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약속하고 인간이 배신한 땅
14장에서는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한 축인 미국과 유럽, 그리고 아픔을 간직한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를 둘러보며 세계 일주를 했습니다. 이제 우리의 긴 여행을 마무리할 마지막 정착지는 바로 중동(Middle East)입니다.
지도상으로는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세 대륙을 잇는 교차점이자 인류 4대 문명이 태동한 축복받은 땅입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 불리며 인류 최초의 농경과 도시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죠.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뉴스에서 접하는 중동은 어떤 모습인가요? 폭탄 테러, 미사일 공습, 난민의 행렬, 그리고 절규하는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왜 신이 축복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세계의 화약고가 되었을까요? 마지막 15장에서는 중동의 비극을 잉태한 역사적 씨앗부터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참상까지 낱낱이 파헤쳐 보겠습니다.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풀다 보면 그 속에 숨겨진 제국주의의 그림자와 현대 지정학의 냉혹함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오스만 제국의 몰락과 사이크스-피코 협정
중동의 비극을 이해하려면 시계를 100년 전으로 돌려야 합니다. 당시 중동은 거대한 이슬람 제국인 오스만 제국의 통치 아래 있었습니다. 튀르키예인, 아랍인, 쿠르드인, 유대인 등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섞여 살았지만 제국의 느슨한 통치 틀 안에서 나름의 평화와 공존을 유지했죠.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오스만 제국이 독일 편에 서서 패전국이 되자 승전국인 영국과 프랑스는 비밀리에 펜을 듭니다. 1916년 영국의 외교관 마크 사이크스와 프랑스의 외교관 조르주 피코는 지도 위에 자를 대고 중동 땅을 자기들 마음대로 나눠 갖기로 약속합니다. 이것이 바로 중동 현대사의 저주라 불리는 사이크스-피코 협정(Sykes-Picot Agreement)입니다.
무시된 정체성, 잉태된 분쟁
이때 그어진 직선에 가까운 국경선은 그곳에 수천 년간 살아온 사람들의 종교(수니파/시아파), 민족(아랍인/쿠르드인/페르시아인), 부족의 경계를 철저히 무시했습니다. 그저 영국과 프랑스의 이익, 그리고 석유 수송로 확보를 위한 편의에 따라 그어졌을 뿐입니다.
그 결과 서로 원수지간인 종파가 한 나라에 억지로 묶여 내전을 벌이게 되었고, 심지어 하나의 민족이 네 나라로 찢어지는 비극을 맞았습니다. 대표적인 피해자가 바로 쿠르드족입니다.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가진 3천만 명이 넘는 인구를 가졌지만, 나라 없이 튀르키예, 이라크, 이란, 시리아에 흩어져 핍박받는 세계 최대의 유랑 민족이 된 원인이 바로 이 인위적인 국경선 때문입니다. 중동의 만성적인 불안정성은 아프리카와 마찬가지로 서구 열강의 잘못된 선 긋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신의 선물인가, 악마의 유혹인가
20세기 초 중동의 운명을 바꿀 거대한 사건이 터집니다. 모래바람만 불던 황량한 사막 밑에서 석유가 펑펑 쏟아져 나온 것입니다. 페르시아만 일대는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절반 이상을 보유한 에너지의 심장이 되었습니다. 석유는 중동 국가들에게 상상도 못 할 막대한 부를 안겨주었습니다. 두바이와 리야드의 마천루, 사막 위에 세워진 초현대식 도시들은 오일머니의 위력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동시에 자원의 저주(Resource Curse)를 가져왔습니다. 만약 석유가 나지 않았다면, 강대국들이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중동에 군대를 보내고 정권 교체에 개입했을까요?
카터 독트린과 미국의 개입
미국에게 중동의 석유는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안보 그 자체였습니다. 1980년 지미 카터 대통령은 "페르시아만의 석유 통제권을 위협하는 어떠한 시도도 미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군사력을 동원해 응징하겠다"는 카터 독트린(Carter Doctrine)을 선포했습니다.
이때부터 미국은 중동의 경찰을 자처했습니다. 걸프전,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수많은 전쟁이 표면적으로는 독재 타도나 테러와의 전쟁을 내세웠지만, 그 이면에는 석유 패권을 지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습니다. 석유는 중동을 부유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부패한 독재 정권을 유지하는 자금줄이 되고 외세의 침략을 부르는 자석이 되었습니다.
중동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핵심 키워드는 종파 갈등입니다. 같은 이슬람교지만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계자를 누구로 보느냐에 따라 수니파(Sunni)와 시아파(Shia)로 나뉩니다. 전 세계 무슬림의 85%는 수니파지만 이란과 이라크 등지에는 시아파가 다수를 차지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 vs 이란
이 종교적 갈등은 현대에 와서 국가 간의 패권 다툼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중동에는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의 발상지인 메카와 메디나를 수호하는 종주국이자 수니파의 맹주입니다. 막대한 오일머니와 미국의 강력한 군사적 지원을 등에 업고 있습니다. 왕정 체제를 유지하며 중동의 현상 유지를 원합니다. 반면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반미 노선을 걷는 시아파의 맹주입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라는 자부심과 강력한 군사력, 그리고 혁명 수출의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리전(Proxy War)의 비극
두 나라는 직접 싸우기보다는 주변의 약소국이나 불안정한 국가(예멘,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에서 자신들의 대리인(Proxy)을 내세워 전쟁을 벌입니다. 이를 대리전이라고 합니다.
예멘 내전이 10년 넘게 끝나지 않는 이유도 정부군을 돕는 사우디와 반군(후티)을 돕는 이란의 대리전이기 때문입니다. 시리아 내전 역시 정부군(이란 지원)과 반군(사우디 지원)의 싸움이었습니다.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건 언제나 힘없는 민간인들입니다. 중동의 진정한 평화는 이 두 거인의 화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중동 문제의 가장 깊은 뿌리이자, 전 세계를 분노와 슬픔으로 몰아넣는 곳. 바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입니다.
약속의 땅인가, 빼앗긴 땅인가
2천 년 전 로마에 의해 쫓겨나 전 세계를 떠돌던 유대인들은 19세기 말 시오니즘(Zionism) 운동을 일으킵니다. "박해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우리만의 나라를 만들자. 성서에 나온 조상의 땅, 시온(예루살렘)으로 돌아가자."
문제는 그 땅이 빈 땅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이미 수천 년간 아랍인(팔레스타인인)들이 대대로 살고 있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전쟁 비용과 지원을 얻기 위해 유대인에게는 "팔레스타인에 나라를 세워주겠다(벨푸어 선언)"고 약속하고, 동시에 아랍인에게는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시켜 주겠다(맥마흔 선언)"고 약속하는 치명적인 이중 계약을 저질렀습니다. 비극의 씨앗은 이렇게 뿌려졌습니다.
4차례의 중동 전쟁과 점령
나치의 홀로코스트 이후 유대인들이 대거 이주해 1948년 이스라엘을 건국하자, 주변 아랍국들이 "내 땅에서 나가라"며 반발했고 전쟁이 터집니다. 이것이 1차 중동전쟁입니다. 이후 4차례의 전쟁을 거치며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은 연전연승하며 영토를 넓혔고, 원래 살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고향에서 쫓겨나 난민이 되었습니다. 이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나크바(대재앙)라고 부릅니다.
지금 팔레스타인 영토는 요르단강 서안지구(West Bank)와 가자 지구(Gaza Strip)라는 두 개의 작은 땅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이마저도 이스라엘은 거대한 분리 장벽을 세우고, 검문소를 설치해 이동을 통제하며, 국제법상 불법인 유대인 정착촌을 야금야금 건설해 땅을 빼앗고 있습니다.
가자 지구: 지붕 없는 감옥
특히 가자 지구의 상황은 처참합니다. 서울 면적의 60% 정도 되는 좁은 땅에 2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갇혀 삽니다. 세계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곳 중 하나입니다. 이스라엘은 2007년부터 가자 지구의 바다, 하늘, 육지를 모두 봉쇄해 물자 이동을 철저히 통제합니다. 전기와 수도도 이스라엘이 쥐고 있습니다.
이곳을 통치하는 무장 정파 하마스(Hamas)는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을 쏘며 저항하고, 이스라엘은 압도적인 화력으로 보복 폭격을 가합니다. 그 사이에서 죽어 나가는 건 힘없는 민간인과 아이들입니다. 가자 지구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지붕 없는 감옥이라 불립니다.
10월 7일의 충격과 가자의 비명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며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스라엘 건국 이래 최악의 피해였습니다. 이에 분노한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권은 "하마스 박멸"을 선언하며 가자 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하고 무차별 폭격을 퍼부었습니다.
병원이 폭격당하고, 학교가 무너졌습니다. 이스라엘이 전기와 식량 공급을 끊으면서 아이들이 굶어 죽는 생지옥이 펼쳐졌습니다. 국제사회가 휴전을 요구했지만, 이스라엘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는 단순한 테러와의 전쟁을 넘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그 땅에서 완전히 몰아내려는(인종 청소) 의도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저항의 축: 이란의 그림자
이 전쟁은 가자 지구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이란을 중심으로 한 반미·반이스라엘 연대인 저항의 축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북쪽에서 미사일을 쏘고, 예멘의 후티 반군이 홍해를 지나가는 상선을 공격하며 세계 물류를 위협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이란의 지원을 받는 무장 세력입니다.
이스라엘 vs 이란: 그림자 전쟁의 끝
급기야 2024년 이스라엘과 이란이 서로의 본토를 직접 타격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수십 년간 대리인을 통해 싸우던 그림자 전쟁이 끝나고, 정면충돌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이란은 수백 발의 드론과 미사일을 이스라엘 본토로 날려 보냈고, 이스라엘은 방공망(아이언 돔)으로 막아내며 재보복했습니다.
만약 이 두 나라가 전면전을 벌인다면, 그것은 제5차 중동전쟁이자 제3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될 수 있습니다. 전 세계 석유의 20%가 지나가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어 유가가 200달러, 300달러로 치솟고 세계 경제가 붕괴하는 시나리오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먼 나라의 전쟁을 남의 일처럼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최근 몇 년간 중동 정세는 급변했습니다. 미국은 셰일 혁명으로 석유 자립을 이루자 더 이상 중동에 목을 매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신 중국 견제(인도-태평양 전략)로 눈을 돌리며 중동에서 발을 빼려 했습니다.
미국의 빈자리를 틈타 중국이 중재자로 나서 사우디와 이란의 국교 정상화를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UAE, 바레인 등)가 수교하는 아브라함 협정이 체결되기도 했습니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골치 아프니 덮어두고, 이란이라는 공동의 적에 맞서 경제 협력이나 하자"는 실리적인 접근이었죠. 하지만 하마스의 공격으로 이 위태로운 평화 구상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중동에 진정한 평화가 올 수 없음을 피로써 증명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중동이라는 복잡하고 슬픈 땅의 역사를 훑어보았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붕괴부터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까지, 중동의 역사는 인간의 욕망과 배신, 그리고 폭력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석유라는 자원은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되었고, 종교라는 믿음은 평화가 아닌 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여전히 평범한 일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폭격 맞은 건물 잔해 속에서도 학교에 가고, 빵을 굽고, 축구를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지정학이라는 차가운 용어 뒤에 가려진,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들의 고통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로써 15장에 걸쳐 이어온 <욕망의 도시, 충돌하는 세계>의 모든 여정을 마칩니다. 우리는 도시의 좁은 골목길에서 시작해 세계 인구의 변화를 쫓아보았고, 거대한 경제적 흐름과 국경없는 거인의 영향력도 느껴봤습니다. 또한 지정학의 거대한 체스판을 넘어 세계 각 대륙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도 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세계는 교과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입체적이고 복잡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자신만의 관점을 갖고 '진짜 세상(Real World)'를 자유롭고 거침없이 여행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 여정 중에 이 책이 나침반으로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지리는 강선생
강이석
함께 읽어보면 좋을 책
블랙 웨이브 (킴 가터): 1979년 이란 혁명과 사우디의 대응이 어떻게 중동을 근본주의와 종파 분쟁의 소용돌이로 몰고 갔는지, 현대 중동 분쟁의 기원을 파헤친 논픽션.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라시드 할리디): 팔레스타인 출신 석학이 쓴 책. 이스라엘 건국 과정이 식민주의적 침탈이었음을 고발하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시각에서 100년의 비극을 재구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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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기록부 연계 탐구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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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사회/윤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협정문 작성 활동: '2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의 현실적 어려움(정착촌, 예루살렘 지위 등)을 조사하고, 양측의 입장을 절충할 수 있는 가상의 평화 협정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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