니다. 고향에서의 추억 역시 장소를 매개로 하는 일종의 장소성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장소가 사라져 버린 경우 고향에서의 추억 역시 사라져 버렸다고 봐야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머릿속에는 아직 남아있기 때문에 고향에 대한 추억은 그대로라고 해야 할까요? 저처럼 아파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아직은 젊은 나이에 고향에 대한 추억을 잃어버린 많은 분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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